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목은 네가지 다른 짤막한 교훈의 말씀을 연결없이 서술하고 있는것 같이 보인다. 마르꼬목음서를 따르면 첫째、등불은 켜서 등경위에 얹어둔다. 둘째、모든 것은 백일천하에 드러나 명명백백해진다. 셋째、너희가 사용한 말(斗)로 되받고 더 받을 것이다. 넷째、가진자는 더 받고 못가진 자는 가진것 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이 네가지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 말씀은 복음서 해석상으로 한가지 사상을 말하려는 것으로 알라듣는다. 즉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빛처럼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야 하고 알려질뿐 아니라 생활속에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하나 분석해보기로 한다. 먼저 이 말씀들의 상황은 예수계서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설명하시고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모든 사람들에게 명명백백하게 알려주어야 할 사명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보는 것이다.
그 말씀은 등불을 켜가지고 뒷박밑에나 침대 밑에 가져다 두는 사람은 없다. 등경위에 얹어놓아야 방에들어 오는 사람들이 그 불빛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이야기가 우습게 들리는 것이 있다.
등불을 켜서 뒷박밑에나 침대밑에 갖다 두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왜 그런 말을 했으며 왜 하필이면 뒷박밑에 더군다나 침대밑에 갖다 놓는다는 표현을 썼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당시의 팔레스티나에서는 부인들이 등불을 끌때에 뒷박으로 껏으며 환기가 잘 안되는 작은 방에서 불을 끄면 연기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등불을 켜서 금방 끄지 않는다는 당시 상황을 말하는 거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등불을 켰다가 금방 끄는 사람은 없다라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침대밑에』라는 말은 어떤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지 통 알 수가 없다.
마르꼬복음서의 원문을 말마디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등불은 뒷박밑에나 침대밑에 놓여지기 위하여 있겠느냐?등경위에 놓여지기 위함이 아니겠느냐?」이다. 여기서 등불은 비유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니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뒷박으로 가리워지거나 침대밑에 들어가 숨기위한 것이 아니다 라고 자연스럽게 읽혀 진다.
이것을 루가와 마태오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띤 사람의 입장에서 「아무도 등불을 켜서…밑에 감춰두는 사람은 없고 등경위에 얹어 모든 사람이 빛을 볼 수 있게 한다」라고 옮긴 것이다. 등불이 얹혀진 등경은 예수의 십자가를 연상케 한다.
루가는 이 말씀을 씨뿌리는 자의 비유 설명 후(8、16)와 눈의 몸의 등불이다라는 교훈속에(11、33)두번 사용하였고 마태오는 제자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하실때(5、15)사용하였다.
다만 루가는「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볼수 있게 한다」고 마태오는 「집에 있는 사람들을 밝게 비추어준다」라고 하였는데 루가는 교회를 찾아드는 이방인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두번째 문맥은 위의 문맥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풀린다.
즉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은 드러나지 않을 비밀은 없다.
완전범죄는 없다라는 법률세계의 격언도 있듯이 비밀은 결국은 심판날에 명명백백히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복음서에 가끔 쓰여져 있다.
여기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다 열려지기에는 시가가 아직 이르고 적절치 않아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리워져 있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야 만다라는 뜻으로 쓰여져 있다.
「좋은 일은 스스로 퍼진다」라는 격언이 있다.드러나게 될 비밀에 관한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전파를 독촉하고 용기를 복돋아주실 때 가끔 말씀하였다.『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내가 어두운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위에서 외쳐라』
(마태10、26~27:루가12、2~3). 하느님나라의 현재적 비밀성과 미래적 공변성이 이복음서에 나타나 있다 『들을 귀 있는자 들으라』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는 것은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격려사로 볼 수 있다.그래서 제자들은 듣고 있는 것을 유심히 마음속에 새겨 두라고 권고를 받았다.
세번째 말씀은 『너희가 사용하는 같은 자로 너희도 재어질 것이다.』라는 일종의 경고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사람을 너그러이 판단하고 관대하게 대해주라는 교훈의 말씀으로 흔히 쓰셨다(마태7、2:루가6、38).
인간은 자기가 사용하는 척도에 따라 평가받는다라는 것은 인간사회의 정의구현의 윤리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느님날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정신을 쓰는 척도를 말한다. 말씀을 귀담아 닫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뜻에서 볼 때 「너희가 남에게 담아주면 주는 만큼 받는다」라고 번역한 공동번역은 잘못된 것이다.「너희가 쓰는 척도에 따라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라고 해야 할것이다. 너희가 힘쓴 만큼 주어질 것이며 너희는 더 받을 것이다.
네번째 말씀은 복음서에 여러번 나오는 말씀으로 세번째 말씀과 연결시키면 납득이 간다.
하느님께 마음을 연 사람은 더욱 더 신비를 깨닫고 、닫은 사람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한 것 마저도 빼앗길 거이다. 외경인 제4에스드라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저 실속없는 사람들에게는 빈 것을、그러나 완전한 사람들에게는 충만함을!』(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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