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으로 완성을 지향하는 사목상담자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적으로서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인정할 때 발전 할 수 있는 것이다.
25세에 신품성사를 받은 나는 비교적 자신 만만한 사제였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성체를 이루는 능력, 하느님을 창조하는 막강한 능력을 가진 사제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약 10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의 자신감을 산산조각이 났다. 내가 받은 신학교 교육이 부족하고 피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어머니는 여러해 동안「해소병」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돌아가시는 순간에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는 나의 무력감, 그리고 안타까움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병자성사도 드렸고 또 성서에는 『구하라, 받으리라』하였는데, 내가 받은 신품성사와 나의 모든 기도와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심한 고통 중에서도 아들 신부와 같이 있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비록 내가 어머니의 병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지만, 고통 중에 어머니와 같이 있다는 사실이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머니 병상 곁에서 무력감을 느겼을 때 내가 느낀 것만큼 그렇게 무력한 것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사목상담자가 다 마음대로 해결하고 조절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체험할 때가 많다.
얼마전에 한 교우에게서 전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아들 토마스가 죽어가니 와서 도와 달라는 사연이었다. 그는 내가 토마스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같이 있으면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주고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에게서 마지막 성사를 받은 토마스는 조용히 죽어갔다. 나는 그날 밤의 일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체험은 절망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사목상담자가 무엇인가 영적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또 한번은 백혈병 때문에 죽어가는 아들을 가진 어느 어머니를 상담해준 일이 있었다. 상담이 끝나면 나는 그녀와 함께「주의 기도」를 바치곤 하였다. 개신교 신자인 그녀와 천주교 신부인 내가 같이 바칠 수 있는 기도는, 용어는 좀 다르지만「주의 기도」가 적합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같이 기도하면서 고통을 나누었다. 내가 그녀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녀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상담 동안에 나는 하느님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어머니, 토마스와 그의 부모 그리고 백혈병 환자의 어머니등을 만날 때 나는 그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의 눈을 갖게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평탄하고 순조롭다가 갑자기 폭풍우가 들이닥치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든지, 사업에 실패한다든지, 실망에 빠지는 수가 있다. 이런 때 내담자들은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목상담자를 통해 하느님의 관심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담 관계를 통해서 사목상담자 자신도 성장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상담의 기법 보다 상담자의 인격을 더 중요시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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