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가진 애독자들이 늘어나면서 5면에 자리한「독자들이 엮는 광장」란에 기고하는 신자 독자들이 많아졌다.
「애독자중에서도 애독자」인 그들 가운데「독자들이 엮는 광장」에만 장장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꾸준히 투고해온 최다 독자기고자를 본지 창립 63주년을 맞아 방문했다.
강원도 탄광촌에서 한달에 2~3편 이상씩을 기고해온 원주교구 장성본당의 철암공소에서, 전교회장을 맡아온 김용순(이시돌 67)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본사 기자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그는 자신도『몇편을 기고했는지 헤아려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주 기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본지에 실린 60여편의 글들을 모두 모아두고 있는 김용순씨가「가톨릭신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4년.
그해 2월24일자「독자논단」란에「교회출판물은 신앙생활의 힘」이란 제목으로 성서와 교회관련 서적들을 적극 권장하면서 가톨릭신문과 인연을 맺은 김용순 회장은『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필독해야 할「가톨릭신문」이기에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공소에서 신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가톨릭신문」을 읽으라고 권했다』면서 가톨릭신문구독을 신자된 당연한 의무요 도리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신자들이 저의 기고 글을 읽고 신앙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만족하다』고 밝힌 김회장은 독자투고 역시 본지를 구독하는 이유와같다고 토로했다.
특히 본지의「성서해설」과「신학강좌」「일요한담」등을 즐겨 읽어왔다는 김용순씨는 이를 통해 하느님의 섭리와 삶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며 본지에 「 감사」를 표했다.
『왜정때 보통학교만 졸업한 제가 이곳 철암공소에서 20여년간 전교회장으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느님과 「가톨릭신문」의 덕분』이라고 겸손해 했다.
예비자들의 교리교육에 가톨릭신문을 자주활용 했다는 김용순씨는『「가톨릭신문」에는 온갖 교리지식과 교회소식이 가득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박정권 치하에서 농촌과 농민들의 피폐가 심해 이를 빨리 시정해야 한다는 글을 중앙지인 ㅈ 일보에 독자투고를 했다가 정중히(?) 거절 당했다』는 김용순씨는『그후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일간지를 읽기 보다는 불변의 하느님 진리가 담긴 「가톨릭신문」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하느님 뜻에 따라 살자」라는 생활 신조로 철암공소에서 89년 9월1일 퇴임하기 전까지 7백여명을 입교시켜 세례를 받게 한 그는 다른 애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한 신자로 알려져있다.
그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또한 심부름꾼으로 일한 것 뿐 당치도 않은 얘기』라며 겸손해 했다.
1975년 본지에 농촌본당의 어려움을 호소한 글을 기고했던 김회장은 얼마후 홍콩에 거주하는 임마리아라는 교포신자로부터 미화3백 달러를 받기도 했다.
『그때「가톨릭신문」에 글을 기고한 보람을 크게 맛보았습니다.』 그는『그분의 뜻에 따라 농촌 성당신축에 사용했으며 원주교구 공소 건물중 가장 잘 지어진 대현공소가 바로 그 성금의 결과』라고 밝혔다.
공소일 이외에는 기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한다는 김회장은 본지 이외에도 틈틈이 글을써 원주교구보인「들빛」을 비롯 경향잡지, 생활성서, 레지오마리애 등에도 기고해 왔다.
본지에 실린 60여편의 글을 포함 총1백50여편을 교회 매스컴에 기고한 김회장은『이 글을 한권의 책으로 엮는 것이 소원』이라며 제목도 「천국어사 출두요!」라고 정해 놓았다고 말했다.
투고한 글들이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은 김용순회장은『자연은 거짓이 없고 정직하며 하느님의 무한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혼란한 현실로 자연의 순리처럼 풀면 해결안될 일이 없다』고 역설하는 김회장은『우리 모두는 순수한 자연을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공희 대주교의 권유로 입교、1951년 11월에 세례를 받은 그는 산수가 수려한 북한의 신의주가 고향이다.
그래선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과 농촌을 사랑한다는 김용순회장은 요즘 농촌의 고령화 현상을 무척이나 걱정했다.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사람 신체에 비유한다면 얼굴과 팔, 다리에 해당한다』며 『농가부채 농수산물 수입 등으로 농민에 해당하는 팔 다리가 병들어 있는데 도시인 얼굴만 반반하게 치장해서야 사람이 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농촌문제를 김용순 회장은『역사가 깊고 교회정론지인「가톨릭신문」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 주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는 농촌이 우리민족의 뿌리라고 강조하면서『도시만 치장하는 국가정책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곳은 교회 언론뿐』이라며 본지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하느님께서 친히 세우신 우리교회가 2천년동안 이어져온것도 뿌리르 소중히 여긴 결과라는 김회장은 「가톨릭신문」도 63년의 든든한 뿌리를 바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 속에 계속 성장하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가톨릭신문을「철저히 사랑하는」애독자 김용순회장의 단 한가지 불만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아마도 신자들이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교회출판물을 등한시 하는 것 같다며 김용순회장은 안타까와 했다.
또한 그는 교회공동체의 기초이자 뿌리인 지방 공소에 대한 지면이 거의 없는 것이 불만이라며 다시한번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여년동안 철암공소에서 봉사하면서 다리를 다쳐서 주일미사를 딱 한번 빠진 김용순 회장은『교구내 80여개 공소중 유일하게 자립한 철암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지 못하고 퇴임하게 돼 무척 서운하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곧 경기도 여주의「사도의 모후」라는 피정의 집으로 거처를 옮길 김회장은『그곳에 가서도 하느님께 대한 말씀봉사와「가톨릭신문」에 기고하는 일만큼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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