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주님의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그 생명의 빛이 인간상실과 가치관 부재의 어둠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바를 모르는 우리를 밝혀주시기를 빕니다. 부활의 진리는 이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말씀하신대로 3일만에 부활하시어 우리 모두를 영원히 살리는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죽음으로 끝나고 말 인생과 세계에 그 절망과 어둠에 희망의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부활전야 전례 시작에 빛의 예절을 하며 불꺼진 성당에 새 부활초에 불을 밝히고『그리스도의 광명』을 세 번 큰 소리로 노래합니다. 이는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어둠에 놓여있는 우리를 밝히시고 구하시는 생명의 빛이 되셨음을 뜻합니다.그러기에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우리의 부활생명이심을 믿는 신앙을 지닐 때 우리는 그 믿음에서 죽음의 절망대신 생명의 희망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인생이 무엇이며、왜 사는지、왜 죽는지 등 거듭거듭 의문을 제기하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답을 주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없인 인생 무의미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 성경을 보면 누구보다도 사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기 힘들어 하였습니다.사 도들은 후에 부활의 기쁜 소식을 목숨을 다하여 선포하고 피를 흘리며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가르치심을 받기 전에는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거나 믿기 힘들어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부활이 믿기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은총의 힘 없이는 이 부활신비를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알아들을 수 없다하여 이를 부정하면 무슨 결론이 남습니까? 그것은 결국 인생의 종말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는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1고린15、17참조) 인생의 의미도 없으며 인간의 모든 활동이 무의미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큰 업적을 낸다 해도 결국은 죽고 썩고 말 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진리탐구、정의구현、사랑의 실천 이 모든 것의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이가 말했듯이 불멸의 생명이 없다면 자유를 위한 투쟁도 무의미합니다.
인생에 의미가 있고 진리와 정의、사랑과 자유에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영생은 있어야 하며 영생이 있기 위하여는 부활은 필연코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다시금 이를 위해서는 우리를 죽음에서 부활시키는 불멸의 생명、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절대적인 사랑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근원적 요청의 충족
그리스도의 부활、하느님의 성자의 수난과 부활은 이 같은 인간의 근원적 요청에 대한 충족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이간의 요청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고 오직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 그 사랑에서 베푸는 자비로운 은혜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목적하신 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죄와 고통 속에 살다가 어느날 죽고 썩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어 당신과 함께 영원한 생명 속에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이것이 하느님이 지니신 뜻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그가 죄를 지었을 때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그리하여 성자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고、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부활 생명이 되셨습니다.
부활은 사랑의 승리
여기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국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느님의 사랑、죽음보다 더 강한 그 사랑(아가8、5참조)의 승리를 말합니다.우리 각자와 인류의 죄가 아무리 크고、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죽음의 힘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종말에 승리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굴복시키고 마는 하느님의 사랑임을 그리스도의 부활은 잘 증명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을 부정하고 당신을 배척하고 못박은 그 모든 이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그 모든 이를 다 구원하십니다. 참으로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이 사랑의 승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의 승리인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요、기쁨이며、죽음의 어둠에 갇힌 우리를 밝히는 빛입니다.
이처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할 때 우리는 자연히 이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성경에서 잘 가르치고 있는 바대로『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마르12、29~31)
이웃사랑부터 실천을
우리는 가이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분을 진정 우리 아버지로 모든 것 위해、모든 것에 앞서 섬길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할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4、20)라고 하시며 자기 형제를 사랑할 때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가능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15、17)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성당에 아무리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많이 하고、재를 지켜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합니까?가난한 이웃에 우리 마음을 열고 있습니까?내가 가진 것을 그와 나누고 있습니까? 우리는 반대로 재산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전세값을 올림으로써 가난한 이웃을 울리며、그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이른바 과소비로 자기 만족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희망의 정치 펴야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인신매매、인명살상、성폭행 등 인륜을 거스르는 범죄가 범람한 가운데 부동한 투기、전세값 인상 등으로 가난한 이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정부는 참으로 민생문제 해결을 우선하는 희망의 정치를 펴야 하겠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복지정책을 세우고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네루의 말대로 정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집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기본요건이므로 영세 세입자나 철거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합리적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하겠습니다.동시에 가진 이들도 이 사회의 평화를 위해서나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서 자기 이익추구 때문에 영세민을 울리는 악을 행하지는 절대로 말아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이사회、곧 우리 자신은 극심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로 도덕적 붕괴야 정신적 파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가난한 이를 품지 못하고 계속 못살게 밀어내는 사회는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서민들로부터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가는 사회는 번영할 수 업습니다.그런 사회는 비인간적、반생명적 사회로 몰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웃 형제、특히 가난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구원될 수 없습니다.(마태25、31~46참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요한3、14참조).
폐쇄된 자아 버려야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죽음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새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둠에 갇혀 있는 이 사회에 빛을 밝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무덤、폐쇄된 자아의 벽을 헐어야 합니다. 남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진정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울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참으로 부활하고 구원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같은 사랑의 길을 절대적을 가야 합니다.이렇게『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요한4、12). 그럼 우리는 진정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찬의 삶을 사는 해에 이 같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 가득하기를 빕니다.
1990년 부활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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