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일대에서 열린 비무장지대 민(民)+평화 손잡기 행사에 의정부교구 7·8지구 신자들이 참가해 서로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손을 맞잡고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비록 남북·북미관계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판문점선언은 한반도 평화 여정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4월 27일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판문점선언 꼭 1년만인 지난 4월 27일, 인천 강화도에서 강원 고성군까지 약 500㎞ 구간에서는 ‘비무장지대(DMZ) 민(民)+평화 손잡기’ 운동이 열렸다. 종교계를 비롯해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 20만 명은 휴전선 철책 대신 서로의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었다. 경기도 파주 일대에서 손을 맞잡은 의정부교구와, 6·25전쟁 격전지인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월정리역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한 춘천교구 현장을 소개한다.
오전 11시 6·25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가 강원도 철원 월정리역 평화문화광장에서 춘천교구 사제단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
■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통일 만세! 평화통일 만세! 평화통일 만세!”
오후 2시27분이 되자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근린공원 인근 도로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참가자들은 일제히 손을 맞잡고 만세삼창을 했다. 행사에 참여한 의정부교구 30여 개 본당 신자 2000여 명도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평화’를 힘껏 외쳤다. 행사에는 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 맹제영 신부,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 위원장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를 비롯한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참여했다. 또 전주교구 신자 80여 명, 한국정교회 조성암 대주교와 사제, 신자들도 함께했다.
이어 오후 3시30분 파주 출판단지 근린공원에서는 ‘4·27 평화 기원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는 교구 민화위와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상지종 신부)가 상지종 신부 주례, 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거행했다.
강주석 신부는 강론에서 “오늘 행사는 우리 마음 안에 새로운 희망을 줬다”면서 “국제 사회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싶은 우리 염원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6·25전쟁 이후 수십 년간 남북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미워했다”면서 “서로 악(惡)해지는 전쟁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상지종 신부는 미사를 시작하며 “평화를 이루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다”면서 “평화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구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무장지대 민(民)+평화 손잡기 행사에 참가한 신자들이 행사 시작 전 다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행사에는 교구 주일학교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들이 참여했다. 특히 북한 땅과 가까운 교구의 지리적 특성상 실향민과 북한이탈주민이 많았다. 이들은 남북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누구보다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 봉사자로 참여한 북한이탈주민 김소피아(가명)씨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남북 국민 모두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날을 꿈꾼다”면서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이웃사촌처럼 소통하고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어 “북한 국민들도 평화를 바라고 있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김씨는 “북한은 늘 전쟁 태세를 준비하며 군수용품, 무기생산에 국가 재정을 쓰고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맨다”면서 “북한 국민들도 진정한 자유와 통일, 평화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들 몫까지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교리공부 중인 김씨는 6월 세례를 받을 예정이다.
박태순(요한·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본당)씨 아버지의 고향은 임진각 건너에 있는 북녘이다. 박씨는 “저 멀리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면서 “내 생애 아버지 고향 땅을 밟는 것이 소원”이라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서혜원(안젤라·12·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양은 “통일이 되면 백두산을 꼭 가보고 싶다”면서 “남과 북이 오늘처럼 손을 잡고 사이좋게 통일할 수 있도록 기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행사에 앞서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4개 지역에서는 각각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6·25전쟁 희생자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춘천교구는 오전 11시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월정리역 평화문화광장에서 전쟁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월정리역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최북단 기차역으로, 전쟁 당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다. 평화문화광장에 임시로 마련한 제대 건너편에는 하늘로 높게 솟은 추모비가 우뚝 서 있었다.
미사는 교구 포천본당 주임 오세민 신부가 주례했고 교구 사제단이 공동집전했다. 오 신부는 강론에서 “아픈 역사적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 4·3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등을 차례로 언급했다. 오 신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해방 이후 역사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분단 이데올로기가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아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평화’를 외세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오 신부는 “1년 전 판문점선언을 보며 우리의 가슴 속에는 평화를 향한 열망이 들끓었다”면서 “평화가 정치놀음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며 삶의 자리에서 평화를 이뤄내는 평화의 일꾼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 공동위원장 이은형 신부
“평화 바라는 울림 모이면 세상 변화될 수 있을 것”
“우리 아이들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큰 꿈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 공동위원장 이은형 신부(의정부교구 일산본당 주임)는 4월 27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근린공원 인근에서 ‘비무장지대(DMZ) 민(民)+평화 손잡기’ 운동에 참여한 교구 주일학교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DMZ 민+평화 손잡기’는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민간이 주도한 운동이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틱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국민 수백만 명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인간띠를 만들었던 것이 이번 행사의 모델이다.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과 바람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종교인들과 여러 민간단체들이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이은형 신부는 현재 남북관계가 계속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민간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를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평화를 바라는 울림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평화와 사랑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