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시어 외부를 향한 생명의 대외활동을 펼치셨다.(구원경륜) 이 파견들은 하느님 자신 안에서의 대내활동 즉 성자와 성령의 발출들에 근거한 것이므로 하느님의 구원경륜은 그 내면적 본질 즉 내재적 삼위일체의 신비를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자와 성령의 두 파견이 어떻게 하느님 자신 안에서의 생명운동과 깊이 관련되어 실현되었는가? 또한 그 파견들이 우리 구원과 연관하여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에 대해 무엇을 계시하였는가?
사랑의 신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의 고유한 특성은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 밖으로 이탈하는 것이다. 사랑은 타자를 향해 자신을 열고 나아가도록 안에서 재촉하는 출동이고 타자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인력이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극복、초월하여 열고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타자에게로 향해 가는 운동이다. 성부와 성자는 서로를 사랑함에 있어서 자신들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사랑을 넘어 하나의 자립존재를 형성하는데 이 자존재가 성령이다. 성부와 성자는 성령 안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며 서로에게 가기 위하여 자신들 밖으로 이탈한다. 이 자기이탈、상호충동과 인력、상호사귐은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가 온전히 자신을 서로에게 양도함으로써 성령이 발출하므로 성령은 하느님의 위격적 선물、사랑、친교이다. 성부와 성자의 자기이탈은 사랑의 순환、생명의 역동적 움직임、순수한 선사인데、이 모든 것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령 안에서 하느님은 영원히 자신 안에서 또 자신 밖을 향하여 자신을『선사 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 선사는 자동적으로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랑、선사는 자유가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자신 안에서 영원히 줄 수 있는 분이지만 온전한 자유 안에서 인간에게 자신을 양도하신다. 이것이 구원경륜의 내용이다.
발출과 파견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이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신 것은 당신 자신을 두가지 방식으로써 인간에게 선사하시는 것이다. 창조와 구속과 성화는 하느님이 역사 안에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점차로 양도하는 결과이고 이 모든 것은 종말의 완성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써 완성된다.
하느님 자신 안에서 성부는 순전히 주시는 분이다. 그 분은 신적생명의 기원되지 아니한 기원이고 순수한 근원이고 순전한 선사이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신적 생명과 힘과 영광을 받는다. 그러나 그분은 그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보존하고 소유하며 스스로 즐기지 않는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것을 비우기 위하여 또 넘겨주기 위하여 받는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둘이 하나 됨으로써 마무리되고 자신을 넘어서 이타적으로 향하지 않는 사랑은 또 다른 형태의 이기심이 될 수 있다.
성자는 순수한 중재이고 순전한 지나감(빠스카: 과월、유일)이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완전한 선사에서 발출하는 성령은 순수한 받음、순수한 선물、순수한 성취、영원한 기쁨이다. 순수한 끝없는 완성이다. 따라서 성령은 하느님이 세상에서 당신 자신을 주시는 종말론적 선물이다. 그 분은 세상을 결정적으로 성화하고 완성하신다.
구원경륜 안에서 성부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실 때에 성자가 사람으로 태어나셨다:『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3、17:로마8、32). 사람이 되신 성자는 성부로부터 받은 모든 것(요한16、15)을 독점하지 않고 성부에게 되돌려주기 위하여 자신을 비운다:『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 되셨다』(필립2、6~7). 성자의 강생은 우리를 위한 포기이고 성부에게 자신을 되돌려주는 자기비움이다. 성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명한 성자의 지성적 삶은 성부에게 자신을 되돌려주는 전적 선사의 구체화이다. 성자가 성부로부터 받은 자기 존재를 찬미와 감사 속에서 되돌려주는 선사의 삶 곧 순종의 생활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절정에 이르고 마무리되었다. 부활은 성자의 완전한 되돌려줌에 대한 성부의 응답이다. 성부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다시 살림으로써 성자의 순종에 전적으로 응답하였다. 역사 안에서 성부와 성자간의 완전한 상호증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성취되었으므로 그 증여로부터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파견되셨다. 강림하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성자를 통하여 성부를 선사받음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동참하게 된다.
성삼위께 영광을
『아버지、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요한복음서 17장 전체에 걸쳐 보도되어 있는 예수의 이른바「사제적 기도」는「영광」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자기의「마지막 때」라고 생각한 순간에、자기의 죽음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완수하게 되는 순간에 예수는 아버지에게 감사의 기도로써 자신의 구원사업의 전반적 의미를 요약한다. 영광은 그리스도가 성자로서 성부와 영원히 나누는 사랑의 일치이며 동시에 인간이 동참하게 되는 일치이다. 이 일치가 온전히 계시되고 인간들 사이에 구현되기 위하여 성자가 이 세상에 파견되었고 또 십자가상 희생 죽음을 감수하려 하신 것이다.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내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5(22)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고 또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하느님이 인간들 가운데 결정적으로 영광을 드러내고 인간들로부터 종말론적으로 영광받게 되셨다. 하느님이 종말론적으로 영광을 나타내고 받으심은 세상의 구원이고 생명이다(요한17、3). 따라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나타나 하느님의 생명에 들어가기 위하여 거듭 성삼위께 온 삶을 다하여 영광을 드린다:『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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