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종교담당 기자가 된 후 가을이 채 되기도 전에 나는 내가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지 않았으면 어찌될 뻔 했느냐는 독배도 적지 않게 했다.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고등학교 시절「천국의 열쇠」를 읽으면서 받았던 감동과 전율을.
그뒤도 꽤나 오랫동안 나는 로만칼라 복장의 신부님들을 볼때면 그분들이 모두 치셤 신부처럼 느껴지곤 했다. 수녀님들은 또한 내게 언제나 헌신과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80년중반 사건기자 시절. 김수환 추기경과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세속에 있어서 나의 우상이었다.
꼭 필요한 때에 이민족과 나라가 나아 갈 길을 신앙적 토대위에서 사심없이 일러 주시는 김추기경의 강론은 그야말로 내겐 복음이었다.
박종철군 사건 등 5공화국의 반미주적, 반인륜적 치부들을 신앙인의 양심에 쫓아 밝혀내고 비판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의연한 행동은 또 얼마나 언론인으로서의 나를 부끄럽게 했던가.
그러나 종교담당 기자로서 채두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가톨릭의 오만과 편견, 권위의식과 폐쇄주의, 몸에 밴 불친절 등을 직접 보고 겪으며 카다란 실망과 좌절을 맛봐야 했다.
성직자사무실의 벽은 높고 두터웠으며 그들은「세상」의 언론에 대해 적잖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의 일을 돕고 있는 평신도들은 거의 대부분 차고 쌀쌀 맞았으며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한 성직자에게 10여 차례 전화를 드렸으나 한차례도 응답전화를 받지 못했으며 쓴 커피 한잔 대접 받아 본적이 없다. 성당이나 관련시설에서 외부인이 전화 한통 쓰는게 그렇게 어렵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됐다. 나는 점점 천주교회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심경변화에도 불구, 김수환 추기경과 그분의 사목방향, 그리고 천주교회 특유의 대사회적 역할과 헌신, 정결함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한다. 내가 본 천주교가 극히 제한적이고 편견에 사로 잡혀 있음도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감히 전망한다. 교회의 영적쇄신과 성직자 신도들의 겸하한 자기반성 없이는 결코 천주교회가 과거 70·80년대에 치지했던 위치를 앞으로는 유지하지 못 할 것이라는 점을.
지난 80년대 신자수가 2배로 증가한 것과 같은 현상은 이제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천주교회의 경직된 구조와 과거의 역할에 대한 도취감, 그리고 우리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성직자는 우선 사회와 평신도들에게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직자는 사회를「비판」하고 신도들을「지도」할 수 있으나「매도」하거나「군림」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교회와 성직자들은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외치기 이전에 교회와 자신들의 미주적 역량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90년대에 의외의 어려움을 겪게 될른지도 모른다.
교회수뇌부와 신학교는 또 교육내용의 개선을 통해 사제들이 세상에 대해 무지하지 않도록, 그리고 친절한 겸손이 몸에 배도록 가르쳐야만 한다고 믿는다. 사제라 할지라고 손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평신도의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닐 것이다.
90년대의 한국천주교회는 또「포스트 김수환 추기경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김추기경이 차지하고 있는 그 넓고 깊은 자리를 천주교회가 과연 어떻게 지속·유지시켜 나갈지에 대해 나는 반드시 낙관적인 견해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자리」가「인물」을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 이지만 교회가 이점에 대해 깊은 이해와 대비가 소홀한 것 같다는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더불어, 그야말로 외람된 언급이나 교회내의 가진자와 못가진자 간의 이질감, 그리고 늘상 좋은 보직을 맡게되는 사제와 그렇지 못한 사제간의 심리적 갈등 또한 한국천주교회가 풀러나가야할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여러 종교중에서 미우니 고우니해도 가톨릭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기대를 갖고 있는 것처럼, 성직자와 평신도들도「제도언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베풀어 주기를 당부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