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는 사순절은 삶, 죽음의 의미와 함께 성체성사를 통한 나눔의 신비로 묵상 할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삶과 죽음이란 말은 간단하지만 그 속뜻을 생각해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떻게 이 삶에 끌려 나왔는지 잘 모르고 태어날 것을 미리 알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에 이끌려 나올 때부터 날마다 한걸음씩 죽음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얼마 남지 않는 삶이 끝나기 전에 삶의 구실이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은 잠시 뒤로 물러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나온 삶을 회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성서에서 우리들은 성한 몸까지 세상에 그대로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웃에 대한 사랑 즉「나눔」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 나누려고 노력했고 심지어는 마지막 피 한방울 까지도 우리 죄를 대신하여 내어주셨다.
사실 오늘날의 사회는 우리교회의 나눔과 봉사를 애타게 원하고 있다.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나눔의 신비를 우리들이 나누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은 실망을 느끼고 말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내어 주면서까지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하셨다. 그리고 저 십자가에서 상처 투성으로 매달려 계신다.
「마르셀리노의 기적」에서 처럼 오늘날 우리교회는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려 힘써야한다. 주님의 모범을 따라 나눔의 교회가 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 교회가 되고 만다.
아무리 나누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주님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게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죽음」이다.
얼마전 젊은 부부가 찾아와서 얼마의 돈을 내놓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써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이틀전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때 입을 예복과 결혼 피로연을 생략하고 돈을 모아 갖고온 것이었다.
이러한 까닭을 묻자 그들은 너무나 서로를 사랑하기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서로에게 주기로 했다. 그래서 서로 희생을 바치고 결혼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일생에 단 한번인 결혼을 남을 위해 나눔으로 시작한 그들이었다. 결국 나눔이란 자기 희생없이는 안되는 행위이다.
보통 나눔이라고 하면 모두들 너무나 큰 의미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듯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내어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나눔인 것이다.
모세가 자기 민족들을 에집트에서 구하기 위해 떠날 때 하느님께 가진 것이 없다고 했지만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셨다.
사실 우리 이웃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마음씨와 사랑、특히 인간다운 대접을 원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불행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바로 사랑의 결핍에 있다고 본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복지사회 건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신병환자는 늘어나고 있다. 현대사회가 사랑의 나눔이 부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사랑이 결핍된 사회는 인간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질이 부족한 이들에겐 물질을、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겐 사랑으로 이웃을 감싸고 나누려 할때 주님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신다.
권위, 명예, 부, 지식으로 우리는 가끔 세상에서 만족을 얻고자 한다. 이런 것들은 주님 대전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현세의 것은 천상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것을 이웃에게 나누려고 노력할 때 주님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다시 내리신다. 그것은 바로 천상의 기쁨인 것이다.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사랑은 바로 우리자신들을 통해 그 사랑을 나누려고 하신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당신 아들을 온전히 내어 주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성체성사」라는 완전한 나눔의 모습으로 그 모범을 보이셨다.
주님께서 친히 보이신 이「나눔의 신비」를 이제 우리들은 깊이 묵상하고 사랑의 횃불을 들어야 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들었듯이 교회가 이 땅에서 할 일은 나눔의 등불을 들고 우리 이웃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리고 성체성사로 우리마음에 새겨진 부서지고 조각난 빵인 예수 그리스도의 나눔을 이웃에도 나누어 주어야한다. 엠마우스의 두 제자가 빵을 나눌 때 비로소 주님을 뵈었듯이 남에게 희생과 봉사를 다하지 않고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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