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오후 서울 파고다공원에서의 독립 요구 시위를 시작으로 연일 계속되면서 적국각지로 파급되었다. 시위가 커지고 많아질수록 그만큼 희생자수도 늘어만 갔다. 일본 군경은 시위 군종을 오직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기 때문이다.
3월 23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시위가 많았다. 서울에서만도 열아홉 군데서 잇달아 시위가 일어났다.
그날 밤 9시경 원효로의 용산 신학교에서는 신학생들이 막잠자리에 들무렵이었다. 바로 그때、 독립만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두 군종이 양편에서 하나는 삼호정 쪽에서 또 하나는 새남터 노들쪽에서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처음에 신학생들은 창문을 통해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만세 소리를 그대로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고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리하여 그간 순명으로 조용했던 신학교에 혁명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그날 밤으로 주교관에 알려졌다. 뭐텔 주교(프랑스인)는 날이 밝자 용산으로 달려갔다. 주교는 신학생들에게 질서의 준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주교를 붙잡고、 그들의 나라가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며 주교의 이해를 애원했다. 정말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교는 다시 한번 질서의 유지를 지시했고、 아니면 차라리 신학교를 떠나라고 했다.
그들의 나라가 학대받는 것을 보고、 구체적으로 그들의 동포가 일본 군경의 총칼 앞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신학생들을 시위에 가담케 한 이유요 동기였다.
이른바 민족의 동질성(同質性)이 거기서 표현된 것이다. 즉 그들은 동포가 당하는 불행에서는 같은 피해의식을 느낀 끝에 민족 공동체와 더불어 그 운명을 함께 나누려 했던 것이다. 그러한 의식은 일부 신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성소에 회의마저 느끼에 하여 결국 신학교를 떠나게 했다.
이보다 앞서 똑같은 일이 남쪽 대구 신학교에서도 일어났었다. 3월 7일、 신학생들은 삼일운동의 흥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녁때 신학교 운동장에서 독립가를 불렀다. 교장신부의 만류는 그들을 더욱 흥분시켜 9일 일요일에 시가행진에 가담할 결심을 하게했다. 마침내 드망즈 주교(프랑스인)가 달려왔다. 그는 신학생들을 기립시켜 놓고、 『신학생은 순명해야 한다. 만일 신학생과 상관 없는 정치적인 소요를 일으킨다면 신학교 문을 닫아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신학교는 그날로 휴교령이 내렸고、 주동 학생들은 퇴학 처분을 당했다.
그때 퇴학당한 학생 중의 한 사람인 저명한 문필가 고 김구정(金九鼎)씨는 퇴학을 강요 당하자 신학교 당국에『당신들은 선배들의 순교정신을 따라 이땅에 전교하러온 것이 아니고 월남에서처럼 나라 잃은 민족을 억압하고 멸기하러온 것이 아닌가』하고 엄중한 항의를 했다고 회고했다.
3월 18일、 이날 은율에서 처음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그 곳의 윤예원(尹禮源) 본당신부는 신자 학생들에게 시위 참가를 권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그후 상해의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동시에 동료신부들에게 함께 참여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곧 교구장의 귀에 들어갔고、 교구장은 윤신부에게 독립운동을 중단하던지 아니면 옷을 벗으라는 내용의 경고장을 보냈다. 이에 대해 윤신부는 사제 성소를 잃은만큼 나라에 충성할 수는 없다고 하며 교구장에게 순명을 거듭 다짐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의 독립을 위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허락을 요청했다.
사제직이냐 아니면 민족이냐、 양자 택일을 해야할 진퇴양난의 입장에서 결국 윤신부는 사제직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족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던지 기도를 통해서만이라도 민족의 숙명에 동참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것 마저도 교구장의 사전 하락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삼일운동 당시 제물표(인천) 본당신부이던 프랑스 선교사는 이 운동이 자기 본당교우들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 종합해서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제물포 본당교우들에 대한 삼일운동의 반향은 세 부류로 구분되었다. 첫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장한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당장 독집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하고 따라
서 삼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부류에 속하는 교우들은 본당내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 수도 적었다.
둘째 부류 사람들은 삼일운동을 지지하지만 첫째 부류만큼 적극성은 덜했다. 반면 그 수는 훨씬 많았다. 이들은 언젠가 성당 문에 붙여질『너희들은 다 불란서 사람이고 한국사람이 아닌가. 두고 보자.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희들이 거절한 사실이 백일벽보에 드러날 것이다』는 성동벽보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말해서 본당 공동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본당 교우 중에서 이 운동에서 참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끝으로 셋째부류는 소요라면 일체 비난하고 배척하는、 권력 앞에 체념했거나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한 사람들이었다.
이상의 관찰은 비단 제물포본당만이 아니고 모든 본당、 나아가서 한국 가톨릭 전체에 적용될수 있을 것이다. 천도교나 개신교에서는 첫째 부류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비해 가톨릭에서는 둘째부류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대다수의 가톨릭신자가 시위참가를 유죄했위로 선고한 교회당국 앞에 죄인이 되고 싶지 않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용감히 이 운동에 가담했다. 그들은 훗날 가톨릭이 민족의 동질성이 없는 이질적인 종교라는 비난을 들을 것이 두려워 가톨릭 공동체의 명예를 위해 자신을 바쳤던 것이다. 그들의 덕택으로 오늘 우리는 가톨릭의 체면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삼일절만 되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영웅적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민적의 도질성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좀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만일 우리가 민족의 동질성을 좀더 의식하고 행동한다면 그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그 수는 적을지라고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첫째 부류의 사람들의 행적이 아직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족의 동질성은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통일이란 민족의 지상과제 때문이다. 통일은 미래의 이상이나 희망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숙명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원래 단일민족이었던 한민족이 타의에 의해 분단되었다는 민족공동운영체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통일이 첫째로 민족의 숙명적 과거에서부터 추구되어야 한다면 마찬가지 이론에서 남북가톨릭의 만남도 우선은 분단이전의 한국가톨릭의 동질성을 기반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세계성체대회때 북한의 신자들을 초청한 이유가 어떤 것들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성체대회란 가톨릭(보편)적인 이유 외에 반드시 남북의 가톨릭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수한 이유가 첨가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순교자만큼 더좋은 이유가 있을수 없다. 순교는 한국교회의 가장 오랜 전통이기도 하지만 북한도 유정률(劉正律)같은 훌륭한 순교성인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성체와 순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성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생명의 빵인 동시에 희생 제물이다. 그런데 순교자들이야 말로 스승 예수를 그대로 본받아 그들의 동포와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희생제물로 바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들은 성체대회의 제단에서 성체의 희생제물과 함께 현양되어야 마땅했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삼일절이 우리 가톨릭에서 민족의 동질성과 남북가톨릭의 동질성에 대해 한번 숙고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