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자본주의의 남용을 단죄한다
교회는 자본주의의 기본 철학인 자유주의(개인주의)와 이에 바탕을 둔 자유경쟁의 결과를 단죄한다. 자유 경쟁은 자유주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동적으로 질서와 사회 전체의 번영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고 경제력이 독점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는 『최강자의 생존만을 허용하는 무제한적인 자유 경쟁의 자연적 귀결이며, 이 강자란 흔히 가장 무자비하게 싸우는자, 양심의 명령을 가차없이 무시하는 자를 의미한다』(「사십주년」, 41항).
교회는 『오늘날 부의 축적뿐만 아니라 거대한 권력과 경제의 독재적 지배력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현상』(「사십주년」, 41항)을 단죄한다.
비오 11세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권력은 자본을 보유하고 통제하여 신용대부를 결정하고 그 할당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행사할 때 극히 독재적으로 된다. 그들은 말하자면 전 경제 체제에 혈액을 공급하고 자기의 수중에 경제의 생명을 쥐고 있는 까닭에, 누구도 감히 그들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 것이다』(「사십주년」, 41항).
교회는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지배권 쟁취를 위한 세가지 투쟁을 유발한다고 본다. 즉 우선 경제력 자체의 독점을 위한 투쟁이, 그리고 경제 투쟁에서 국가의 힘과 영향력을 이용할수 있도록 정치 권력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이, 마지막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각국이 자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국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투쟁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에서의 투쟁은 아직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나 국가간의 무역전쟁 등에서 비근한 예를 볼수 있다.
국내 차원에서의 이러한 투쟁은 결국 정경유착을 앟게된다. 교회는 정치 및 경제력의 집중은 정치 질서와 경제질서의 남용에의 길을 열어 놓게 되고 두 질서의 혼란을 가져와 어느 한쪽에도 유익하지 않는다 점을 분명하게 비판한다. 경제 권력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정부는 정치도 경제도 모두 그르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여러제도들을 단죄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남용에 대해서는 엄숙하게 단죄한다. 교황의 문헌들은 이를 잘보여 준다. 예컨대 비오 12세는 1942년 성탄절 라디오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자신의 형편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자연과 합치하기는커녕 하느님의 질서에 그리고 하느님께서 지상재화에 정해 놓으신 목적에 배치되는 장치에 대항하는 노동자를 교회는 무시하거나 외면할수 없다』
비오 12세는 1944년 9월 1일 라디오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거듭 강조한다.
『교회는 전적으로 그릇된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따라서 참되고 건전한 사회 질서에 배치되는 그러한 체제들도 받아들일수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곳에서, 예컨대「자본주의」는 그러한 그릇된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공동선에 전혀 예속되지 않은 무제한적인 권리를 재산에 부여하고 있거니와, 교회는 이를 자연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비오 12세는 1950년 사제들에게 보낸 회칙(Menti Nostrae)에서 사제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경제 체제에 대해 교회는 그 심각한 결과에 대해 비판하기를 잊지 않았다. 사실 교회는 그 체제가 증진, 옹호하고 있는 자본과재산권의 남용을 지적할뿐만 아니라 자본과 재산은 사회전체의 유익을 이한 도구가 되어야 하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옹호, 증진하는 수단이 되어야한다는 점을 가르쳐 왔다』
자본주의에 대한 교회는 비판은 두 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즉 자본주의는 첫째, 공동선에 예속되지 않은 무제한적인 권리를 재산에 부여한다는 것이고, 둘째,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거부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자본주의의 개념, 즉 공동선과 노동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재산에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교회가 배격하는 물질주의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자유 바본주의가 금전에 부여하는 무제한적인 권력, 이에 따라 이루어지는 재화의 불공정한 분배, 경제기구가 사람들에게 가하는 억압 등은 하느님의 법을 심히 거스리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남용을 막기위해 투쟁하는 것은 의무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교회와 여러 양식있는 인사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사회입법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이른바 자본주의로 말미암아 허다한 고통이 왔고 불의가 저질러졌으며 형제간에 투쟁이 벌어져 왔으며 오늘도 그 결과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족들의 발전」. 26항)
■자본주의는 유일한 모델인가?
자본주의의 남용을 막기위한 투쟁의 하나로 자본주의의 기본 철학과 제도들을 정면으로 배격하고 등장한 것이 바로 사회주의였던바, 이는 공산주의에서 가장 강력하게 표출됐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낳은 자손이자 적수인 셈이다. 양 체제는 근본적으로 서로 용납할수 없는 점들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비오11세가 문화 사회주의를 다루면서 극명하게 밝힌 바와 같이, 『이 문화 사회주의의 조상은 자유주의이며, 그 후손은 「볼셰비즘」일 것이다』(「사십주년」, 50항).
비오 11세가 회칙 「사십주년」을 반포한지 60년이 지난 오늘 자본주의의 후손인 볼셰비즘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패배를 자인했고 이에 따라 세계질서는 급격한 재편성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면 자본주의는 과연 유일한 모델인가? 교회는 요즈음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어려운 물음, 즉 『공산주의가 붕괴했으니 이제 자본주의는 승리를 거둔 사회체제이며 따라서 현재 경제와 사회를 재건하고자 노력하는 국가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참된 경제적, 시민적발전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에 권장해야 할 모델인가?』(백주년」, 42항)라는 물음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천명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 「노동헌장」1백주년을 기념하여 반포한 회칙「백주년」에서 자본주의는 결코 유일한 모델일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35항)다음과 같이 밝힌다.
『만일 자본주의가 경제 부문에서의 자유로운 인간적 창의성은 물론 기업의 긍정적 역할 시장, 사유재산과 이에 따른 생산 수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면 그 대답은 물론 긍정적이다. …그러나 만일 바본주의가 경제부문에서의 자유를 인간의 자유 전체에 유익이 되도록 하는, 그리고 그것을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간의 자유전체의 일면으로 보는 강력한 법률체제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체제를 말한다면 그 대답은 물론 부정적이다』(「백주년」, 42항)
교회는 『마르크스주의적 해결책은 실패했지만 소외와 착취의 현실은 세계적으로 특히 제3세계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이러한 현상을 강력히 비판한다.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물질적, 도덕적으로 극심한 빈곤속에 살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수많은 나라에서의 공산주의의 붕괴는 이러한 문제들에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하는데 대한 장애를 제거해 주지만, 그 해결책을 가져오기에는 충분치못하다』고 지적한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급진적 자본주의가 퍼져나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아예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신념을 내세워 그 문제들을 고려해보지도 않고 그 해결책을 무턱대고 시장 세력의 자유로운 전개에 맡겨버릴 위험이있다』(「백주년」, 4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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