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모임으로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그 모임은 예수를 중심으로 모여 그 분의 말씀을 듣는 모습으로 이루어진다.「그날」아마도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설교하고 계실 때에 친척들이 찾으러 왔던 그날 예수께서는 집에서 나와 갈릴레아 호수가에 나와 갈릴레아 호수가에 와 앉으셨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와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주위에 모였다. 설교무대가 바뀌었던 것이다.이 군중은 사도시대의 교회공동체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산상설교를 이들에게 쉽게 설명하시려고 설교대를 마련해야만 했다.그 설교대는 물위에 떠있는 배 한 척이었다.그러니까 청중은 물가 언덕에 앉았고 예수님은 물위에 떠있는 배에서 청중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산상설교에 이은 수상설교가 시작되려고 하는 것이다. 설교의 제목은「하느님의 나라」.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강력하고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빗대어 설명하시며 이에 관한 여러가지 비유를 농부들의 일상생활에서 그 예를 든다. 그 첫번째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이다. 이 씨부리는 비유의 말씀은 마르꼬、마태오、루가의 세 복음서가 거의 똑 같은 내용으로 권하고 있지만 말마디 사용에서 서로 다르다.이것은 사도들이 각각 자기 교회에서 따로 사목한데서 기인한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교회라는 공동체로 심어졌고、그 공동체는 그때에는 미미한 인간집단으로 보였지만 하느님의 영원한 구원계획에 따라 강력한 생명체로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같은 어조로 하느님나라를 설명하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 생명체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씨가 뿌려지는 상황에 비교하지 않고、「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교하며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교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잘 들으시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비유의 내용은 청중도 잘 알고 말하는 사람도 잘 아는 생생한 경험에서 취했다.『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갔습니다.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앗도 있어 새들이 와서 먹어 치웠고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도 있어 싹이 금시 돋아났지만 땅속에 깊이 박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햇빛이 내려쪼이자 곧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자라나 그 씨앗을 덮쳐버렸습니다. 그 씨앗은 열매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씨들은 자라고 커져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떤 것은 30배의 소출을 내고 어떤 것은 60배、100배의 소출을 내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너무나 쉽고 명백해서 큰 소리로 읽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점이있다. 우리의 농부들이 씨뿌리는 광경을 연상해 보고 이 비유와 견주어 보면 우리의 농부들은 씨를 심을 때 길가에나 돌밭、혹은 가시덤불에 씨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랑은 세우고 씨심을 골을 판 다음 거기에 씨를 뿌린다. 그러니 씨가 딴 곳으로 날아갈 리가 없다.
그러나 팔레스티나 에서 예수 당시의 농사는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밭을 잘 가꾸고 씨를 심지않고 먼저 씨를 휘휘 뿌린 다음 밭을 갈았다. 능률적이고 쉬운 방법이겠지만 씨앗의 허비가 많았다. 그러니 어떤 것은 길가에(길가라 해도 행길이 아니고 밭과 밭사이의 통로이다) 어떤 것은 돌밭에、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떨어짐직하다. 가시덤불도 씨를 뿌린 다음 베어버리기 때문에 씨가 자랄 때에는 가시덤불이 다시 돋아나 씨앗의 싹보다 더 강하게 크게 자란다. 예수의 청중은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그 불행한 씨들이 무엇을 빗대어 하시는 말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비유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은 막 싹이 돋는 교회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교회는 이제는 꽤나 자라났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날로 많아졌다. 그들 대부분은 열성적이었지만 가끔은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러는 반대자도 있었다.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는 사람、사리사욕에 젖어 들어 공동체를 탈퇴하는 사람、이런 사람들을 사도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네 가지 종류의 파종이 있는데 그 중 세가지는 실패작이고 나중 한 가지만이 성공작이다.이 세가지 종류의 실패작 파종을 해석하면서 길가파종을 바리사이파、돌밭파종을 갈릴래아사람들、가시덤불파종을 헤로데파와 사두가이파들에 빗댄 것이라고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가톨릭 학자들 대부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께서 하느님나라를 설명할때는 이미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는 군중을 대상으로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집고 넘어갈 점은 실패한 씨앗은 소수라는 것이다. 종류는 셋이지만 마르꼬는 실패 씨앗을 단수로 쓰고 성공씨앗을 복수로 쓰고 있고、마태오는 실패 씨앗을 복수로 썼지만 성공씨앗의 수와 같은 수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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