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예수회의 창립자 이냐시오성인 탄생 5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본보는 이를 경축하는 뜻에서 「이냐시오성인」과 그의 「영성수련」, 「예수회」 등의 내용을 수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1491년 스페인 로욜라에서 탄생한 이냐시오 성인은 회개하기까지의 30여 성상을 지극히 세속적인 꿈속에 파묻혀 지낸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쟁터에서 포탄 파편에 의해 무릎부상으로 후송되기전까지 이냐시오 성인의 꿈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무훈을 세워 왕비로부터 영예의 훈장을 수여받기를 고대해 왔다고 한다.
예수의 동반자, 이냐시오 성인이 이같은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신앙인의 삶에 들어서게 된 것은 후송후의 회복기간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
후세의 사가들은 이냐시오 성인의 무릎부상은 무릎부상 당시가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의 드센 열기가 시작되던 시기라는 점과 이냐시오 성인의 회개, 교회쇄신 가치 등 이어지는 성인의 삶을 감안할 때 하느님의 섭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냐시오 성인의 삶에서 깨달음은 수차례 있었지만 성인의 전생애를 뒤흔들어놓은 크나큰 깨달음은 두차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첫번째 깨달음은 바로 이 부상후의 회복기에서였고 두번째는 극단적인 고행후였다고 한다.
이 병상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그의 삶을 지배하는 하나의 영의 식별력을 깨닫게 된다.
자서전에 나타난 이냐시오 성인의 이무렵 얘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날 이냐시오 성인은 병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협소설을 찾아달라고 했지만 그러한 책이 없어 할수없이 장식용으로 꽂여있던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열전」과 「그리스도전」이라는 책을 읽게되었다. 이 두 책을 읽은 후 이냐시오 성인은 틈만 나면 두 가지 상반된 공상에 빠지곤 했다. 처음에는 전장에서 무훈을 세워 왕비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상상을 한참동안 하다가 곧이어 성인전에서 나타나는 성인들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깃발아래 영웅적인 삶을 이어가는 공상을 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냐시오 성인은 문득 한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공상을 할 때에는 모두 기쁘고 행복감을 느꼈지만 처음의 공상을 할 때에는 공상을 할때에만 기쁘고 공상이 끝나고 나면 허탈해지곤 했는데 후자의 공상을 할때에는 공상이 끝나고 나도 그 기쁨이 계속되었던 것』
여기서 이냐시오 성인은 사람의 생각은 하느님, 인간본성, 어둠의 세력 등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깨달음은 이냐시오 성인으로 하여금 그 이후의 삶에서 매순간 떠오르는 생각에서 하느님의 것만을 선택하게끔 이끌어 주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기초로 이냐시오 성인은 가톨릭교회의 영원한 보배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영성수련」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즉, 영을 분별 또는 지도하는 지침서를 작성, 많은 선한 선남선녀들을 하느님께 이끌었고 세상을 개혁시켰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이 깨달음은 이냐시오 성인으로 하여금 매순간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 선택케했으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 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 가장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해주는 한편 성인의 모든 사언행위(思言行爲) 의 행동양식을 규정시켜 주었다.
그래서 이냐시오 성인이 창립한 예수회는 이냐시오 성인의 가르침에 비롯 「하느님께 더 큰 영광」(Ad Majorem Dei Gloriam)을 회의 모토로 삼아 생활하고 있다.
이냐시오 성인은 병상에서의 깨달음 이후 자신의 그동안의 삶을 후회하고 순례자가 되어 자신이 그동안 지은 죄를 보상하고자 순례의 길을 떠난다.
만레사에 있는 한 동굴에서 2년동안 극단적인 고행과 회개생활을 한 이냐시오 성인에게 다시한번 하느님의 엄청난 깨달음의 은총이 주어진다.
이후 순례자의 길을 얼마간 지내다가 늦은 나이에 공부의 길에 들어선다. 파리에서 공부하던 동안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성인을 비롯 여러사람에게 영성수련을 지도했으며, 라스또르다에서 현시를 받고 이들 중 7명과 함께 예수회를 창립하게 된다.
당시 수도회를 창립하기 위해서는 프란치스꼬회ㆍ베네딕도회ㆍ도미니꼬회 등의 수도회칙에 따라 수도원의 회칙을 정해야 하는 교회법이 있었지만 교황의 윤허로 새로운 수도회 회칙이 인준돼 새로운 수도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후 나온 수도회 중 많은 수도회가 예수회의 회칙에 영향을 받게 됐다.
이냐시오성인은 1556년 타개하기까지 엄청난 업적을 교회안에 내놓았으며 이 업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을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냐시오 성인의 삶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난」에 대한 실천적인 삶과 「예수」와 「성모마리아」에 대한 친밀성이다. 이는 수도회의 이름이 예수회라는 것에서 드러나듯 성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동반자로서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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