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부터 간직해왔던 소망을 주교님께 말씀드린 후 신학교 사표제출이 받아들여 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사제가 서품식때 주교님과 그 후계자에게 절대 순명을 서약한 처지로「특청」따위가 말이나 되겠는가. 주교님의 명에 순종할 뿐. 그러면서도 사제인사 문제에 항상 곤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교구 참원의 자격으로 남이 꺼리는 곳을 스스로 택해 주다면 주교님의 짐이 가벼워 질듯 싶어 간청을 드렸는데 허락해 주시어 정말 마음이 가벼웠다. 사제양성이란 그만큼 벅찬 일이었다.
여하튼 나는 기성본당보다는 신설본당、 그중에도 농촌사목에 전념하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그리하여 가게된 곳이 이천본당이었다. 비록 새 본당은 아니지만 그당시 기성본당이라고 해도 지금의 신설본당만도 못한 형편이다. 있는 것이라곤 7백평 대지 위에 20여평의 기와집 한채와 임시 성당으로 쓰는 10여평의 가건물이 고작이다. 거기에 보태면 쌀 반말정도 들어갈 수 있는 빈 항아리 몇개와 뚝배기 10여개. 나 자신도 사제가 되어 의복·침구·서적 밖에 없는 신세이어서 이제는 뚝배기에 의전하고 살림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꿈이 아니었던가! 물론 기쁨에 앞서 두러움이 더 컸던 것도 솔직한 고백이다. 점임 박신부님의 말로는 미사예물이 한달에 두 세대、 교구금이라고 해야 식량도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들었기에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 나로서 급한 것은 교우들의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소 초도순시겸 봄 판공성사를 조금 일찍 실시했다. 공소중에는 옹기점이 7곳、 깡촌 산골동네가 5공、 모두 12곳으로 신자들 대부분 열심하고 순진하기는 했지만 교리에는 무식하여 개인적 신앙에는 만족하나 교회 전체 문제에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교우간에 불목하여 서로 헐뜯고 다투는 일이 자주 벌어져 외교인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현상까지 일고 있었다. 공소순회를 마치고 동아와 계획을 세웠다. 첫째 여주지방에 새 성당을 준비할 것. 둘째 공소는 매월순회 할 것. 세째 본당거주신자가정도 매월 방문할 것 등. 그러나 이천지방의 특성을 살피건대 단시일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개신교의 교육·사획사업이 이곳에서 뿌리 내린지 오래인 반면 가톨릭은 이제 6·7년、 겨우 유치원생에 불과했다.
백명도 안되는 신자수로 개신교와 경쟁한다는 것은 권투의 플라이급과 헤비급의 차이다. 그래서 속전속결 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장기전을 택했다. 그런데 의외의 럭키펀치가 작렬했다. 개신교 신자로 여자청년회장·주일학교선생·성가대원 등으로 많은 활약을 하던 이천 유지의 딸이 마침 가톨릭으로 개종、 「글라라」로 세례를 받고부터는 일꾼 없던 이천성당에 회오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외인촌에서 생긴 기적 아닌 기적같은 일도 있었다. 본당에서 10여리정도 떨어진 외인촌의 한 노인이 별안간 거꾸로 물구나무서기 자세가 되었단다.
온 식구가 당황하여 별짓다 해보다 안되니까「배정개」공소회장을 찾아와『우리 아버지 살려달라』며 애절하는 바람에 회장은 공과책과 성수병을 들고 따라 나섰다. 현장에 도착、 회장도 다급한 나머지 그만 짚신짝을 벗어들고 노인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으나 끄떡도 않더란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성수를 뿌리니「꽈다당」하고 쓰러지더니 정신을 차리더란 것이다. 그때부터 노인은 물론 온 집안식구와 그 이웃들까지 입교하면서 번창 일로에 바빠졌는데 이게 또 어인 일인고!
이제 이천본당에서 사목에 신명이 날즈음 부임 반년도 못되어「명동성당 주임 직무대리」로 발령이 났다. 나를 또한번 까무러치게 하는 자리였다. 남들은 서울 그것도 명동하면 박장대소할 판이지만 나는 어리둥절 한뿐이다. 정말 순명만 아니면…. 원망속에 즐겨먹던 장맛을 뒤로하고 이천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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