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 앞에 선 이 사람은 감투가 참 많은 사람입니다. 가정에 가면 가장이요 가족회의를 하면 의장이요 집 변소 에가면 혼자서 소장이요 지하실로 내려가면 실장이요 이층에 올라가면 청장이요 어영부영 살다가 송장이니 결국은 총장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롯데백화점 12층 「스카이 플라자」. 만담과 유우머ㆍ위트 그리고 독백ㆍ노래ㆍ그림극 등이 30여분간 끊이지않고 펼쳐지는 이곳은 안재옥(베드로ㆍ61세)씨가 유일하게 보수를 받고 서는 「만담무대」이다.
마이크만 잡으면 그저 신이 난다는 만담가 안재옥씨. 그가 풀어놓는 수십ㆍ수만 가지 이야기는 언제 어느때고 물흐르는 듯 거침이 없어 사람들은 스스럼 없이 그를 「인간문화재」라 칭한다. 1930년 부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친 안재옥씨가 실제 만담과 인연을 맺은 것은 참으로 우연찮은 기회로부터 시작된다. 1960년 메리놀회 메리가별(가부리엘라) 수녀와 당시 부산지역 전쟁미망인들의 자립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시작한 「신용협동조합」운동이 부산 중앙성당「성가신협」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국서 단위조합으로 처음으로 조직됐고, 그당시 메리놀회 수녀원서 영어회화를 배우고 있던 안씨는 입교를 결심하면서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한국 최초의 신협인 부산 성가신용협동조합 감사를 역임한 안씨는 신협운동이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성가신협과 함께 서울로 본거지를 옮기게된다. 그 이후 안씨는 「협동교육연구원」이나 단위조합에서 직접 신협임원 및 회원들을 교육시키며 신협운동이 교회내에 완전히 뿌리내리는데 경제적ㆍ정신적 핵심역할을 해왔다. 이당시 안씨가 신협회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코리언 타임」때문이다.
약속시간보다 5~10분씩 지각하는 회원이 생기면 일찍온 사람은 일찍온 만큼 으례히 지겨운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에 착안, 기다리는 시간을 떼우기위해 조금씩 회원를 앞에서 이야기하던 것이 이제는 본업이 돼버린 것이다.
『하는 사람이 재미를 가지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만담』이라고 지론을 펴는 안재옥씨는 가끔씩 영어나 일어책에서 아이디어를 찾곤한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의 상의 왼쪽주머니에 늘 지니고 다니는 작은 수첩속에 깨알같이 박혀있는 글자ㆍ문장들에서 갖가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서울 노인대학연합회 홍보부장이기도 한 안씨는 노인대학이 개설되거나 행사가 있을때마다 즉각 그곳에 달려가 학생들의 노인대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위해 기꺼이 만담을 풀어놓는다. 특히 구한말ㆍ일제시대ㆍ8ㆍ15광복 등 역사적 사실을 그럴싸하게 묘사해놓은 그림을 들고 「압박과 설움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 피나는 고초와 쓰라림을 견디어야 했던 우리 겨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저 일제시대로부터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라고 온 힘을 가울여 그림극을 벌이고나면 눈물닦는 노인, 당시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는듯 기쁨의 환호를 지르는 노인 등 한없이 즐거워하는 노인대학생들의 모습을 대할때면 결코 아무도 알 수 없는 안씨만의 큰기쁨과 보람을 느끼다고.
87ㆍ88년 이미 두권의 레크레이션백과 「재치와 웃음의 한마당」을 펴내고 올해 제 3권을 준비중에 있는 안재옥씨. 1ㆍ2권 책 표지그림과 삽화를 직접 그려주었던 큰아들이 올해 미술학도가 되여 그는 요즘 더없이 기쁘다.
『하느님께서는 빙그레 웃는 얼굴을 가장 좋아하지요』아이디어 개발에 대한 창조의 기쁨과 웃음의 유익함을 깊이 체험하며 생활하는 안재옥씨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느곳에서나 기꺼이 봉사하기를 바라는 「살아있는」한국교회의 한 평신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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