천주교가 타종교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그 교세와 무관하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몇가지 요인을 들어 생각할 수 있겠다.
우선 교인들의 힘의 결집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구, 나아가서는 한국천주교 전체가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서 다른 종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생겨난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자세가 종교 내부적인 일에 있어서나 사회적 활동에서 존경을 받았으면 받았지 비난의 대상이 된는 일이 없을 만큼 경건함과 절제를 지니고 있는 것도 천주교의 위상을 높여준다.
신자들의 구성에서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유력인사가 많고 전반적으로 사회여론형성을 이끌어갈 층이 넓다는 것도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천주교는 이같이 내재된 힘을 바탕으로 하여 70ㆍ80년대 우리사회에서 정의의 실현과 사랑의 실천을 위해 노력했고 또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은폐기도 폭로 등 여러가지 활동, 6ㆍ10민주화 운동때 명동성당이 차지했던 위치,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시국발언이 가진무게와 영향 등이 그것을 웅변한다. 또 지난해 세계성체대회를 서울에서 열면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우리 사회에 심었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천주교가 해나가야할 일과 우리 사회가 천주교에 기대하는 것이 80년대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정의는 추구되어야 하며 사랑은 결핍되어 있을 것이다.
90년대의 우리사회가 노태우 대통령이나 그 추종자들이 말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시대」로의 확대가 이루어질 것인지, 신여당에 참여한 세력들의 노력에 의한 점진적 민주화의 실현기가 될 지, 진보 ㆍ보수의 균형에 의한 민주적 변혁기가 될 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혹은 극보수의 준동이 치열하게 맞부딪쳐 나가야하는 시련일수도 있다.
그렇게 90년대,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역사의 진전을 믿는다면 90년대는 왕정적권위주의나 독재가 횡행하기를 거부하는 시민의식의 시대가 되리라고 모두들 기대하고 있다.
천주교가 90년대에 대응해 나가면서 내적 변화를 이루어야 할 부분으로서 「엘리트의식」의 불식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의 우리사회가 권위에 권위로 맞서거나 저항하기 보다는 시민적 참여가 강조될 것이라는 낙관에 근거한다. 천주교가 가지고 있는 큰 영향력의 요인을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뒤집어 보면 천주교가 「엘리트집단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천주교의 일부 성직자들이 저항적 엘리트로서 해낸 역할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고 앞으로도 요구되는 일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에 맞서는 또 하나의 권위로서의 경직성 또는 우월감은 자칫 창조적 엘리트로서의 역할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성직자가 모든 사회악에 대해 이념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사랑의 실천자로 함께 고뇌하는 종교적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요즈음 천주교회 내부에서는 천주교회가 중산층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체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많은 도시민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포옹해내지 못하는 선민집단으로 굳어져간다는 자성과 안타까움이다.
천주교는 어느 종교보다 가난한 자, 장애받은 자들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도 가시적이고 요란하지않게 조용한 가운데 힘쓰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천주교 전체로 볼 때 그같은 노력들이 크게 확대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성직자들의 사랑의 확산을 위한 기구와 신자들이 자기자신 혹은 신자들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나눔을 실천해 나가는 정신이 뭉쳐질 때 천주교의 사랑은 더 넒게 퍼져나갈수 있을 것이다. 나눔의 실천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 노력에 앞서 종교인들이 힘써 나가야할 일이기도하다.
천주교가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벌였던 「한마음 한몸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로 하고 그 기구를 발족시켰다는 최초의 소식은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느껴진다.
천주교는 최근 성직자 사이에 또 신자들 사이에서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그 대응방법에 있어 어느정도 진통을 겪는 듯하다. 이점과 관련하여 내부적으로 활발한 의견개진이 있었을 것이다. 국외자로서 천주교의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바라고 싶은 것은 논의와 자체비판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이루어져 내적으로 자생력이 키워지는 집단으로 자라잡아 갔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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