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고대 이집트 문명을 둘러 본 사람은 그 누구나 그들이 남겨 압도되고 말것이다. 지난해 가을 필자는 독일인 친구의 호의로 고대 이집트 유적지를 둘러 보았다. 그들이 이루어 놓은 거석 문명은 한마디로「불가사의의 문명」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마 어마한 불가사의를 낳게 한 힘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줄곧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 갈 무렵 나는 그힘이「인간의 끝없는 지배욕」이라고 단정지을수가 있었다.
현세와 내세를 걸쳐 영원히 군림하고 싶은 지배자들의 꿈이 그 엄청난 왕족문화를 이룩했다는 것을 나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서 쉽게 확인 할수가 있었다.
인류의 최초 산업혁명이라고 할수 있는 농경생활 이후 인류문명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힘의 논리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배구조의 역사는 모든 세대, 모든 문화권에서 예외가 없었다고 본다. 오늘날 소위「제3세계」라 불리는 국가는 말할것도 없고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선진국 사이에서도 이 힘과 권력에 의한 부당한 억압구조아래, 더욱 은밀한 조작된 속임수로 인하여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은 신음하고 탄식하고 진통을 겪고 있다 (로마8, 22참조)고 해야 할 것이다. 탄압과 억압으로 일관된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인권탄입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것이다.
▩둘: 그러므로 신구약 성서에서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는 야훼 하느님의 관심은 바로「사회정의」문제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곧 사회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원전7세기 유배중 예언자 예레미야는 주변 3대 강대국의 각축전에 희생물이 된 유다왕국의 항복과 예루살렘의 함락과 멸망이라는 처참한 광경을 예언하였다.
그는 당시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향하여 그들이 민중을 우롱하고, 분열을 조작하는 범죄를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있다. 『이 저주받을 것들아, 양떼를 죽이고 흩뜨러 버리는 목자라는 것들아, 야훼의 말을 들어라. 내 양떼를 돌보아야 할 너희가 도리어 흩뜨려서 헤매게 하니 너희의 그 괘씸한 소행을 어찌 벌하지 않고 그냥 두겠느냐』(예레23, 1~2)고 그들의 멸망을 예고한다.
『새장에 새가 가득하듯 그들의 집안에는 사기로 얻은 물건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은 대인이 되고 부자가 되었으며 기름이 올라 번들 번들해졌다. 그들은 악한 짓에 한계를 모른다. 고아들의 송사를 정의로 재판하지 않고 빈곤한 이들의 권리를 두호하지 않는다』 (예레5, 27~28참조)고 예레미야는 그들을 공박하고 있다. 「사기」에 의해 부당이익을 취하고 「눈감아 줌」으로써 악한짓에 한계를 모른다(아모7, 8)는 표현으로써 당시 사회의 타락상을 신랄히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종교지도자들을 탄핵 고발하기를『 이방 잡신들에 의지하여 거짓 점이나 치며, 제 힘을 법으로 삼아 백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간 백성들은「훔치고, 죽이고, 감음하고, 위증하고, 온갖 잡신을 섬기고 따라 다니다가」성전에 들어와『우리는 무사하옵나이다』하고 복을 비는 꼴이 마치 강도들이 추적을 피하여 엎드려 있다가 또 새삼 강도질을 하러 나가는 경우와 같다고 했다(예레7, 5~11 참조).
자신이 몸담고 있던 사회를「악한 짓에 한계를 모르는 사회」로 규정지었던 예언자 예레미야는 야훼를 섬기는 성전을「강도의 소굴」로 규정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종말을 내다보면서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며 부의한 이득을 취하고, 폭력과 압박을 가하는 자들은 그들의 당나귀가 묻히듯 질질 끌려가 성문밖 멀리 내던져질 것이고 (예레 22, 13~19 참조). 하느님은 메시아를 보내시어 당신 백성들을 구해내실것이라고 한다(예레 23, 1 이하 참조).
▩셋:나자렛 예수의 복음선포는 바로 이러한「인류의 죄」라고 할수 있는「불의한 억압구조」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억압하는 자」와「억압 당하는 자」가 함께 구원 받을수 있는 길이 어떤것인지를 인류양심에 호소한「해방운동」이었다.
「이제 더 이상 힘없는 자를 학대하고, 이용하고, 억누르기를 그만두고, 이들을 너의 형제로 맞이하라」는 것이 그분의 계명이요, 바로 이것이「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와 같이 우리시대 우리들의 남북한 정치인들이 민족분단을 그들의 정치권력의 불모로 삼아 이를 이용하려 한다든가 지역감정을 부추겨세워 자기 정치적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려 든다면, 민족의 분단과 분열을 조장하는 그들의 운명 역시 예레미야 시대의 그 지배자들과 똑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도 수천명의 양심수들이 어둠속에 갖혀있는 이 시대 이 땅의 교회지도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저의가 배제된 화려한 사랑」이야기로써 그들의 종교적심성을 총족시키고, 교회가 강도들이 잠시 위안과 휴식을 취하는「강도들의 소굴」(예레7, 11)로 전락하여 이들의 위로와 보을 비는데만 급급한다면 이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자렛 예수가 선포하신「인간을 해방시키시는 사랑의 하느님」은 아닐 것이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 썩어 버린 아름다운 과일과 같고, 사랑이 빠져나간 정의는 물이 말라버린 호수와같이 생명과 구원으로 우리를 해방시킬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가 꽃피는 곳에서만 사랑과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을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번호부터 본란의 제목 「복음단상」이 「금주의 복음단상」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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