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중앙협의회(CCK)가 매년 내놓고 있는 교세통계표에 따르면 88년에 전국 각 교구에서 세례를 받은 새 신자는 대인 영세자 12만5천6백12명、자녀 영세자 3만8천4백7명등 총 16만 4천1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CCK통계 자료를 좀더 살펴보면 87년 17만5천 3백38명、86년17만2천 4백18명、85년 16만2천 7백31명、84년15만 8천 6백28명、83년 13만7천21명、82년14만2천 4백25명、81년 11만 9천 2백28명、80년 7만8천6백84명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자료를 좀더 면밀히 분석해 보면 8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매년 16만~17만명에 이르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탄생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보는 창간63주년을 맞이하여 이같은 사실을 토대로 한국교회가 과연 이 같이 새롭게 탄생되고 있는 하느님 백성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를 진단해보고「세례성사」의 기원과 역사ㆍ의미를 새롭게 살펴보면서 이와 관련된 각종 문제점들을 분석해 본다.
성사와 세례성사의 의미
일찌기 신학자 요셉 라찡거는『그리스도 신앙이란 인간 역사 안의 신을 대상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곧 하느님은 어떠한 표징으로 인간에게 나타나고 인간의 일상생활과 접목되고 있는가? 곧 신의 현존을 인간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인「사랑」의 표출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사랑의 표출이 바로「은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은총은 인간에게 어떻게 전달되고、또 이 은총을 받는 인간들은 어떻게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은총을 감지시켜주기 위해 하느님은 인간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알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는데 그것을 바로 「성사」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
곧 성사는 그리스도가 세운 은총을 상징하고 또 그 은총을 주는 외적표지이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예측케하는 볼수 있는 가시적 표지일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인간과 인간을 연결、일치시켜주는 감지할 수 있는 상징적 표지이다.
이같은 교리에 입각、세례성사의 의미를 음미해 보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곧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으로 해석할수가 있다.
성세、즉「세례성사」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되게 하는 볼수있는 표징으로 백성으로서의 주권을 부여받는 권리의 획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세례성사의 전례에 있어서「물로 이마를 씻는 예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정화」와「새생명」을 부여받는 것이다.교회가 세례에 있어서 생수(生水)즉 흐르는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교회는 아주 일찍부터「생명의 근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물을 채택하였음을 알수 있다.
이와 함께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세척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새로운 생명」에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정신ㆍ육체적으로 더럽고 고달픈것은 항상「죄의식」과「죄책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죄의식과 죄책감은 인간을 항상 구질구질하게 하고 일상의 삶을 피곤하게 한다. 이같은 사실에 따라 세례때「물로씻음」은 또한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세례성사는 인간의「원죄」와「본죄」를 없애주고、완전한 인격체로 환원시켜 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하느님 모상」에로 회복시켜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세례성사는 견진ㆍ신품성사와 마찬가지로 영구적 인호(印號) 혹은 표징을 박아준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인호」라는 말을 그리스도교신학에 도입한 성 아우구스띠노는 군인이 어느 특정 지휘관에게 속하며 그에게 충성해야 하는것을 나타내는 표적(表迹)에서 그 뜻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받게 되는 이 인호를 받은 사람은 거룩함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방해물을 놓지 않는한 그 인호가 표시하는 은총을 받게 되는것을 보장해 준다.
여타의 다른 성사들이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장애물을 제거하여 인간이 하느님과 다시 화해를 하기 위해서 거듭거듭 필요한것 인데 반해、세례성사는 이 인호를 통해 그것이 새겨지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자기의 여생을 일관하여 세례의 무류적 기능을 행사하도록 보호받는다.
또한 세례성사는 하느님이 내리는 다른 은총이나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전제가 되는 입문적 성사이다.
눈으로 볼수 있는 은총의 표지라고 정의라고 있는 성사들은 인간의 일생과 깊게 관련되어 있음을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곧 세례성사를 비롯 성체ㆍ견진ㆍ혼인ㆍ고백ㆍ신품ㆍ병자성사 등은 인간의 일평생을 일관하여 매일 일상의 생활에서 일어날수 있는 각종 상황에서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입문」을 거치지 않고는 다른 은총들이 부여될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하느님 나라」의 차원에서 주권을 얻지 못한、아무런 권리가 없는 구성체에게는 여타의 다른 권리가 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원용하면「입문」으로서의 세례성사의 기능은 더욱 잘 이해될 수가 있다.
이와같이 세례성사의 의미를 다시한번 정리해보면 세례성사는 하느님 나라의 주권을 부여해주는 입문 성사로서、「하느님의 본래 모상」에 참여함으로써 원죄와 본죄를 제거、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일원으로 그리스도의 각종 구원의 은총을 누릴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성사라고 정의될 수가 있다.
세례성사의 기원ㆍ종류
적지않은 교부들과 스콜라학파는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베풀때 세례성사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또 에스디우스(Estius)는 니꼬데모와의 대화때에 세례성사의 기원을 찾을수있고、성보나벤뚜라(StㆍBonaventura)와 스꼬뚜스(Scotus)등은 12제자를 파견할때 제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파견할때나 승천 후 만민에게 세례를 주라고 공포할때나 간에 어떠한 한 순간에 세례성사를 세웠다기 보다는 공생활 전체를 통해 성사의 신비를 점차 계시했다는 것이 현대 신학자들이 대체로 공감하고 있는 이론이다.
사복음(四福音) 사가(史家)들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은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한테서 세례를 받고난 다음 갈릴레아지방에 전도를 시작함으로써 시작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요르단강 건너편인 이방인의 갈릴레아에도 큰빛이 비치겠고 그늘지고 어둠에 잠긴 백성들에게도 빛이 비치리라는 말과 동시에 그리스도이전「회개하라、하늘나라가 다가왔다」라는 외침을 구원의 시작으로 본다면 바로 이시점이 그리스도가 세례성사를 제정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요르단강에서의 세례장면을 분석해보면 세례성사의 질료인 자연수와 세례성사의 형상인 성삼위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곧 성부는 목소리로、성신은 비둘기형상으로、성자는 세례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마태오 28장18절、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도록 공적으로 공포한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미 세례성사의 기원을 고찰하는데에서도 짐작되었듯이 세례성사는 그리스도 친히 제정한 것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례성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성서의 구절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요한3、5、마태오28、18이하、마르코16、16)
세례에는 물이 세례(水洗)만이 아니라「피의 세례」인 혈세(血洗)와「열망의 세례」인 화세(火洗)도 있다. 피의 세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받게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한 초대 예비자들이 그랬듯이 무죄한 어린이들도 피의 세례를 받았다.(마태2、16~18)
한편 열망의 세례는 그 범위가 넓다. 세례받기를 명료하게 원하였으나 그 의도가 이행되기 전에 곧 교회에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물로 씻는 수세를 받는 전례를 할수 없었을때、죽은 사람은 열망의 세례를 받게된다.
또한 자신의 과오없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른 사람들도 선한 생활을 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만인에게 충분히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교회헌장16)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그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도 묵시적으로 교회를 향해 있으므로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주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성세성사와 관련된 각종 주요 문제점
지금까지 성세성사의 기원과 의미ㆍ종류 등의 고찰에서도 음미되듯이 성세성사는 그리스도가 직접 관여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대단한 전환동기를 부여하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중요한 전환 동기를 부여받는 새 영세자들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는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가?
신영세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관심을 둘 수 있 는것으로 초기신앙생활에 대한 「사목적지도」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영세자들은 초기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들의 대부ㆍ대모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갓난 아기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삶의 과정과 직접 비유될 수가 있다.
대부ㆍ대모는 신영세자의 영적인 부모관계임에도 불구、이러한 영적인 유대관계가 깊이있게 유지되고 있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국 각 교구의 많은 본당에서 매년 주로 부활절과 성탄절에 세례성사를 베풀고 있지만、사전에 대부ㆍ대모의 선정에 지극히 형식적이고 일시적으로 치우쳐버리는 예가 허다하다. 그래서 어떤 신영세자는 세례를 받는 당일에도 대부모를 구하지 못해 당황하다가 세례식에 임박해서 본당에서 지정해 주는 대부ㆍ대모로 세례를 받은후에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도외에 차후의 영적인 관계를 수립치못하고 곧「영적고아」로 전락、쉽게 냉담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함께 신영세자들이 본당ㆍ교구등의 신심ㆍ액션단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도、일부 레지오 마리애 단체 외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수용、참여시키고자 하는 배려가 미흡、이들이 쉽게 교회활동에 흥미를 잃어버림에 따라 신앙생활에의 무기력으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 신자가정에 있어서 자녀들이 유아세례를 받게되는 경우 세례성사에 대한 부모들의 교리지식과 관심부족으로 유아세례 자체가 의례적인 형식과 절차로 오인、유아기 신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도 많다.
이와같이 대체적으로 매년 신영세자들은 대거 배출되고 있지만、신영세자 관리 측면에서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상당히 미흡、많은 수의 신영세자들이 신앙의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대개 영세를 받은지 5년이내에 냉담을 경험하고 있는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양적인 팽창과 함께 보다 질적인 심화를 기울이기 위해 무엇보다 신영세자관리 문제가 최근 사목현안으로 대두되고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부ㆍ대모의 바람직한 유대관 계정립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으며 、신영세자들이 신앙생활에 보다 큰 흥미를 느끼고 교회의 각종 신심、액션단체 활동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사목적대책이 강구돼야 할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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