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병고의 시달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병고는 있어왔고 병고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도 나타났다. 이것이 의료윤리의 기원이고 역사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의료윤리는 의학과 신학과의 긴밀한 관계안에서 발전될 수 있으나 어느 한쪽의 독립적 우위는 건전한 의료윤리를 방해한다.
원시적 의료형태는 종교적 색채가 많고 어떤 사회는 의료행위와 개발이 억제된 경우도 허다하고 유물사관이나 과학적 실증주의 위주로 종교나 윤리적 가치를 배격하거나 소홀히 하여 인간 존엄성이 상실되고 환자가 인상과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인간소외가 일어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종교와 의학이 상호존중과 협력으로 인류발전과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 의료윤리의 과제며 전망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집회서 39장 1~23절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로 요약된 의료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치료는 인간이 하고 치유는 하느님이 하신다』. 옛 격언에도 이미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자연은 낫게 한다』고 했다.
의사의 권위나 의무
집회서38장7~8절12~12절에서는 피조물이며 창조주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주님의 위임을 받아 의술을 베풀고 하느님의 능력에 동참하는 것으로 의술의 권위와 의무는 하느님과 관련되는 것이며 인간 사회에 있어 하나의 소명(vocatio)임을 고백하고 있다. 의료행위는 직업만이 아니고 인술이며 봉사이고 경신례와 연관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집회38, 9-15).
이 권위와 의무는 실제적으로 소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소명을 계발(啓發)하고 지식과 능력을 습득하여 자격을 갖추게 되고 인간사회는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자격을 인정한다. 신앙인이라면 의사나 약사 면허란 이런 소명의 의미를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환자의 권리와 의무
환자의 권리란 자연권인 인권의 차원에서 보아야 하겠다. 모든 인간은 건강에 대한 권리, 신체와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의료인들은 어디까지나 위임권이므로 환자 이상의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곧 인간의 평등권과 자유권에 기초하는 것으로 의사나 병원의 선택의 자유, 자기의 병세와 치료의 내용에 대하여 알권리, 치료받을 권리이다.
환자의 기본권이 인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의무도 인간으로서 이웃에 대한, 그리고 사회 공동체에 대한 기본 의무에서 기인한다 첫째, 신뢰심이다. 병고의 치료를 위해서도 의료진에 대한 신뢰, 주위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요청된다. 둘째, 사랑의 정신이다. 환자는 자기 고통에 사로잡혀 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되기 쉽다. 그러나 환자도 육체적 치유만을 생각하기 보다 건전한 정신을 갖도록 해야 하고 이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해야한다. 셋째, 순응의 정신이다. 이웃에게 희생과 봉사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병고를 수용하고 신앙인이라면 구원에 대하여 생각하며 중병에 들은 것이 확실할때 임종의 준비를 할 용기가 필요하다.
의학과 의료윤리
자연과학의 발달은 불치병이라고 생각하던 많은 병을 고칠 수 있게 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첨단기술의 개발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를 넘어 그런 것을 윤리적으로 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새로운 윤리와 가치관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몇 가지만 시론적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생체실험과 임상실험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의학과 의술도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의학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기초학문에서의 이론습득과 과학실험, 해부학과 동물실험을 끝내면 임상적 실습을 하게된다. 인류가 공노한 히틀러 시대의 인체 생체 실험이나 일제하에서의 일본 특수부대가 만주에서 저지른 인간실험의 만행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다.
그러나 어느 약이나 치료방법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투입하여 처음으로 시술할 때에는 「실험」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임상적 실험을 통해서만 약의 효과나 시술의 우열은 증명되기 때문이다. 이 때 처음으로 적용하는 모험이나 위험부담은 시술하는 의사나 치료를 받은 환자나 다함께 갖지만 보다 직접적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므로 환자의 알 권리와 자유선택은 그 한계선과 기준을 의사가 자기 자신에게 두라고 한다. 즉 실험의 결과에 대한 확신과 안전도가 자기자신이나 가까운 친척에게 임상적으로 투여할 수 있을 정도의 확률적 안정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의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면서 사용되는 길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2, 생명연장 시술과 그 중단
의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크게 늘어났고 치료기술의 발달은 죽을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이는 의술의 개가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내막을 깊이 알아보고 인류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경우가 환영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장기들이 마치 기계의 부속품같이 매매되는 경우도 있고 이식의 성공이라는 명예심 때문에 장기 제공자에 대한 소홀함이 없지 않아 인간생명의 고귀함과 평등성이 침해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윤리 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시술하거나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희생 불가능한 환자이거나 뇌사상태에 있는 사람을 현대의 발달된 기계를 활용하여 심폐기능만을 유지시킴은 인간의 자연사의 권리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고 「죽음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희생이 가능한 사람을 경제적이거나 장기이식의 목적으로 소홀히 다루어 뇌사나 안락사란 명목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사례도 없지 않은 줄 안다.
여기에는 건전한 상식과 사심없는 「만민에 대한 봉사」의 정신만이 기준이 된다고 보겠다. 『법으로 하자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 반드시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회의 권위가 의사들의 결단과 실행에 대하여 책임을 도맡을 수 없으며 그들은 단지 기술자로 취급해서도 안된다』 (바오로 6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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