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인 인간이 생명의 하느님을 거역한 것은 자기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생명을 포기한 것과 같아 그 결과는 곧 죽음이었다(창세2~3장).
하느님을 거역하고 죽음에 이르게된 인간의 삶은 곧 형제간의 살해로 이어진다. 성경 저자가 하느님을 배반한 인간의 역사를 부부일신의 괴리와 가정의 고통, 아우를 살해하는 형제간의 갈등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는것은 의미가 깊다. 제 아우 아벨을 살해한 형 카인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하는 하느님의 추궁에「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며 모르는 일이라고 무례하게 잡아뗀다(창세 4ㆍ9).
이는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인간의 죄스런 삶의 모습과 그 근거를 심리적으로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세 생활에 있어 인간은 누구나 이기심이나 분노때문에 자기 이웃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떠나서 살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눈이 멀어 자기의 눈앞에 놓인 이익이나 탐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하여 이웃의 삶을 방해하거나 해치고 결국은 자기의 삶을 좀먹게 하는 경우를 잘 볼 수 있다.
자연훼손으로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무분별한 개발사업ㆍ산업쓰레기 불량음식불의 생산과 유통ㆍ매점매석이나 고리대금업ㆍ국제기업이란 미명하에 생산품의 독과점ㆍ불량약품이나 부당 의료행위들…「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하신 하느님의 삶의 명령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의 모습이고 하느님을 닮지못한 인간들의 삶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곧 죄의 모습들이다.
생명윤리란 인간의 생명 존엄성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평등과 자유와 형제적 사랑으로 바른 공존생활을 살펴보는 윤리분야이다.
이는 내용이 방대하고 다루어지는 대상이 삶 전체에 미치고 있어 학자들에 따라 구분이나 주제도 다양하여 「살인하지 못한다」는 계율적 항목으로만 요약해서 다루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원론적 측면만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웃의 건강과 생명을 돌볼 의무
1,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듯이 이웃의 건강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돌볼 의무를 갖는다. 의무와 책임의 성격과 한계는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데 부모와 자녀의 관계ㆍ국가와 국민ㆍ의사와 환자ㆍ산업공장주인과 노동자ㆍ식품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소비자 대중 또는 응급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다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식별과 바른 판단과 실천의지가 요청된다.
2, 아무도 타인의 건강과 생명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직접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고 간접 결과가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은 육체나 생명에 대한 상해죄나 살인이 되겠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과실에 의한 상해나 치사(致死)의 잘못이 된다.
성서에도 살인이나 치사 등의 살상범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출애20ㆍ13 : 신명17,8 ·21, 1~9).
낙태나 안락사같은 살인죄에 대해서는 다른 항목에서 다루게 된다.
정당방위
인간이 생활하는데 있어 불의하고 부당하게 타인으로부터 자기생존이나 생명에 직접 위협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 자기의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이 방어행위나 보호행위의 결과로 불의한 침략자의 몸이나 생명이 위협을 받게되는 수가 있다.
이경우 사회정의가 인정하고 허가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방어행위가「정당방위」로 성립되기 위하여는 일정한 조건이 전제된다. 남의 재산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부당한 행위가 현존하는 물리적 행동이고 불의이며ㆍ침략자를 상해하는 것이 어쩔수 없는 최종방어책이라야 한다. 정당방위는 개인적이거나 공무수행상 일어날수도 있고 사회나 국가적 차원의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 전쟁의 형태가 된다.
국방과 전쟁
인류는 평화를 사랑하고 동경하는 것 못지않게 전쟁을 수행해 왔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국방의 명목으로 막강한 군대와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화생방(C.B.A)으로 대칭되는 현대의 전략 무기는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수한 재화가 군비경쟁에 사용되어서 인류에게 피해 밖에 주지 못한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 걸프지역 전쟁은 전쟁의 비윤리성을 드러내고도 남았다고 본다.
정의의 전쟁(Bellum iustum)이 성립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제시했다 : 합법적 정부가 불의하고 부당하게 침략할때 효과적 방어방법이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며 선전포고와 함께 국제규약을 지키며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전쟁은 핵전쟁의 가능성과 화학무기나 생물학적 파괴무기로 치루게 되고 무차별 살상과 자연파괴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므로 인류의 이름으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전쟁억제의 차원에서 무기 보유, 국제질유지를 위한 힘의 균형과 감시, 평화 공존을 조속한 군축회의의 병행등과 함께 무기 개발이나 보유도 조건부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힘의 논리보다는 평화의 추구로 국제질서가 마련되어야 하겠다.
사형(死形)
인류는 살인은 단죄하고 살인자를 사형이란 극형으로 처단해 왔다. 사령제도의 정당성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찾는다. 사회의 안녕과 법질서의 확립, 살인의 예방 및 효과 기대, 불의에 대한 응징과 정의가 요청, 동태복수(同態復讐) 인간은 「죽을 죄」를 알고 있으며 실정법으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류 문화의 발전과 함께 인간화의 요청은 사형제도가 속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여러 국가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사형폐지론의 주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생명의 신성불가침성은 인정되고 수호되어야 한다.
사형이 실제로는 살인에 대한 보복도 보상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또 하나의 생명만 희생된다. 범죄 억제 즉 재발의 예방효과도 없을 뿐아니라 회개한 사람을 죽이거나 무죄한 사람을 오판(誤判)으로 죽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부당한 일은 어떻게 보상되고 바로 잡게 되는지 의심스럽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은 야만스러운 일이며 원수도 사랑하라는 지순한 사랑의 계명과 너무나 거리가 먼 태도이다. 또 많은 경우 살인은 우발적이거나 범죄심리로 볼 때 충동의 원인들이 존재하고 있어 범행 당사자만이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공동책임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화의 발전과 함께 사형제도는 사라져야할 숙제이며 원한이나 복수심은 극복되어야 할 인간들의 윤리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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