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안에 원의와 실천을 자극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은총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은총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는 (오늘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남의 도움을 받거나 누구한테 빚지는 일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벌려고 하고 갖고 싶은 것은 돈을 주고 사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의 생활은 처음부터 이와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모든 것이 은총이다.
「모든 것이 은총이다」. 이것은 죠지 베르나노스의 「어떤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마지막 끝맺는 말이었다. 은총이란 사랑과 자비를 포함한 호감과 같은 뜻이다. 인간의 특징은, 곧 삶은 태어날때부터 생명을 공짜로 얻은 것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1고린토4, 7). 우리의 존재는 남의 덕분임을 알고 있다. 즉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것도 아니요. 내 스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들이 하는 일이나 행동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지못한다. 우리가 사는동안 경험한 것·섭리·만남들 그리고 성공과 행복은 대부분 우리 자신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선물로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덕분이다」혹은 「덕택에 감사하다」는 말을 별 생각없이 자주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은총
「은총」이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룩해 준 것을 의미한다. 은총이란 결코 어떤 물건이 아니다. 은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전해 주는 하느님 자신이다.
그래서 은총은 하느님과 우정이고 하느님의 생명에 인격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인간의 최후의 완성, 최후의 성취가 바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볼 때 은총은 곧 인간구원을 뜻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모든 불행과 잘못에서 해방될 수 있고 하느님과 멀어진 관계에서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은총과 정반대가 된다. 인간의 해방과 구원은 하느님이 해 준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서에서는 이 은총을 여러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즉 새 생명·새창조·쇄신·구원·성화·정의·의화 등이다. 이는 인간 스스로 해 낸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 은총은 어떻게 얻게 되는가? 우리가 신앙안에서 이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면 (물론 이것 자체도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다. 교회의 성사들도 특히 세례·고백·성체성사도 은총을 얻는 방법이며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표시해 준다. 은총안에 산다는 것은 신앙 희망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을 하느님의 덕행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얻은 것이며 또 하느님을 목표로 삼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총은 인간의 자유를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이 은총을 거부하고 이 은총을 잃을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의 가장 불타는 질문
루터의 마음을 움직인 물음은 하느님의 자비심이었다. 즉 「내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얻을 수 있을까?」였다. 그 해답을 그는 수도원의 수사로서 실천해온 노력과 선행들 안에서 찾지 않았고 새로운 영성체험 안에서 찾았다.(로마1, 17참조).
「하느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곧 신앙안에 사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과 은혜는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실현된다. 오직 복음에 대한 신앙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얻게된다」(WA54, 185찹조).
이말은 루터의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에 관한 생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신앙은 우리 구원의 시작이요 모든 구원의 근거이자 뿌리이다. 신앙없이는 아무도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다. 지난 수십년간의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는 바로 이 구원론의 문제에 몇가지 오해를 풀게해 주었고 접근과 합의를 보게했다. 두교회의 많은 신학자들도 오늘날 이 구원론은 그 자체로 두 교회를 분렬시킬 필요가 없으며 이 문제에 서로 인정할 만한 상이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원은 무엇인가?
이 구원론은 현재 대부분 신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근본적으로 구원론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사람이 전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구원이다. 그분은「의로움의 태양」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3, 5)『왜냐하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15, 5)고 말했다. 성아우구스트노는 이 말씀을 해석하면서『너희는 나 없이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분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와같이 트리엔트공의회도『사람이 자기 공로를 통해서, 인간적인 힘을 통해서 율법의 가르침 안에 할 수 있는것을 다하면서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 없이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교회에서 제명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위해 하는 모든 선행도 결실을 맺기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시작할 때에도 해당된다. 은총은 사람보다 앞서가고 또 그사람을 동반해 준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필립비2, 13)
그리스도교적 삶은 완전히 멀어진 존재이며 항상 감사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점에서는 옛날 종교개혁자들과 완전한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양교회는 모두 이미 서기 1200년경에 만든「오소서 성신이여」를 아직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불어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으며 구원도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은총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 구원을 위해 뜻있는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은 포도나무 비유의 가르침이다. 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이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15, 5). 그러나 은총과 인간의 공로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면 잘못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다시말해서 인간은 무슨 일을 하도록 소명을 받은것 처럼 느끼고 있으면서도 자신안에 이를 실현할 힘이 없다고 느껴 그냥 은총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이 내게 은총을 주지 않는한 내게는 책임이 없다는 잘못된 결론은 내릴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수동적인 생활에 빠지게 되고 은총의 체험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잘못된 태도는 우리의 선행이 곧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란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마음으로 가장 굳게 결심하여 행하는 바로 거기에 하느님의 은총의 활동도 가장 큰 것이다.
은총은 우리에게 낯선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깊이 우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필립비서 2장 13절에서 우리안에 원의와 실행을 작용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뜻보다 더많이 하신다는 말씀은 곧 은총의 중요성을 가르친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가 모든 참다운 은총의 표시는『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이다』(1고린토12, 7)라고 규정한 것은 바로 사랑이 은총의 열매일 뿐만 아니라 또 가장 중요한 표시인 것이다. 『너희들의 열매를 보고서 그들이 알아들을 것이다』.
<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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