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 18장은 제자들의 공동관심사였던 하늘나라에서의 각자의 위상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되어 베드로의 교회생활에 관한 대표질문으로 끝난다.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받으면서 세상에서 맺고 푸는 권한을 반았다 (마태 16, 18이하). 그리고 그는 가끔 제자단을 대표하여 앞에 나서서 예수님께 질문하고 대답하였고 예수를「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잘 하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대답을 잘못하여 야단을 맞은 적도 있고 주님이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에는 주님을 등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는 용서를 받았다.
이상 일련의 그의 행동거지는 초생교회의 생활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중에도 죄와 용서의 문제가 공동체 생활에서 처리해야 할 제1호 문제로 등장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께로 부터 복수대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탈리온법칙이라 하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을 근거로 의척보척권(以尺報尺權)을 가지고 있었다. (대목65참고).『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아라』라는 것이 그 법칙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복수하지 말고 그대신 용서하라는 새 윤리를 가르치셨다. 속옷을 빼앗으려고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고 오른 뺨을 맞거든 왼뺨마저 내대는 아량을 가질것이며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고 주라는 사랑의 윤리이다.
그 뿐 아니라 한 걸음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훈시였다.(마태5, 38이하). 유대아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여 남을 용서하기는 했지만 한번, 두번, 세번은 용서했지만 네번은 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새 나라의 새 법에서 몇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할지를 정하고 싶었다. 그는 힘껏 잡아서 일곱번을 생각하였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서에서 완전수이며 끝내주는 수이다
7은 6일 창조, 1일 휴식에 기인한 1주간수가 되었고 이스라엘인들의 안식일과 안식년을 재는 생활상을 매듭짓는 수이며, 장막절 (7월 보름부터 7일간), 7일간의 제단 축별식, 거상 (居喪) 기간, 제물의 희생동물수, 7지(枝) 촛대, 십계명의 제2석판에 새겨진 7금지령, 하루에 일곱번 찬미, 의인의 7전7기 (잠언 24, 16) 등 7이란 수를 많이 쓰고 있었다.
7은 3+4로 3은 천상적인 것(십계명중 전3계명, 삼위일체 등)이고 4는 동서남북의 그리스어(anatole dysis, arktos, mesembria) 네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Adam을 표시하고 세상전체, 4계절, 4시대 4국(다니2, 37~40) 등 지상것을 표시하는 상징수이며 3+4는 천상것과 지상것, 영혼과 육신의 결합을 상징하는 수이다.
베드로가 이 모든 상징의 뜻을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7이라는 수에 대한 그들 민족이 가지는 생활상의 뜻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유대아인들이 남을 용서할때에 두세번까지 하는 것에 비하면 베드로가 제시한 7번의 용서는 예수님의 찬동을 얻고도 남을 것으로 생각하였다.『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었을때 몇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겠읍니까. 일곱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일곱번씩 일흔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7이라는 숫자는 완전과 끝냄의 수라면 예수님이 제시한 용서 번수는 베드로가 제시한 수를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러니 베드로가 제시한 의견을 나무라거나 교정하는 것이 아니고 시인하고 또 강조하는 번수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용서하는데는 몇번이라고 딱 끊어서 척도로 삼을 규범이 없다는 뜻이다. 이 내용과 대조되는 루가복음의 대목을 보면 하루에 일곱 번으로 되어 있고 회개하는 죄인의 용서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만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타일러라. 그리고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하루 일곱 번 너에게 죄를 짓고 일곱번 너에게 와서 뉘우친다고 하면 그를 용서하여라』 (루가 17, 3~4) 라고 하였다.
「하루에 일곱 번」은「일곱번씩 일흔 번」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용서에는 한도가 없다는 뜻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란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카인의 후예인 라멕은 죄악의 세대를 상징하는 복수의 노래를 창세기에 남겼다.
아다와 실라야, 내 말을 들어라.
너희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귀를 귀울여라.
나는 상처받은 값으로 그사람을 죽였고
구타당한 값으로 그 젊은이를 죽였다.
카인이 일곱갑절로 보복했다면 라멕이 일흔일곱번 복수하지 않으랴 (창세 4, 23~24).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죄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복수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보복의 칼에서 보호해 주셨다 (창세 4, 15).
그러나 그의 후예는 오히려 그 보복의 정신을 증폭시켜 증오의 세대를 후대에 물려 주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세상에서는 보복하지 말라 (마태5, 39) 는 새 윤리에서 죄인을 용서하고 용서하되 번 수에 구애받지 말고 용서하라는 뜻으로 라멕의 보복의 수를 용서의 수로 바꿔 놓았다. 범죄에 대한 복수는 더 큰 범죄를 조장할 뿐이다. 죄의 범람을 막고 마지막 승리를 구가할수 있는 수단은 용서뿐이다.『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12, 21) 는 것이 사도교회의 새 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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