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12살 때 부모님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을 때 부모님께『왜 나를 하느님 곁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하고 좀 섭섭한 말을 한적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의 이 대화는 예수의 성지은 불가피하게 혈육의 정을 희생할수 밖에 없음을 미리부터 시사하는 말씀이었다.
이제 당신의 공생활이 시작된 첫 가을 하느님 나라사업을 본격적으로 펴기에 앞서 예수께서는 이 점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전교여행에 지친 예수의 일행은 어느 집에 들어 갔다. 누구의 집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전교활동의 본거지였을 것이다. 이제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져 군중을 이루고 있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따르는 많은 군중이란 표현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 모인 교회공동체를 가리킨다.
예수의 일행은 이 군중에 시달리다가 이 집에 들러 식사를 할 참이었다. 그러나 군중은 예수께서 식사를 하실 겨를도 주지 않았다. 하느님의 일에 정열을 쏟던 예수의 전교생활은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 사람같았다. 사실 예수께서는 미친듯이 일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이라면 식사를 거르는 일쯤은 다반사였다. 게다가 예수를 질시하던 율법학자들은 그를 마귀 들린자라고 군중에게 떠들고 있었다. 이런저런 소문을 들은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어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수의 건강도 염려되었지만 예수의 하는 일이 못마땅 하였었다. 밥이 나오나 돈이 생기나、그보다도 그들이 마음 쓴 것은 가문의 명예였다. 그 당시 로마 그리스는 물론 팔레스티나에서는 가문의 유대관계는 꽤나 끈끈한 것이었다. 가문에서 사회적으로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를 찾으러 온 친척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었고 그 밖에 가문을 이루는 친척들이었다. 어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 제관 시메온의 예언을 들었고 가나잔치에서 첫 기적을 이루게 하였던 마리아가 여기에 낀 것은 아드님 예수의 건강상태를 염려하였을 것이고 아버지 요셉이 빠진 것은 요셉이 이미 작고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찍이 혼자된 성모 마리아는 친척집에 몸을 의지하였을 것이고 이러한 홀어머니를 혼자 버려두고 하느님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 사명을 완수하느라고 유랑전도를 하는 아드님 예수의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마리아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다시 등장하는 것외에는 뒷전에 숨겨져 있다. 이것은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성직과 혈육친척관계를 떼어 놓으려는 의도적인 구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여간에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말씀을 듣는 모습이다. 친척들은 늦게 도착하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람들 틈을 헤집고 한 사람을 들여보냈다. 예수를 좀 보자는 것이다.『어머님과 형제들이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라는 전갈이었다.『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예수께서 반문하셨다.
이웃사촌이라는 우리 말도 있지만 모든 친족을 사람들이 형제라고 부르던 그들 형제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렇게 섭섭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는 꽤나 섭섭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낳고 기를 때에 이미 당신 아들의 영상적인 사명에 대한 신념을 가졌던 그녀인지라 이 말씀을 인류구원의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깊이 마음속에 간직하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둘러 앉아 말씀을 듣고 있던 군중을 둘러보시며 (마르3、34:마태12、49절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가리키며」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을 가족에서 시작하고 가족안에서 가족을 위하여 사는 세속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민족전체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던 유대아인들에게는 이 말씀은 범죄에 해당하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부모 자녀 형제 자매 친척관계는 지상의 인간적인 정서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테두리에서 완성된다는 복음을 예수께서는 전해야만 했고 혈육의 정이 끈끈한 만큼 예수의 가르침도 강력해야만 했다.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되게 뒷바침하는 검정각인(檢定刻印)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다.『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말씀을 준행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루가11、28)
예수의 건강과 신변을 염려하여 친척들과 함께 왔던 성모 마리안는 누구보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세상에서는 치욕이 될수도 있는 처녀잉태를 수락 하였고 예수께 대한 시메온의 뼈아픈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세상에서는 드러 나지않는 진정한 믿음의 생활을 하였다.
성모 마리아는 정녕 예수의 혈육의 모친이며 영성의 모친이시다. 그녀를 본받아 세속을 최후의 목표로 두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 준행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예수의 제자들인 모든 신자들은 예수의 참 형제들이다. 세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이 신앙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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