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란 생산수단(자본)을 개인(자본가)이 소유하고 개인이 자기가 소유한 생산수단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생산 활동을 하며, 이윤을 목표로 이러한 생산활동을 해나가도록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유재산, 자유기업 및 이윤동기가 자본주의 주요 특징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자본주의는 임금제도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이 제도에 따라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의 재산(자본)과 자신의 노동력과 기술을 활용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이러한 활동의 생산물은 재산의 소유자에 의해 판매되고, 재산의 소유자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기여한 몫에 대해 임금을 지불하고 일부는 이 과정에서의 자신의 몫, 즉 자신의 재산을 사용한데 대한 몫으로 보유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찰학은 자유주의(개인주의)이다. 즉 인간은 이기심에 의해 활동하므로 각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가장 크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각 개인은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하느님의 안보이는 손」에 의해 사회전체의 이익도 가장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통한 무제한적인 자유경쟁으로 나타나고, 정치적으로는 재산권을 보호할 때를 제외하고는 국가 경제생활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제한적인 경쟁은 모든 사랑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하도록 하여 마침내 제일 좋은 상품을 제일 싼값으로 생산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대생산과 최적분배가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자본주의체제가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거둔것이 사실이다. 시장과 경쟁은 고유한 역동성을 지니고있다. 인간은 자유경쟁을 통해 과학과 시술을 새발하여 현대 경제의 기반과 현대 문명의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예컨대 인간의 평균 수명만 하더라도 35세에서 70세로 연장되었으며 저소득층을 포함해 모든이의 생활수준이 괄목할 만하게 향상된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매우 위험스런 사회불안을 가져오고「사회문제」를 야기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런 재산물도 소유하지 못했거나 초기에는 노동조합을 동해 결속하지도 못한 노동자들은 재산이 아니라 오직 노동력만을 가지고 자유경쟁에 임할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부(富)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뒤안길에는 노동자들의 엄청난 빈곤이 쌓여가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무산자들의 사회적 퇴보를 대가로 치르면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이에 교회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사회적 해악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왔다.
■교회는 자본주의를 배격하는가?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한 특징적 요소들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사유재산과 자유기업을 옹호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 제도의 사회적 의무가 지켜져야 한다는 전제가 항상 따른다. 이윤을 추구하거나 저축한 자금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결코 부도덕한 일은 아니다.
교회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그 자체로서 단죄하지는 않는다. 비오 11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다. 『확실히 그 경제 체제는 그 본질상 사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노동자의 인간존엄성, 경제 생활의 사회적 성격,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조금도 돌보지않고 기업과 경제 활동을 전적으로 자신의 임의에 따라 이득이 되는 쪽으로 운영한다면 이는 중대한 남용이다』 (사십주년」40항)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본직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배격하지는 않으면서도 바른 질서를 침해하는 이러한 남용을 부단히 비판해 왔다.
■교회의 자본주의 비판
이를 위해 교회는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철학인 자유주의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 자유주의는 경제 생활의 궁극 목표를 최대의 물질적 복지에 두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생산 증대를 추구한다. 그것은 생산이 아무리 증대되더라도 재화가 균등하게 분배되여야만 복지가 증대될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오기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유주의는 생산에 참가하는 모든 이가 자기가 노력해서 이룩한 만큼의 몫을 차지하게 된다고 전제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더욱이 자유주의는 가치 체계를 전도시킨다. 사실 경제적 번영은 인간적 공동선과 같은 말이 아니다. 물론 경제적 번영이 인간적 공동선의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인간적 가치체계에 통합되어 인간을 위한 사회의 공동선을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망각함으로써 자유주의 경제는 물질주의의 길을 열어 놓게 되었다.
교회의 사회 회칙들은 사회 경제 생활의 이러한 목적을 거듭 강조한다. 이중 한귀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다양한 경제 활동은 서로 간에 상호부조와 봉사를 유기체로 결합되고, 한공동체를 이루는 부분이 된다. 자연 자원, 기술 성취, 경제 분야의 사회적 조직이 줄수 있는 모든 재화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될 때에라야, 경제 사회 체제는 건전하게 수립되고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이 재화는 정직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에, 그리고 신중하게 이용하기만 한다면 덕을 쌓는데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 더 높은 수준의 번영과 문화생활로 인간을 향상시키기에 충분하여야 한다.」(「사십주년」34항)
2, 자유주의는 경제활동의 동기로서 개인의 이의 추구만을 내세운다. 개인의 이익을 전부 합하면 사회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이익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얻을수 있는지 제일 잘아는것은 각 개인 자신이라고 봄으로 자유주의에서는 전체의 이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교회도 노동에 대한, 경제성장에 대한 자주 요인으로서 개인의 이익이 정당함을 인정한다. 그서나 이윤은 공동선과 정의의 규범보다 부차적인 것이다. 이윤은 공동체의 봉사에 대한 대가로서, 그것도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행해졌을때 비로소 정당한 것이다. 경제활동은 모든 인간 활동의 목적을 벗어나면 안된다. 즉 지상의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인간은 초자연적 이익을 망각하면 안되는것 것이다.
3, 자유주의는 경제 생활의 조건으로 완전한 자유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건 아래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조화를 조화를 이룰수 있고, 경제법칙이 아무런 강요도 받지 않고 통용될 수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더욱이 자유주의는 사회경제생활에 대한 공권력간의 협약을 통한 자유의 규제에도 반대한다. 자유주의는 말하자면 자유의 이름으로 적어도 노동자들에세는 겹사의 자유를 폐지했던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자유의 개념을 용인할수 없음은 물론이다. 교회는 경제활동분야에서 경제법칙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은 도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경제생활이 인간적가치를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를 잡아주는 것은 바로 도덕인 것이다. (「사십주년」17항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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