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고독」이란 단어는 참 멋진 단어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가슴이 울렁이는 젊음의 단어이다. 헌데 여기서 내가 말하고픈 것은 일상의 의미와는 좀 색다른 뜻이 있으니-.
오래 전 어떤 본당에서 주임신부로 있을 때였다. 그 본당은 마당도 넓고 뒷동산에 나무도 많아서 동네아이들이 많이 놀러 오는 것은 물론이요、 별로 데이트할 장소가 마땅찮은 주변 환경 때문이지라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이려 찾는 곳이기도 하였다.
봄이면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였으니 당장 주변으로 개나리 벗나무가 울창하였고 언덕 아래로 목련과 장미나무들이 꽃피울 차례를 줄이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란 손을 가만히 못두터는라 어찌나 와서 말썽을 저지르는지 나의 신경을 무척이나 건드려 놓았다. 꽃을 꺾는 것은 물론이요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를 분지르는 놈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운동장에 있는 몇가지 안되는 운동기구도 고쳐 놓기가 무섭게 고물이 되어 버렸다. 참「더럽게」극성맞다고 나는 몇번이나 뇌까린 적이 있었다.
그 본당엔 요한이라는 사무원겸 용원이 있었는데 나이가 거의 50이 되었으니 인생을 살만큼 사신 분이었다. 그분은 참 열심하였다. 인상도 참 부드러웠다.
사람과 관상 중에는 범죄형이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분의 얼굴은 보살형이었다. 보살도 찰보살형이었다. 나는 그분이 화내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러니 어찌 찰보살이란 별명을 붙이지 않을소냐! 이 말이다. 그분은 인심을 잔뜩 얻으며 살아 갔다.
나는 그의 보살성 기질이 맘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였다. 왜냐하면 본당의 재산을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하여는 아이들이 잘못할 때 쫓아가서 야단도 치고、 어떤 때는 세워 놓고、 「열중쉬엇! 차렷!」을 몇번 시킨다음 다시는 그런짓을 못하게 해야 할텐데 한번도 그렇게 하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길래 나에게 그 짐이 떠넘겨졌다. 나는 아이들이 나무를 꺾거나 기물을 부수는 꼴을 보면 소리를 질러댔다. 한번은 쫓아가서 단체기합을 준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그후 그들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야、 저기 신부 온다』하며 도망을 쳤다. 그중 괘씸한 놈은『야、 저기 대머리 나타났다』하며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을때 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결과적으로 사무장은 성인 소리를 듣고 신부는 나쁜놈 소리를 들어야만 했으니 이 어찌 가련한 신세가 아니었겠는가!
나는 고독했다. 적어도 동네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나는 사무장을 불러 대화를 나누자고 하였다. 그는 싱글벙글이었다. 『사무장님! 아이들이 잘못하는 것을 내가 야단쳐야 하겠어요? 사무장님은 애들한테 성인소리를 듣고 있지만 대신 신부를 욕먹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무장님이 바람막이를 해야 옳지 않을까요? 보당의 기물은 파괴되든말든 나만 성인소리를 들으면 되는 겁니까?』
나의 이 가시돌힌 이야기를 듣고도 그 의미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저 상긋이 웃고만 있었다. 본당의 재산보다는 사랑이 더 먼저라고 가르쳐주고 있는데도 내가 이해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신부를 사랑했기에、 본당을 사랑했기에 욕을 대신 먹고 그로 인해 오는 고독을 스스로 받아 들이는 마음이 요한 사무장님께 있었다면 오늘도 나는 그분을 존경하고 감사할것이다.
참모를 잘둬야 면장이된다는 말은 예삿말이 아니다. 참모진을 잘 둬야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참모들이 바람막이를 잘하여 대신 욕을 다 먹어 주고、 웃어른은 자비로운 손짓만을 하면서 앞을 향해 나간다면 백성은 훌륭한 대통령、 덕있는 대통령이라 칭할 것이다.
성을 안내면 성인은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는 그 잘못을 고쳐 주시느라 무척 화를 내셨다고 성서는 전해 준다.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의 탁자를 둘러 엎으시기까지하셨으니 말이다.
사랑하기에 성을 내고 성을 냈기에 고독했으며 그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한、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것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사조가 만연된사회는 볼장 다본 사회일 것이다.
욕은 먹어도 일은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르는 말이다.
요한 사무장님은 이미 천국에 계시는데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는것은 나를 향한 질색이며 무관심병에 빠지려는 우리들 모두를 향한 외침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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