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온 인류의 간절한 염원이다.그러나 이 세상에는 전쟁ㆍ기아ㆍ가난ㆍ질병ㆍ마약ㆍ핵ㆍ인권부재ㆍ환경오염문제로 고통겪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분쟁ㆍ갈등들이 심화되고 있다.
첨단 과학이 인류 역사 이래 최고조로 발달한 오늘날 평화에의 갈망은 그 어느때보다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지난해「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내걸고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바 있다. 그러나 세계성체대회가 끝난 지금、우리 교회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또 변화해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사회는 오히려 반(反)평화적인 방향으로 나가는듯 혼란스럽다. 각종 폭력과 인신매매를 비롯 낙태를 일삼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풍족한 사람은 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를 누리고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은 셋방 또는 무허가집을 전전해야되고 하루 세끼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에 있다.
최근에는 전세값 폭등으로 무주택 서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있으며 각종 공해ㆍ환경 오염 문제와 함께 청소년ㆍ주부층 까지 파급된 마약문제는 심각한 실정이다.
시야를 넓혀 세계를 바라보면 반(反)평화적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차대전이 끝난 지난 45년이래 크고 작은 전쟁에서 2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월평균 사망자수가 4만명에 달하고 사망자 5명중 민간인이 3명꼴이나 된다.
10년 가까이 끌어온 이란ㆍ이라크전쟁에서만 40만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뿐인가、전세계에 10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직도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매일 4만명의 어린이가 굶주려 죽어간다. 이것은 2초에 한명꼴로 죽어가는 유아 사망률을 말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한해동안 설사병의 탈수 현상만으로 5백만명의 어린이가 숨졌다.
1974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회의는『앞으로 10년안에 배고픈 채로 잠드는 어린이가 없어지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10년이 지나고 또 다른 10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사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70년대에는 5억에 불과했던 영양결핍인구가 점점 늘어나 오는 2천년대에는 13억에 이를 전망이다.
이세상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질병의 4분의3 이상이 깨끗한 식수와 위생시설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가난은 이런 점에서 특히 비극적이다.
극도로 조악한 숙소에서 살아야 하는 빈민들의 숫자는 세계인구의 4분의1인 10억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 약1억인구는 그 어떤 주거지도 갖추지 못한 채 거리위에서 다리밑에서、쓰레기장에서 골목이나 문간에서 잠을 청한다.
마약은 이제 인류 최대의 적으로 세계가 퇴치정책을 벌이고 있다.
마약은 강대국 미국을 좀먹어들어가 이미 71년 당시 닉슨 대통령은 마약을 「미국 제일의 공적」이라고 단정、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했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마약은 근절되지 않았으며 최근 부시 대통령은 마약중계무역을 하는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해 「주권침해」「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파나마를 침공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히로뽕이 급속히 번져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윤락녀ㆍ연예인ㆍ재벌2세 등 극히 일부계층에서만 사용되던 히로뽕이 주부ㆍ학생 등 일반인에게도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의 상태로 보아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마약근절이 최고의 정책목표가 되지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이웃집 가스통이 폭발해서 우리집 담이 무너지는 위력에는 놀라면서도 핵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전문가들은 핵사고 발생율이 50억분의 1밖에 되지않아「별똥에 맞아 죽는 확률보다 더 낮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난 10년동안 발생한 원전사고는 자그마치 14개국에서 1백51건이나 기록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련의 핵물리학자 레가초프는「체르노빌」원전의 시스템이 잘못되었으므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수십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수천km떨어진 소나 사슴에게까지 피해를 입힌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언은 『체르노빌을 잊지마라』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영광원자력발전소 근무자의 무뇌아(無腦兒) 출산을 비롯、핵폐기물투기와 방사능유출사건이 심심찮게 꼬리를 물고있어 핵에 대한 공포는 바로 가까이 있음을 실감케 하고있다.
문명과 성장을 위한 산업화와 자원ㆍ환경의 이용은 오염의 심화라는 피할 수 없는 환경문제를 대두시켰다. 환경오염문제는 하나뿐인 지구의 생존이 걸린 모든 인류의 숙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고도산업화의 추진 등으로 인해 숱한 환경오염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각종 오염물질의 양적인 증가와 질적인 악화로 위험수위를 넘고있다.
대기ㆍ수질 등 우리나라의 환경오염은 악화일로에 있으며 중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환경오염은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협하고있다. 인간의 권리 또한 세계 도처에서 침해당하고 있다. 물먹이기ㆍ구타ㆍ전기고문 그리고 납치의 만행이 음지에서 자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숱한 양심수와 고문ㆍ납치ㆍ폭력 등의 인권 침해 사례가 줄지않고 있다. 적은 돈、전세금을 떼이는 경우를 비롯 부당 해고등 근로자 침해 폭행 감금 청소년ㆍ부녀자 권익침해 명예와 신용 침해 등 인권 침해사례가 허다하다.
특히 국내에서 인공 유산된 태아의 수가 1년동안 1백20만명을 돌파했다는 보도에서와 같이 생명 경시 현상은 태아 성감별 안락사의 합법화에까지 이르는 등 그 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위협적인 오늘날 상황에서 참 평화란 무엇인가? 모든 인류가 갈망하고 염원하는 평화에 대한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평화」하면 소극적으로는 전쟁이나 사회불화가 없는 상태를 말하고 적극적으로는 모두가 서로 화목한 상태를 말한다.
성서에서「샬롬(Shaldm)」이라는、평화를 가리키는 말의 뜻은 한마디로「온전」함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자연과 자기 자신과 하느님과 화합한 사람의 처지를 가리킨다.
성서의 평화는 개인의 안전과 안녕、집단이나 국가간의 일치와 화목、지상의 인간과 하느님과의 일치와 화해、인간의 종말론적 구원을 의미한다.
1965년에 발표된 2차 바티깐공의회의「사목헌장」은「평화는 전쟁없는 상태만도 아니요、적대 세력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며、전세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인 것이다」(78항)라고 규정한다.
평화가 행복의 조건이듯 정의의 구현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 한마디로 평화란 정의로운 삶에 따르는 모든 복락의 총체라고 할수 있다.
2차 바티깐공의회는「사목헌장」에서 평화건설의 한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교회는 현재의 국가체제는 전쟁의 요인을 상당히 소지하고 있다고 보면서 진정한 평화를 달성하자면 세계국가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공의회는 세계정부를 주장하지만 국가의 완전폐지를 말하지 않는다. 국가와 세계정부가 공존하려면 일종의 세계 연방제가 필요할 것이다.
공의회는 분쟁과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과도한 경제적 불균등과 과도한 지배욕이라고 진단하면서 세계적 정의의 실현과 과도한 지배욕의 효과적인 억제를 위해서는 세계정부가 요청된다고 제시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장엄미사중 강론을 통해『3천년대가 다가오는 현시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평화」를 가정에서、사회에서、국제관계 등에서 실천에 옮기라』고 당부한바 있다. 교황은 또 올해 평화의날 메시지에서『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고 전제、『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강한 환경을 보전하려는 신앙인들의 투신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나온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비평화적 요소ㆍ반평화적 현상들을 해결하기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평화를 저해하고 짓밟는 모든 문제들이 바로 우리가까이、나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일일 것이다.
나와 내 가정에서부터 우리 이웃에서부터 비평화적ㆍ반평화적 요인들을 찾아 척결한다면 평화는 이미 우리가까이 와 있을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세상에 참 평화를 주기위해서 오셨고 그 평화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때문에 교회가、그리스도인이 평화를 실천해 나가는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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