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은 이제 성숙해야 한다. 방방마다 십자고상을 걸어놓기 보다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하며 수백번 목주알을 굴리고 눈물 흘리는 성모상을 보고 신기해 하기 보다는 성모님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신부님! 친구들과 어울려 나이트 클럽에 가서 춤을 추었는데 성사봐야 돼요?』『이웃집 방앗간에서 고사떡을 갖고 왔는데 먹어도되는 거예요?』
『시집 큰댁의 제사상을 차리는데 안 거들어 줄 수가 없었어요. 성사봐야죠?』
『이러 이러한 사람도 천당갈 수 있어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쩌다 이리 됐을까? 도대체 신앙이 무엇인지 그토록 감이 없다는 말인가? 그것도 신앙생활 1ㆍ2년한 교우들이라면 「아직 연륜이 짧아서 그렇겠지…」라고 웃고 넘어 갈 수 도있으련만 30년 40년의 신앙 경력을 가진 교우들까지 그러고 있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 구(舊)교우 일수록 「죄냐?」「아니냐?」 「천당 가느냐、못가는냐?」에 더욱 민감한 것 같다. 오래된 교우촌에 갈수록 이런류의 질문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7살이 넘으면 철이 드는데 유독 우리 교우들은 10년、20년이 지나도 「신앙의 철」이 안드는 것은 웬일일까? 수십년동안 쓰고 들어온 기본적인 단어들:하느님ㆍ천국ㆍ구원ㆍ은총ㆍ그리스도ㆍ기도 등등…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엄마 나 어디서 나왔어?』
『왜 살아야돼?』
『왜 죽어?』
『형은 남잔데 누나는 왜 여자야?』
이 얼마나 어려운 질문들인가.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뭐라 꼭 집어 말을 못해도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므로 그러한 질문들을 하지않아도 되는 때를 맞이하는 법이다.
그러나 끝까지 감을 못잡고 40이 넘도록 『엄마 나 어디서 왔어?』라고 묻는다면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일 것이다. 다 큰 어른들에게까지 『응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단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린 유아기적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종교용어들? 하느님ㆍ천국ㆍ구원기도ㆍ그리스도? 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신학적으로 명확히 설명은 못할망정 감은 잡고 살아야 한다. 아직도 천
국을 꽃피고 새우는 봄날 늘어지게 낮잠 자는 곳? 게으름뱅이들의 집합소? 으로 알고있을진대 어찌 그 신앙이 성숙할 수 있겠는가? 지방대학도 못들어갈 실력의 아이를 서울대학교에 응시시켜놓고 미사 예물을 마치
는 행위를 어찌 성숙한 신앙 행위하고 볼 수 있는가 말이다. 감기만 들어도 성수 퍼마시고 스카풀라를 한 주먹씩 목에 걸고다니면 운수대통(運數大通) 하리라 생각하는 신앙、나주(羅州) 신도안(新都安) 기적이나 쫓아다니는 유아(乳兒)적 신앙으로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의 의미를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남들이야 죄악에 빠져 지옥에 가든 말든 자기는 이리 저리 살살 죄를 피해 다니다가 천당으로 「쑥」올라가려는 비겁한 신앙、자기 힘으로는 안되니까 하느님을 살살 꼬여서 (?) 돈얻고 명예 얻어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려하는 약삭 빠른 신앙이 어찌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겠는가!
우리의 신앙은 고통으로부터 제외되기 위한 시낭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한 신앙이다. 세상만사가 내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함은 하느님께서 나를 이끄시고 계심이며、아직도 내 어깨에 십자가(고통)가 지워져 있음은 하느님께서 아직도 날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요』 (마르14、36) 라고 피땀흘리며 기도하신 외아들의 애원을 아버지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았음은 외아들 예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우리의 신앙은 이제 성숙해야 한다. 고통을 회피하거나 고통으로부터 제외되므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려 하지 아니하고 고통을 사랑하므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방방마다 십자고상을 걸어 놓기 보다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받아 들여야 하며 예쁘게 성모 마리아상을 장식하거나 수백번 묵주알을 굴리고、눈물 흘리는 성모상을 보고 신기해하기 보다는 성모님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간음한 여인으로 오해 받아 돌로 맞아 죽거나 사랑하는 약혼자 요셉으로부터 파혼당할 운명일지라도 『이 몸은 주의 종입니다.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소서!』라고 기도했던 마리아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어야한다.
며칠만 지나면 사순절이다. 특별히 고난 받은 예수님을 묵상하는 시간이다. 죄없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나서야 구원 될 수 있었다면 죄중에 생겨났고 죄만 짓고 살아온 내가 어찌 십자가없이 구원될 수 있겠는가. 지금 재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는 내 구원의 보증이며、희망의 원천임을 깨닫는 은총의 시기이기를 빈다.
유아적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사순절이기를 빈다. 그때가서야 「우리 하느님 얼마나 좋으신지、고통스런 이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야훼여! 인간이 무엇이온데 이토록 돌보시나이까?』(시편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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