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성(subsidiarity)의 원리는 레오 13세의 「노동헌장」에서도 발견 된다. 레오 교황이 빈부격차와 노동문제해결을 위해 국가가 직접 개입할 수 있으나 국가의 개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할 때에 보조성의 원리를 거론하는 것이다 (53ㆍ64항참조). 그러나 이 원리는 특히 1930년대에 강조되고 비오 11세 교황의 「사십주년」에서 분명하게 정의되었다. 그 당시에는 공산주의 체제의 팽창과 우익독재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권력이 여러 나라에서 지나치게 확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조성의 원리는 정치적 독재에 반대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하려는 원리이다. 이것은 그 이후 교황들의 회칙에서 계속해서 재확인된 원리이다.
회칙 「사십주년」 (1931)은 그 원리를 이렇게 규정하였다. 『개인이 자신의 노력과 근면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을 빼앗아서 사회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변할수 없는 확고한 사회 철학의 근본 원리이다. 따라서 더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더 상위 집단에 옮기는 것은 불의이며 중대한 해악이고 올바른 질서의 교란이다. 국가 권력은 중요성이 적은 사업과 활동의 수행을 다른 조직체에 넘겨주어야 한다』(35항). 이 원리는 교회보다는 일반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교황 비오 12세는 1946년 2월에 추기경단에게 연설하면서 보조성의 원리가 『교계제도를 손상함이없이 교회생활에 대하여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보조성의 원리는 인간의 모든 조직생활에서 준수될 중대한 원리라는 것이다.
첫째로, 보조성 원리는 개인의 주도권, 독자적 행위와 책임을 강조한다. 개인을 돕지않는 집단은 어느것이나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인간 개인의 행복을 능가하는 어떤 고상한 목표를 가진 집단은 있을 수 없다.
둘째로, 보조성의 원리는 다양한 목표를 가진 수많은 집단들로 구성된 다원적 사회를 전제한다. 그리고 집단들사이에 혼란과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상위집단은 하위집단에 대하여 지배적 역할보다는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보조성의 원리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우위를 강조하듯이, 정부와 국가보다는 소수집단과 중간집단의 우선권을 인정하고 주장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정, 인근집단, 교회, 직업집단, 노동조합과 같은 중간집단에게는 국가가 존중해야하는 생활과 권리가 있는 것이다. 소집단이나 중간집단의 중요성, 권리, 자율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보조성의 원리는 중앙집권 체제에 반대하며,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민주화와 분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셋째로, 개인과 중간집단의 우선권을 강조한다고 해서, 보조성의 원리가 그들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간섭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일정한 한계만 지킨다면, 국가의 개입과 간섭은 정당한 것이다. 국가 개입의 한계가 무엇인지 좀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 「노동헌장」을 인용하는 것도 좋다. 『공동선이나 어느 한 계층의 권익이 손상되고 위협받을 경우, 국가가 아니고서는 이 피해를 해결하거나 방지할 방도가 없을 때에, 국가 공권력의 개입이 인정된다』 (52항).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법의 개입을 요청하는 구체적 사실의 성격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지만, 국가의 공권력은 잘못을 고치거나 위협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이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공권력 개입의 한계를 결정짓는 기본원칙이다』(53항).
중간집단의 자율성을 필요없이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국가, 그리고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전제주의적 국가는 부당한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국가이다. 보조성의 원리는 필요한 기능을 가능하면 되도록 개인이나 자발적인 소집단과 중간집단이 수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거대한 정부보다는 작은 정부를 권장한다고 보인다. 이 원리는 정부의 형태에 관해서도 국가적 기능을 가능한한 하위집단인 지방정부가 수행하기를 권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조성 원리는 국가권력의 중앙집중보다는 지방분산을, 그리고 중앙통제식 국가보다는 지방자치식 국가 체제를 선호한다.
교황 비오 11세는 보조성의 원리가 준수된다면, 개인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중간집단의 자율성이 인정될 뿐 아니라, 국가의 기능 수행도 좀더 효율적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면 정부가 사회의 모든 점을 떠맡지 않고 한없는 업무로 허덕이지 않으며 다른 집단들이 수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교유한 과업에 더욱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공동선을 무시하고 회사이익에만 눈이 멀어 불법적으로 폐수를 발류하는 기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을 당하는 이 시점에, 그리고 독재정치를 지양하며 민주화를 향하여 노력하고 지방자치제를 30년만에 재도입한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연대성과 보조성 원리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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