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띤 분위기가 소나기처럼 지나간 후 나는 바람을 쐬려 밖으로 나가려는데 저쪽 구석방의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갑자기 이상한 호기심이 일어나서 끌리듯 그방에 들어선 나는 방바닥에 놓여진 함가방과 여러가지 패물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주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걷잡을 수 없이 설레이면서 나도 모르게 그 물건들을 만져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난 어느새 그의 집을 나와 정신 없이 뛰고 있었고 내 손엔 보석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겁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와 자주 갔던 바닷가에 이르렀을때였습니다. 난 멍청하게 내 손에 끼워져 빛나는 반지를 바라 보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내가 지금 어떤 행동을 했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어요. 어떤 말로도 설명드릴수 없는 그때의 일은 내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어요.
나는 그 바닷가에 털석 주저앉아 끝없이 엉엉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치고 후회한들 이미 모래밭에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만것이었지요.
잠시동안 내가 가졌던 즐거운 시간과 작은 꿈들은 모두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줄만 알았던 나의 과거가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나를 덮쳐온 것입니다.
난리가 난 그의 집에선 나를 고소 하였고 나는 세번째 또 수갑을 찼습니다. 전과 2범이라는 나의 과거는 모든이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찾아온 그에게 나는 아무말도 못한 채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아무말 없이 돌아서는 그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한 마음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고. 그날 나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어요』하고 나에게 기댄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가 실컷 울게 내버려둔채 조용히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었다. 세번째 구속된 그는 이젠 진정으로 자신을 미워하며 죽도록 학대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어 모든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대한 가장 깊은 절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에 대한 지독한 혐오, 이때야말로 이 영혼에게 주님의 자비와 은총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빛」이시다. 금년 우리교회 사목지침이 바로 『그리스도 우리의 길』이듯 그는 성서를 읽고 교리를 배우면서 차차 안정을 찾게 되었고 보이지 않는 신앙의 세계로 눈을 뜨게 되어 오랜만에 빛을 만나게된 것이다.
『수녀님, 제가 영훈씨를 만난 것은 두번째 생명이라면 이젠 하느님께 세번째 생명을 받은거예요. 정말 이번만은 다시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어요』 그는 베로니까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한 결과 이제는 남을 돕는 봉사 반장이 되었다.
나는 재소자들을 만날 때마다 진작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마음 아파한다. 사후 약방문격이지만 그러나 이제라도 하느님을 알게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생각하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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