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드 맨리 흡킨스(1844~1889)는 아마 영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정통적인 「가톨릭 시인」임에 틀임이 없다. 그러나 그는 비단 천주교의 교리에 바탕을 둔 열렬한 믿음을 시의 형식으로써 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영시의 이를테면 「체질적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법상의 영역을 일찌감치 개척함으로써 시와 관련되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약 백년을 앞서 내다본 천재였었다. 더구나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하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었던 이러한 시적 탐구와 실험을 어느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순전히 홀로의 관찰과 탐구와 사색과 묵상만으로 고독하기 이를데 없는 가운데에서 이룩해냈다는 점체서 그의 독창성과 그것을 시로 실현한 내부적인 힘과 자신감에 경탄을 금할 수 없으며 이 일은 마치 기적이나 다름이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 흡킨스의 시는 대개의 현대 영미시의 사화집(詞華集)에 C. 데리루이스, 스티븐ㆍ스펜더, W. H. 오든 등의 시와 나란히 수록돼 있다. 그러나 흡킨스는 그의 생존 연대가 보여주듯이 완전히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조」에 생존했던 사람이며 누구나가 이름을 잘 알고 있는 테니슨이라든가, 브라우닝이라든가, 또는 단테ㆍ가브리엘ㆍ로제티와 같은 시대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20세기 영미시의 전개라는 관점에서 볼 때 흡킨스가 이룩해낸 시적 작업의 성과는 19세기 영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보다도 훨씬 더 큰 뜻을 지니고있다.
흡킨스는 1844년 7월 28일에 애석스주 스트래트펀드의 영국 국교를 믿는 가정에서 8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매우 높은 교양을 지니고 있었고, 부친은 해상보험사정원이었다. 부친 역시 풍부한 시인적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흡킨스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총명했으며, 시ㆍ음악ㆍ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서 예민한 감수성을 보였었고, 한때는 미술가가 되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는 하이게이트의 고등학교를 거쳐 옥스포드 대학교의 베일리올 대학에 진학하게 되며 이때부터 희랍어, 라틴어 등 고전어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무렵 그는 이른바 「옥스포드 운동」에 가담하게 되고 이윽고 양친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국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니, 이 일은 그의 생애의 방향을 결정지은 분수령이라 할수가 있었다. 나중에 추기경이 된 죤 헨리 뉴먼이 이끌었던 「옥스포드 운동」이란 처음에는 영국국교 내에서 바른 교리로써 종교적 의식을 부흥시키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교리를 연구하면 할수록 진리가 천주교 쪽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종국에는 그 신봉자의 대다수가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으로써 끝이나고 만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 사회에서 영국국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는 일종의 순교의 길을 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이런 점으로 보더라도 흡킨스는 일신의 영예보다는 당연 양심과 진리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의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흡킨스는 뉴먼의 지도하에서 천주교에 들어온 것이 1866년의 일이었고, 1868년에는 예수회의 수사가 됐다. (그는 1877년에 신품성사를 받게 된다). 이 무렵 시를 쓰는 일이 수도적 소명의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생겨서 많은 정신적 갈등과 고민끝에 흡킨스는 그때까지 써온 대부분의 시를 몇 편의시를 제외하고서 모두 태워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헤롯왕의 「영아대학살」에도 비길수 있을 이러한 시의 말살이 있은 후 7년동안 흡킨스는 시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흡킨스나 이 시의 침묵을 깨는 계기가 오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여객선 「도이칠란트호」의 난파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있었을 때도 흡킨스가 스스로 자기의 결심을 번복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성뷰노학원에서 신학을 연구중이었는데 그의 장상이자 학원장이었던 존즈가, 누군가가 이사건을 시로 쓰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했다. 흡킨스는 장상의 말에 순명하는 뜻을 겸해서 마침내 이 사건을 주제로 하는 시를 쓰기로 다시 결심을 하게된다.
이 「난파사건」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연유한 사건이었다. 독일 통일을 이룩한 당시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문공부장관인 팔크로 하여금 이른바 「팔크 법령」을 선포케 한다. 이 법령은 독일제국 안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을 몰아내고, 동시에 막대한 천주교회에 속하는 재산을 몰수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가톨릭의 수도회가 폐쇄되었으며 대부분의 수도자가 독일 국외로 추방되었다. 프란치스코회에 속하는 5명의 수녀도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 가기 위해 여객선 「도이칠란트 호」에 탔다. 그들은 뉴욕을 거쳐 미주리 주의 수녀원이 경영하는 병원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도이칠란트호」가 독일 북부의 「브레머헤이븐항」을 떠난 겻은 1875년 12월 4일 토요일이었다. 길이가 약1백m 나 되며 6백마력의 기관을 설치하고 있었던 이 배는 당시로 서는 호화여객선이었으며, 승무원도 모두가 노련한 일급 기사들이었다. 승객은 약 1백30명 쯤 되었던 것으로(일설에는 약 2백명이었다고 한다) 전해진다. 밤이 되자 이 배는 그곳 북해(北海) 특유의 엄청난 강풍과 파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암초다!」하는 소리를 했을 때엔 이미 늦었었다. 배는 영국 템즈강 하구의 사주에 좌초되어 비스듬이 기운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어 눈보라와 추위가 닥쳐왔으며, 거대한 파도가 쉴새없이 갑판위를 휩쓸며 지나가는 바람에 많은 승객이 바다에 쓸려들어가 익사했고, 또 얼어 죽었다. 겁에 질려 자살한 여자도 있었다. 난파한지 약 30시간 후에 겨우 구조선이 왔을 때에는 약 60명의 희생자가 생겼으며, 수녀 5명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수라장과도 같은 이 사건이 절정에 달했을 때 다섯 수녀 중에서 키도 크고 늠름했던 장상 수녀가 갑판 위에 우뚝 서서 「예수님, 빨리 오소서!」하고 큰소리로 외쳤으며,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그 끔찍한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정을 찾고 조용히 죽어갔다고 전하여진다. 홉킨스는 특히 이수녀들의 죽음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윽고 완성되는 시에서 수녀의 죽음을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나는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시는 무섭고도 엄위로운 형벌의 뜻이다. 또하나는 동시에 사람을(수녀들이 대표로 뽑힌 격이다) 희생제물로 삼음으로써 사람의 품위를 가장 거룩하게 높이심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가장 무서운 형벌이 동시에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이기도 하다.
홉킨스는 또 다섯 수녀의 죽음을 예수님의 5상(傷)에 비유해서 생각하기도 하였으며, 이것은 매우 대담한 상상이 아닐수 없다.
이 사건을 읊은 시를 흡킨스는 그해(1875) 성탄절 전후해서 쓰기 시작해서 다음해 부활절이 될 무렵 완성했다.
모두 2부 35련으로 돼 있고 1부는 10련까지, 2부는 11련서부터 35련까지이다. 이 35련을 다시 내용면에서 살펴보면 1부 10련은 엄위로우신 하느님에 관한 묵상이며, 2부 11련서부터 19련까지는 배가 난파하는 장면의 구체적인 묘사, 그리고 20련서 부터 35련까지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적 묵상이다. 흡킨스 본인은 이 시는 어느 편이냐 하면「부, (賦,ode)」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부」의 특질과 「이야기 시」의 요소가 섞여 있기도 하다.
이 시에서 흡킨스는 이른바 그의 발명이라 할수 있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탄력과 활기에 넘치는 「스프렁 리듬(sprung rhytuhm)」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뿐 아니라 7년 동안의 침묵에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여러 시학적 실험이 마치 폭발하듯 이 시에서 터져나왔다. 시어 하나 하나에 담은 뜻의 밀도(密度)와 영롱한 심상의 견고함과 열렬한 신앙의 시적 육화(肉化)와 하느님에 대한 지순한 찬미가 완전히 하나로 융합돼 있는 이 시는 내용과 형식의, 기교와 정신의, 존재와 언어의 그리고 믿음과 찬미의 금강석과도 같은 결정(結晶)이다. 볼때 이 시는 시의 수준에서 비약적인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그후 흡킨스는 1889년 44세를 일기로 『나는 매우 행복하다』하는 말을 끝으로 영면할때까지 약 1백60편에 달하는 주옥과도 같은 시를 썼으며 그 모두가 자연과 신앙을 주제로 하는 시였다.
이미 말한바와 같이 장시「도이칠란트호의 난파」는 이 시의 독특한 리듬과 또 시어와 시어의 고도로 유기적인 상호관련성때문에 딴나라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다만 이 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내용을 산문으로 풀이해볼까 한다.
나를 다스리며 숨과 빵을 주시는 하느님. 세상의 기슭이시며 산이와 죽은이를 지배하시는 하느님. 저에게 육신을 꾸며주시고 그것을 거의 망치려고 하시고 다시 새로운 손길로 나를 어루만져 주십니까. 저는 당신을 새로이 느낍니다.
아아, 두려운 하느님 그리스도여, 당신에게 버림받을까봐 무서움의 높은 곳에서 어지럽고 가슴도 아프옵니다.
앞에는 하느님의 무서운 얼굴, 뒤에는 지옥의 낭떠러지. 그래도 나의 가슴으로 성체(聖體)의 가슴에 뛰어들었더니 지옥의 불길이 성령의 불길로, 분노의 은총이 자비의 은총으로 바뀝니다.
우물의 수면이 산골짜기의 물과 연결되어 있듯이 복음의 원리가 늘 나를 압박하니, 곧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하늘의 반짝 터지는 별에 입맞춤을 보냅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어디에나 스며서 기운으로 퍼집니다.
원래 삶의 쓰라림은 하느님이 주신것은 아니었지만, 삶의 쓰라림이 강처럼 흐르기에 사람이 하느님을 잘못 알고 흔들립니다.
예수님이 수난하셨을 때부터 삶의 쓰라림이 비롯되었습니다. 절대절명에 빠진자만이 그것을 압니다. 우리는 누구나 골고다의 영웅 그리스도의 발길을 따라갑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 뜻대로 사람을 다스리소서. 흠숭하올 왕이신 하느님이시여.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칼로써건 불로써건 물로써건 사람은 죽게 마련.
토요일에 미국가는 배에 2백명 가량의 승객과 승무원이 탔다.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도이칠란트호」는 항해하다가 무서운 눈보라를 만났다. 템즈강 하구의 사주(砂洲)에 좌초했다.
기관도 돛도 아무 소용없다. 희망은 회색 머리, 희망은 곧 상복이었다. 희망이 이미 간지 24시간, 무서운 밤이 왔다.
물에 빠져 울부짖은 여자를 살리려고 한 사람이 밧줄을 몸에 메고 뛰어들었으나 무서운 파도에 견딜건가. 그도 함께 떠내려갈 뿐.
파도가 갑판을 휩쓸 때마다 사람들이 바다에 쓸려들어간다. 아녀자는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이때 한 여성 사자(獅子), 여자 예언자가 우뚝 솟아서 처녀의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다섯 수녀 중장상이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딸. 그러므로 나의(수사인 자기의) 누이이기도 하다.
다섯 수녀! 다섯!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어가 아니었던가!
그녀는 소리쳤다. 「그리스도여, 빨리 오소서!」하고. 그 절망의 순간 그녀는 그리스도를 크게 불렀다. 그 늠름함이여!
성령의 입김이여!
(여기에서 홉킨스는 그 절망의 순간에 그녀가 그렇게 힘과 믿음을 얻는 장면을 영감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이것이 이시의 절정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표현할까…그래 상상이여 조금만 더 빨리 나에게 와다오… 아, 그래, 보이는구나! 이것이었구나! 그녀가 예수님을 본것이었구나! 이 막다른 순간에 예수님이 물결을 밟으시며 그녀에게 와주시는구나! 아아, 자랑스러운 승리!
아아. 외로운 가슴! 순일한 시선! 그러니 그녀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
예수님은 빛이시니. 무염시태하신, 말씀이신, 이 수녀의 죽음이 곧 당신의 영광이옵니까.
그녀는 주님을 위해 고통을 찾아 받았군요. 그것이 딴사람에게는 안식이었습니다.
그녀의 종소리에 놀라서 불쌍한 양들이 당신께로 돌아온 것이로군요. 그러고 보면 그 배의 난파가 당신께는 추수였습니까?
무궁세 물결을 다스리시는 주여, 당신을 흠숭합니다. 존재의 근거이시여, 모든것을 초월하시는 하느님, 죽음 뒤의 왕좌에 앉으시어, 주권으로 다스리시며 숨어 마음쓰시며, 내다보며 계시는 하느님!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 신 하느님. 기적의 불로 마리아에서 나신 하느님. 단비로 오소서. 번개처럼 오소서.
자랑이시며, 장미이시며, 우리의 영웅이시며, 지존하신 목자이시며, 우리 가슴의 자비의 부뚜막의 불이시며 모든 기사다운 생각의 왕이신 하느님!
비교적 자유스럽게 시의 줄거리를 간추려봤다. 이 장시에는 「팔크 법령에 의해서 추방되어 1875년 12월 7일의 심야와 미령 사이에 익사한 다섯 프란치스코회 수녀들의 행복한 기억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여져 있음을 여기에 적겠다.
이 시는 동시에 믿음의 승리이자 예술의 승리이다. 뜨거운 믿음과 예술의 천재가 하나로 결정(結晶) 될 때 어떠한 기적이 이는가를 보여주는 보기이기도하며, 이 시가 고금의 세계문학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단연 독보적인 명작이라는 말은 되풀이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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