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묵고 있던 고려 국제호텔을 떠나면서 미사전에 고백성사를 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미사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겨 떠날 것을 지도원에게 요구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나 지신도 어지간히 말 재주가 없는 신부라고 생각된다.
처음 만나는 신자들、그것도 40여년 만에 북한의 성당 안에서 만나는 북한의 신자들에서 그렇게 할 말이 없었는가 싶다. 어찌됐든 나는 고백실을 향하여 걸어갔다.
고백실에 다다랐을 때에 발견한 것은 고백실 양 옆에 지도원들이 서 있었고 고백실 이북는 커튼을 내려 사제가 앉은 것을 가리도록 만들었으며 고백을 하는 신자들은 완전히 개방된 상태에서 신부를 향하여 고백을 하도록 고백실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고백성사는 사제와 고백자만이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밀페되어 있어야 하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과연 고백성사를 올바로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고백실에 잠시 않아있다가 고백실을 나와 제단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곤 「지금 여러분들이 고백 성사를 보는 동안에 미사 중에 부를 성가를 연습해야 하는데 너무 시끄러워 고백 성사를 줄 수 없으니 고백 성사는 제의방에서 드리겠습니다.」라고 공지하였다. 나는 제의방에 앉아 고백할 신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후에 신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고백성사를 본 신자들은 모두 8명이었는데 고백성사를 올바로 본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이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애쓰신 문규현 신부나 통일의 꽃 임수경의 안부를 묻거나 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나 편하게 지내고 있어서 그것이 죄스럽다」는 내용의 말들을 하고 보속을 주기도 전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고백 성사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기에 공연히 분노가 치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도 80여명의 신자들 가운데 겨우 8명만이 고백 성사가 아닌 고백 성사를 보고 더 이상 고백 성사를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제의를 입었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기위하여 서울에서 갖고 온 성체 대회 마크가 그려진 영대를 메고、 제대와 독서대에는 제44차 세계 성체대회의 마크가 크게 그려진 배너를 걸도록 지시하였다. 마침내 성체 대회때 불렀던 「그리스도、우리의 평화」입당 성가를 부르는 가운데 성당 안으로 입장하였다. 제단 앞으로 걸어나가 십자가 앞에 큰 절을 하려고 앞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시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평양 성당 내부를 찍어온 비디오를 통해서 미국에서 보았던 김일성 주석의 주체 사상을 상징하는 붉은 태양의 원형 조각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제단 중앙벽 위에 그려져 있었고 그 조각은 누가 제단 앞에 나오든지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한 눈에 보이도록 배치하여 놓았다.
천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성당 안을 들어서면 성체가 모셔진 감실을 향하여 제단 중앙을 향해 성호경을 바치면서 무릎을 꿇거나 깊은 절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런데 성체가 없는 제단 벽 중앙에 주체 사상을 표상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주체 사상 조각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예수님의 상본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상본 밑에는 작은 십자가상이 걸려있으니 누구라도 성당안에들어서면 김일성 주체 사상 앞에 무릎을 꿇거나 절을 해야 하고 김일성의 주체 사상은 하느님 보다도 더 높아야 한다는 도저히 있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종교의 자유」라는 허울 속에 교묘히 기만하면서 실상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교활하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항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 보다도 더 높이 숭배되어야 하는 것이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면 북조선에는 아직도 천주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것이 더 합당한 표현일것이다. 그날 마사에 나왔던 소위신자들 가운데 학습을 철저히(?) 받지 못안 신자들이 몇명 있었다. 그들은 성체를 받아모시는 영성체때에 성체를 손에 받아 든채 자리로 돌아가는가 하면 아직 세례 성사도 안 받았다고 하면서 영성체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차라리 지도원들처럼 미사 구경이나 하고 있었으면 더 고차원적인 눈가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완벽한 행동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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