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1·2월중 전국에서 1백여 명의 새 사제가 탄생했다. 한국교회사상 유례없는 많은 수의 사제를 배출한 이런 현상은 8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계속해온 교회의 발전상을 확인케 해주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양적 증가에 따른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가톨릭대학장 정의채 신부의 글을 통해 국내 사제양성의 현황과 전망을 진단해봄으로써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사제양성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註>
1989학년도를 마친 서울 대신학교 출신 새 사제들은 서울관구 교구들과 수도회를 포함하여 79명이 있다. 한 신학교에서 그것도 한 해에 이렇게 많은 새 사제들이 배출된 것은 한국교회 사상 초유의 일이며 크나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또 세계교회사에서도 나의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런 일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으며 더욱이 사제의 급격한 감소추세를 보여온 근래의 세계교회에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성체대회를 성대하게 치룬 해에 걸맞은 은총의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그저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따름이다. 차제에 오늘의 이런 결실이 있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지도하여 주시고 수고하여 주신 분들과 기도와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여 주신 모든 불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바이다.
광주 대신학교、 대구 대신학교에서 배출되는 새 신부들을 합치면 더 많은 숫자이고 또 수원 대신학교도 내년부터는 새 사제를 낼 것이고 더 나아가 내년부터는 부산과 대전에도 새 신학교가 시작된다니 한국은 성직자 배출의 황금기을 맞는 상 싶다.
내가 1940년에 덕원신학교에 입학할 당시 대·소신학교 합쳐 약 45명의 신학생이 있었고、 미일(美日)전쟁으로 말미암아 불란서 신부들이 경영하던 서울 대신학교가 폐쇄되어 독일인 신부들이 경연하던 덕원신학교에 합류 되었을때 대·소신학교생이 1백명을 약간 웃도는 숫자였다. 물론 그때 덕원신학교는 한국유일의 신학교였고 신자수도 남북한 합쳐 15만 내지 18만 가량이었다. 1950년 6·25동안 전해 덕원신학교는 공산정권에 의해 몰수、 폐쇄되고 서울신학교로 신학생들이 집결되었다. 6·25동란과 더불어 대구·부산들을 전전하며 제주도로 피난간 서울 대신학교의 학생수는 30~40명에 불과했으며 1951년 여름 이 대학교는 부산 영도로 옮겨와 판자집 피난살이를 근 3년간 한 셈이다. 그 후 휴전이 성립되어 서울로 돌아와 발전을 거듭、 오늘에 이르러서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번영된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왔으며 사제생활의 거의 전부를 신학교에서 보낸 나와 같은 사제에게는 실로 감개가 무량한 발전이다.
이 땅의 교회가 초창기에 성직자 한명을 영입하기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했는지를 생각하면 그 감회 또한 다 표현할 길없다. 근 40년간 목자 없이 지내야 했던 양떼들의 참상、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북경 왕래를 아홉번이나 거듭했다는 사실들은 이렇게 많은 사제배출을 대하게 될 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 교회일각에서는 사제의 양산에 우려의 소리도 들려온다. 근자의 사제양성의 일단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지당한 우려로 생각된다. 그러나 개괄적으로 나마 신자수와 성직자수를 대비하여 봄도 의미있을듯 싶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1988년도 신자 총수를 2백 46만여 명으로 공식발표하였는데 그 전해에 비해 약 15만명의 증가로 나타났다. 이런 증가세로 추정컨대 1989년도 신자수는 아마도 2백 70만명 내지 2백 80만명 정도로 생각된다. 사제수는 1988년말 현재 한국인 사제 1천 3백 3명、 외국인 사제 2백 19명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위에서 말한 금년도 새 사제를 대략 1백명으로 칠 때 한국인 사제가 약 1천 4백명 정도가 될 것이고 외국인 사제를 합하여 국내거주 사제는 1천 6백여 명으로 추산된다.
사목신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신자 8백명 대 사제 1명이 이상적이라고 한다니 2백 70만 신자에 대해 3천 4백여 명의 사제가 필요한 셈이 된다. 무론 이런 비례는 아주 개괄적이고 이상적인 숫자이나까 절대 규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사제수와 신자수를 어림잡는 대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1천 6백명 정도의 사제수는 충족한 것이 못된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사제들이 계속 배출되어야 한다. 사제수의 부족이 그 절대 이유였던 오늘 한국 천주교회의 본당 대형화도 지양되어 사목자와 양들간의 유대관계가 좀더 개별적이며 인간적이어야 할 것이다.
특수사목 분야를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현금 우리 사회가 세계수준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여 가는데 비해 교회의 사목 활동은 대형본당에서의 무명의 집단 사목에 시종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수사목치고 제대로된것이 전무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특수사목 분야에는 손길과 정성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학생사목、 노동사목 등 큰 덩어리의 사목분야는 물론이고 병자사목、 가정사목、 알콜-마약중독자 사목、 더나아가서는 평신도들의 열성으로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그 많은 직장단위의 고그룹 등등을 위한 사목에는 거의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이며 교회는 이런 면의 전문 사목자들 전혀 양성해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는 사제의 양과 질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한마디로 양과 질의 증진 향상이 다같이 요청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교세에 비해 사목자의 수가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따라서 도처에 새로 신학교가 설립되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종교사회 조사 등 좀더 밀접한 검토와 연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른 한편 사제들의 질 문제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며 때로는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다.
사제의 사실은 물론 신학교이다. 신학교 교육의 중차대(重且大)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신학교는 주님께로 부터 불리움을 받은 이들이 응답하고 주님과 같이 머무르며 영성훈련과 사목자로서의 인격과 지식을 쌓아 파견을 준비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분은 산에 올라가 당신이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그분께로 나아갔다』(마르꼬3、 13). 『그들이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그들을 파견하기 위함이었다』(마르꼬13、 14). 이 파견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사도1、 21~22:루가24、 48)복음을 선포하며 사람들을 구원시키기 위함이었다. 『너희는 온세상을 두루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꼬16、 15). 또한 사제는 신비를 거행하는 자로 파견된다. 예수께서는 성체를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주시어 먹게하신 후『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22、 19)고 하셨다.
신학교는 이런 사명을 지닌 사제들을 길러내는 도장이다. 따라서 신학교교육은 이런 임무를 충분히 이루어 낼 영성교육이 그 기초가 된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영성교육이 강조되고 또 강조되는 소위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사회여건과 생활환경 속에서 자칫 외적활동、 심지어는 너무 세속적 활동에 빠져들기 쉬운 처지에서는 먼저 깊은 영성교육과 수련을 쌓아야함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제、 진리에 몸바치는 사제、 충직한 주님의 종인 사제、 복음의 선포자로서의 사제、 양을 위해 목숨바치는 사제、 신비와 은총의 시여자에 걸맞는 깊은 영성을 지닌 사제、 거룩한 사제를 훈육하기 위해 오늘 신학교에 특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영성교육이다. 한마디로 사도로 불리움을 받고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3년간 고행과 영성수련을 하고『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갈라2、 20)라고 갈카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불활을 전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이야말로 사제양서의 이상이겠다.
이런 교육이 신학교에서만 이루어 질수는 없고 근원적으로는 가정의 신앙생활에서부터 싹터야 하며 성장과정에서 본당과 여러 단체활동에서 이 싹이 더욱 활달하게 길러져야 함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또한 오늘의 신학생 교육은 앞으로 2천년대에 일할 사제를 양성한다는 미래지향석인 차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면에서 파란 많고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제 우리는 지나간 유신체제나 무고한 생명을 무수히 학살한 광주사태와 같은 시기、 그 무서운 억압의 시기를 지나 정치인、 언론인들이 거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시점에 와있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여나 야、 중도의 그 어느 쪽을 불문하고 종교적 차원에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는 시시비비의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교육하며 사회 양심을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 처지에서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교세가 강한 동구권에서의 근자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물론 사제는 사회정의와 인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과 자연을 지켜야한다. 만일 과거와 같은 유신이나 광주사태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것이 사제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오늘의 서울 대신학교 교육은 또한 이런점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
또 한편 신학교에서의 지적교육의 향상이 절실이 요청된다. 성직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지적교육이 요청된다. 오늘날 사회가 시시각각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데 비례하여 성직자의 교육도 질적향상을 이루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학교는 7년과정의 수원 신학교를 예외로 하고는 다 6년과정이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8년 과정이 통상이다. 철학과정 4년、 신학과정 4년이다. 미국과 같이 성직자 난에 허덕이고 성직자 부족으로 많은 본당들을 폐쇄하면서도 신학교의 교육연한을 축소하거나 질의 저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웃 일본도 8년을 고수하며 브라질에서도 8년과정을 이수하는 것을 보았다. 이점에 있어서도 사제들의 질의 향상을 위해 우리 신학교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며 윗어른들의 적극적 후원이 요청되는 문제이다. 이른바 선진각국의 가톨릭 교회가 본당을 폐쇄해가며 또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신학교가 요청화는 인적、 재정적 후원을 아낌없이 투입하는 것은 신학교에서의 사제양성 여하가 교회의 생사를 결정짓는 심장의 기능임을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체이든 지도자의 자질 여하에 따라 성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학교의 교수신부들이 신학생 교육에 전적으로 투신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한국 신학교는 현금 지원자들의 질을 더 높일 필요성에 몰리고 있다. 이점에 있어 한국내 어느 신학교나 다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직자가 될 사람들은 착하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목자는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영신적인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세상 일반보다 더 훌륭한 지적 소질이 요망된다. 물론 신학교가 오랜 전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교육의 장점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정과 본당、 교구 전체가 일대 경각심을 일으켜 지적으로도 우수한 젊은이들을 신학교에 보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더 생각할 점은 이제 한국의 가톨릭은 전래 2백년을 지났고 교세도 크게 신장되었다. 훌륭한 신학대학을 육성하여 이 방면의 인재를 성직자이건 일반신자이건 국내에서 충분히 교육해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내 가톨릭대학에서 공부하여도 충분할 세계적인 신학교육과 여타 그리스도교 사상교육의 여타 그리스도교 사상 교육의 전당이 절실히 요청된다. 동양에서의 토착화 신학、 우리의 신학을 형성해 내야 할 곳은 일본도 대만도 필리핀도 아니고 바로 한국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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