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의 세 가지 기본원리인 존엄성 원리, 연대성 원리, 그리고 보조성 원리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런 것들은 가톨릭 교회가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사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신념이고 또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들이 하나의 신념이나 진리로만 남아있지 않고 사회적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의 덕스러운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 신념들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사회적 덕행 혹은 덕스러운 습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사회적 덕행 중에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매우 중요시하는 것은 정의이다.
▨정의의 개념ㆍ구분
정의라는 개념은 대단히 자주 사용되면서도 그 의미가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여러가지 사상체계나 종교에 따라서 그 뜻이 상이하다는 느낌도 든다. 가톨릭의 사상에서도 정의에 관한 논의가 많았고 서로 상이하고 상충하는 내용도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가톨릭 사상에서는 전통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에 따라서 『정의란 각 인격체에게 그의 몫을 주려는 항구적 습성이나 지향』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 「인격체」란 개인만이 아니고 회사나 정부와 같은 법인체도 포함하는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의를 실천하는 주체, 정의로운 행동이 다루어야 하는 대상, 그리고 정의가 실천되는 인간관계의 종류 등에 따라서 정의를 일반정의와 특수정의로 구분하였다. 그는 일반정의를 법적 정의라고 부르고 특수정의를 다시 교환정의와 분배정의로 구분하였다. 이런 분류는 가톨릭 사상 안에서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진 분류법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회정의란 개념을 전연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회정의란 말이 자주 사용되면서도 그것이 법적 정의, 교환정의, 분배정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사회정의란 개념은 교황청의 사회회칙 중에서도 「노동현장」의 반포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31년에 나온 비오 11세 교황의 회칙 「40주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1937년에 반포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신적 구원자」에서 그 뜻이 좀더 명료해졌다고 인정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교회의 사회교서들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용어인 교환정의와 분배정의를 사용하면서도 법적 정의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서 토마스가 사용하지 않았던 사회정의가 도입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교환정의, 분배정의 그리고 사회정의의 뜻을 다루려고 한다. 법적정의는 사회정의를 다루는 부분에서 간단히 취급될 것이다.
●교환정의
인간 개인들이 거래를 하면서 서로의 정해진 몫을 주고 받으면, 교환정의가 실현된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물건을 구입했으면 그것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하거나, 일꾼에게 일을 시켰으면 약속된 임금을 지불하면 교환정의를 실천한 것이다. 여기서 물건이나 그것의 값, 그리고 일정량의 일이나 약속된 임금이 개인들이 서로 주고받을 정해진 몫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교환정의를 늘 의식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실천하면서 살고 있지만, 누군지가 그것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들 사이에서 분쟁이 생기고 민사소송이 발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것이 한 개인의 몫으로 정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것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물적 재산이나 명예와 같은 재산에 대하여 소유권을 가지는 수가 있다. 그런데 소유권을 개인들이 가지게 되는 이유나 근거들이 다양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어떤 대상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은 구입이나 계약 혹은 독자적인 발견에 의하여 발생하기도 하고, 출판권이나 특허권처럼 법률에 의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한 소유권은 관습에 의해서 생긴다고 보인다. 화재보험 계약은 우리에게 화재의 발생시에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여하기도 한다. 일정한 이자와 반환시기에 대한 약속을 하면서 돈을 누구에게 빌려주었으면, 그 시기에 지정된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교환정의의 실천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만약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교환정의를 제대로 지키는 행위를 정직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만약 상대방이 모르는 사이에 교환정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몫은 다 받고도 상대방을 속이면서 그의 몫의 일부를 주지 않는 행위는 사기 행위가 되는 것이다. 상인이 전자제품을 일정 가격에 팔면서도 불량품을 주었다면, 그것은 교환정의를 위반한 사기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물건의 값을 모르는 손님에게 지정된 가격 이상을 받는다면 그것도 역시 교황정의의 위반이다. 약속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사용자의 행위도 문제이지만, 잔꾀를 부려가면서 약속된 임금에 상응한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도 교환정의를 위반하는 사기행위에 빠지는 것이다.
교환정의 실천의 관점에서 보면, 관련자의 권리나 의무가 비교적 구체적이고 분명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거래하는 개인들이 무엇을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가 법률이나 약관, 계약이나 약속에 의해서 비교적 상세히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교환정의의 특징이다.
그러나 교환정의는 법률과 계약, 약관이나 약속에 의존하는 정의이며, 정의가운데서 가장 낮은 수준의 정의이다. 그래서 교환정의만 잘 실천한다고 해서 정의가 사회 안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잘못된 법률이나 약관, 불평등한 계약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자에 관한 은행의 약관이나 고객에게 불리한 것이어서 문제된 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 레오 13세도 「노동헌장」에서 노동자들이 절박한 사정에 몰려서 혹은 협박에 못이겨서 받아들인 계약은 불의한 계약이라고 단정했다(61ㆍ63항). 불의한 법률, 계약 혹은 약관이 있기 때문에 교환정의에만 몰두하다가는 불의를 저지르는 웃지 못할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환정의보다 상위에 있는 분배정의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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