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란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의 어린이들은 보릿고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것이다. 과거의 춘궁기만 되면 어린이들은 물론 이땅의 모든이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고품과 싸워야 했다. 그것은 우리의 아픈 과거였다. 그러나 사치와 낭비가 판을 치는 오늘에도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교실에서 빠져나와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 어린이들이 있다. 신 춘궁기인가?
아직도 우리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가 파아란 외국의 양부모를 찾아 비행기에 오른다 바로 해외입양아들이다. 이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해외입양을 방관했기에 오늘 우리는 「고아수출 1위국」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교회가 반성하고 자선단체가 늘어나고 사랑을 나눈다는 이들이 많아진 이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굶고 있는 어린이들, 양부모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아이들을 두고만 볼 것인가? 우리가 맡아야 할 몫이다. 「이제는 우리가」해야 할 때이다. 작으면 작은대로 없으면 없는대로…<편집자 주>
■ 해외입양
우리의 아들 딸 우리품에서 키워야
얼마전 MBC-TV「인간시대」를 통해 방영된 해외 입양아「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한편의 애절한 드라마였다.
30년전 우리나라 해외 입양 제1호로 스웨덴에 입양된 수잔 브링크. 못먹고 못입어도 한국에서 함께 살 것이지 왜 머나먼 이국땅에 자신만 홀로 보냈느냐고 몸부림치던 그녀. 수잔도 울었고 그 생모도 울었고 TV를 지켜보던 시청자 모두가 울었다.
30년 세월의 한과 고통-그들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에、그것이 그들만의 비극이 아니었기에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는 절실했다. 수잔 브링크의 이야기는 해외 입양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물론 해외 입양아들이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가 파란 부모이지만 좋은 이들을 만나 훌륭하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적의를 드러내고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을 원망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친부모는 물론이고 고국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생활 수준이 향상됐고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주체치 못하는 풍요로움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되돌려져야 할 때이다. 더 이상 해외입양아들의 아픔과 고통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해외입양의 역사
우리나라 해외 입양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인한 전쟁고아、가난으로 인한 기아가 늘어나면서 본격화됐다.
이때부터 고아원이 늘어났고 고아들이 점차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인 여러 이유로 인해 낳아준 어머니에게서 양육되지 못한다면 사회는 그 아이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고아원 등 시설에 수용되기 보다는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로 가정은 한 인간에게 있어 최선의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먹고 사는 일이 절박했던 당시 사회상으로 미뤄 볼 때 국내입양이 여의치 않았고 차선책으로 해외입양이 시도됐다.
해외입양기관으로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 동방복지회、한국사회봉사회、대한사회복지회 등 4곳이 있다.
해외 입양기관으로 역사가 깊은 홀트아동복지회는 1955년 미국「오래곤」주의 농부였던 고 해리 홀트씨가 6.25전쟁직후의 참담함속에서 버림답은 혼혈고아 8명을 입양함으로써 시작됐다.
그후 해외입양은 꾸준히 추진됐고 전문기관도 늘어났다.
우리의 고아들은 미국을 비롯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으로 보내졌다.
해외입양이 6.25전쟁후 30년동안 불우아들을 건전하게 기르는 하나의 방안으로 공헌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졌던 50년대부터 1987년 말까지의 해외입양 실태를 보면 우리에게 가장 궁핍하고 어려웠던 50년대와 60년대의 20년 동안에는 8천2백명을 입양시킨데 반해 70년대는 4만4천5백80명 80년대는 불과 7년사이에 5만5천1백71명을 해외로 입양시켰다.
바로 70년대는 경제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생활이 보다 윤택해졌고 80년대는 우리 스스로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발전되었다.
가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해외입양을 한다면 우리가 왜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70년대에 오히려 입양 숫자가 대폭 늘어났고 80년대 7년동안은 지난 30년간의 입양실적을 웃도는 기록을 남겼을까?
바로 경제적 성장에 가리워 진채 정신적, 윤리적으로 피례된 현대사회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에는 해외입양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외국의 신문들은 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뤄낸 한국이 고아수출 세계1위라고 떠들어댔다.
이제 해외입양문제는 입양을 보낸 친부모와 양부모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해외 입양아들은 오늘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왜 나를 낳아준 친부모와 고국을 떠나 입양되었을까?』라고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입양아들이 입양되어온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지만 반대로 양부모에게 반항하고 방황하거나 친부모에 대한 섭섭함과 증오심으로 결국 성격이 난폭해지고 심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해외입양에는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이국에서 더 심각 할수 있기 때문이다.
대망의 2천년 대를 앞두고 정치, 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선진국을 표방하는 이때 아직도 우리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 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연간1만3천여 명의 어린 생명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있으며 이들의 절반이상이 외국으로 입양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고아들을 길러야 한다. 그 아이들은 바로 우리의 2세이며 그들이 곧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국내입양현황
해외입양에 대한 국내외적인 지탄의 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 3월13일 96년부터 해외입양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보사부는 국내 입양을 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공제해주고 국민주택 분양에 우선권을 주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현재까지 양부모의 자격기준을 45세 이하로 제한하던 것을 50세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결혼 후 3년이상 돼야 입양이 가능했던 것을 불임부부의 경우 3년 이내라도 입양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발표는 고아수출 1위국이라는 불명예를 씻고 어린아이들이 동일민족, 동일문과 권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하는 국내입양 활성화 대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외입양을 금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국내입양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관념과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사회보장 제도도 확립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위주가 아닌 아동위주의 입양이 하루 빨리 정착되는 것이다.
대부분 양부모들은 아동의 조건이 자신들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이를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곧 아동이 건강해야 하며、친부모의 친권의사가 확고해 입양후 아동에 대한 양육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혈액형이 같고 아동의 외모가 예쁘고 양부모를 조금이라도 닮을 것、생모 출산 연령이 젊을 것、친부모의 학력이 중등교육 이상일 것、출생배경을 알 수 있을 것 등등…
그러면 입양을 기다리는 장애아동들의 갈 곳은 어디인가.
이들에 대한 국내입양 기피가 곧 해외입양으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는 선진국 에서의 장애아 양육은 큰 부담이 없다.
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장돼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우리의 장애아동을 쾌히 입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핏줄들을 우리가 보호하지 못하고 해외로 입양시키는 것을 방관해 온 우리로서는 이제 그 짐을 나누어 져야 할때가 왔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불과 몇 년후이면 국내입양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장애아동들의 해외 입양길 마저 막히게 된다.
이제는 우리도 서로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지난해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한마음한몸운동을 전개、그 구체적인 실천사업의 하나로 국내입양을 적극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우리의 아이들을 언제까지나 해외의 양부모에게 떠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교회가 스스로 이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회장·최선웅 신부)는 입양·결연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성가정 입양원」을 개원、국내입양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민간기구로는처음으로 국내 입양전담기관으로 인가 받은 성가정 입양원(원장·조용원)은 국내 입양 장애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계몽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89년 12월말까지 성가정 입양원에 입양을 신청한 이들은 5백74명이며 이중 59명이 입양의 기쁨을 맛보았다.
입양아동에 비해 입양을 원하는 가정이 많은 것은 국내 입양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입양사업을 일시 보호수용하는 성 가정 입양원은 입양상담과 더불어 미혼 상담, 결연사업을 펼치면서 국내입양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영, 유아들이 입양된 후에도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정위탁보호제도의 일환으로 「사랑의 부모 찾아주기」운동도 펼치고 있다.
사랑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될때까지 일시적으로 자녀를 양육해 주는 제도로서 친부모와 아이가 헤어지는 고통을 없애고 가정을 붕괴시키지 않는 최선의 방책일 수 있다. 사랑의 부모는 바로 국내입양 활성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서울 신당동본당 김모씨는 10개월간 사랑의 부모를 자청한 봉사자. 2남1녀를 둔 김씨 부부는 과거에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해외 입양 길에 오른 아동을 양부모에게 테려다 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울부 짓던 아이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어 사랑의 부모가 될 것을 결심했다. 2남1녀를 둔 김씨 부부는 처음 아이를 데려올 때 가족회의를 열어 의견을 수렴했다. 처음에는 선뜻 응하지 않던 자녀들도 이 일의 필요성을 들은 후 쾌히 승락했다. 생후 3개월 된 크리스티나 양을 키워온 이들 부부는『크리스티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친부모에게 보낼 때 많은 고통이 뒤따랐으나 빨리 친부모의 품으로 보내는 것이 최선책이란 생각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들은 요즈음도 서로가 자주 만나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현재 성가정 입양원을 통해 사랑의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은 10세대이다. 사랑의 부모가 늘어나고 결연 후원자가 증가할 때 국내입양은 정착 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입양시 예쁘고 건강한 아이만 원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정에 굶주리고 사랑이 필요한 아기들에게 사랑의 단비를 내릴 수 있는 참부모의 자세를 기다듭는 자세를 배워야 할 때이다.
어린 아기의 맑고 밝은 웃음 속에서 아기예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아이든 장애아이든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아닌가!
■ 결식 아동
풍요속에 굶는 아이들 우리가 먹여야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교실에서 빠져나와 수돗가에서 물 한모금으로 배를 채우는 어린이들이 있다.
89년 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 4천8백30달러、게다가 88년에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화려한 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에서 아직도 점심을 굶는 어린이가 있다.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에 얼마나 큰 모순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생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며 이「 먹거리」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국민학생4백80만명 중 9천4백22명이 경제적 궁핍 때문에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교부 통계자료에 따른 전국 결식아동 분포를 보면 90년2월 현재 △서울 2천16명 △부산7백13명 △대구 33명 △인천 2백66명 △광주 6백42명 △대전 1백89명 △경기 7백53명 △강원 8백83명 △충북 4백2명 △충남 1천98명 △전북 6백43명 △전남 5백59명 △경북 5백69명 △경남 5백76명 △제주 80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결식어린이의 수는 불충실한 조사방법과 고학년중 열등감, 자존심 때문에 밝히길 거부하는 학생들을 감안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국민학교의 5학년 담임으로 있는 한 교사는 『조사 과정중 교육구청에서 한 학급당 1~2명 이내로 보고하라는 회람이 둘려졌다』고 밝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물론 이 수치가 전체 학생들 가운데 0.2%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굶는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 되고 있으며 교회의 입장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한 산업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이농현상이 본격화되고 대도시의 인구집중 현상과 함께 도시빈민층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으로 생활, 교육수준은 높아졌지만 경제정책의 실패로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도시빈민의 수가 전국적으로 3백50여만 명으로 추산되고 그중 2백 만명 정도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빈민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 해결을 위해 밤일을 하거나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야 하는 등 열악한 조건에서 가족 대부분이 노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이들은 방치될 수 밖에 없고 아침식사는 물론 점심도 못먹는 경우가 많다.
또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사망한 경우 병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경우에는 아이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빈민들 중 알코올 중독, 가출, 이혼 등으로 결손 가정의 어린이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결식 어린이 중 50%이상이 결손가정자녀들로 밝혀져 도시빈민을 위한 사회정책 전반의 재검토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홍보위원 최일해 씨는『어린이들을 굶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도시빈민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면서『도시빈민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사회 역시「정신적 결식」에서 완전히 자유로 울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 결식어린이나 빈민들이 교회나 사회로부터 완전히 방치되거나 도외시되는 것은 아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많이 있다. 또 교회 전체적으로도「한마음 한 몸」운동 등 크고 작은 움직임이 있기도 하다.
민간단체인「한국어린이보호회」(회장·이상용)는 결식어린이들에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던 88년 6월부터 서울 변두리 국민하교 17개교를 선정해 1천여 명에게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운동」을 전개、정부차원에서 전국 결식 어린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도록 하는데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와 함게 현재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와 한국 일보사가 공동으로 법 국민운동 차원에서 펼치고 있는「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총 9천5백명의 결식어린이를 위해 한끼당 8백원씩 1만2천명 분의 예산 17억원을 확보、각급 학교에 지원하고 있다.
한국어린이보호회 회장 이상용씨는『현재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17억원 중 5억 정도가 인건비, 시설비 등으로 소요돼 실제 액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며『민간단체를 활용하면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식어린이 문제를 근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정부에서 영세민, 생활보호대사의 폭을 넓혀야 할 뿐 아니라 그 액수를 높이도록 국가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에서 결식어린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이지만 교회에서도 이 일에 적극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사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는 교회정신에 따라 결식어린이의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방향을 제시 해야 할 뿐 아니라 직접 생활현장에서 봉사해야 한다.
한국천주교 2백주년 기념 사목회의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불우이웃에 대한 교회의 지원이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 전체 본당중 52.38%가 6%이하、7.62%가 10% 이하의 예산을 불우이웃을 위해 책정하고 있어 양적으로 팽창하고 중산화돼 가면서 이들을 멀리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목활동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대해 교회공동체가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실천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 할수 있다.
그리고 교회공동체는 이들에게 결코 일시적으로 자선을 베푸는 단체나 구호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도시빈민위원회 간사 박영준 씨는『교회에서 사랑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웃을 사랑하고자 말로써만 외칠 것이 아니라 이는 실천해야 한다』며 『결식어린이들이 인간적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일회적, 시혜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공동체적 정신을 갖고 나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식어린이들에게 가장 근원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은 지역 본당이다. 교회의 기본단위인 본당차원에서 반모임, 주일학교 등을 통해 결식어린이들의 정확한 실태를 조사、본당 신심단체가 주일학교 어머니 회 등에서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먼저 각 본당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결식 어린이수를 조사하고、장기결석자나 결석 회수가 많은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가정형편을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다.또 신자 뿐 아니라 비신자 극빈가정도 조사해「빵」과 「복음」을 동시에 전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
또한 본당 예산 책정때 사회복지기금을 확대하고 연간계획을 수립、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본당 구역내 복지단체·시설에 대해 체계적인 지원을 퍼나가야만 할 것이다.
영국은 1944년、미국은 1946년부터 학교급식법을 제정、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급식을 실시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1954년 에 범국민적인 아동급식운동을 시작으로 현재 99.5%、중학생의 82.3%가 학교급식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 81년 학교급 식법을 제정했으며 현재 학교급 식대상자는 29만7천여 명으로 전체 학생의 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학교급 식폭을 당장 이 나라들과 같은 수치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 점심을 못먹는 결식어린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번영속에 가려진 우리 아이들、그들이 겪고 있는 신춘궁기(新春窮期)가 과연 그들만의 것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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