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로의 마지막 상경길은 예수에게는 최후의 운명을 향한 길이다. 예수의 지상생활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바이고 그 마지막 시각이 가까워진 것을 예수께서는 감지하고 계셨다.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 졌을 때」예수께서는 그마지막 순간을 보내실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하늘에 들어 올림을 받음」이란 표현은 사도시대에 스승의 수난과 승천을 모두 뜻하는 말이다.
다른 복음사가들 중에서 오직 루가만이 예수의 승천하실 때 사항을 자세히 보고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은 이 승천사항에서 시작하여 초생교회의 수난과 승리하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의 적대자들이 그를 잡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죽음의 마수에 걸려들 결심을 굳힌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곧장 가려면 사마리아지방을 통과해야 한다. 도보로 사흘이 걸리는 여행길이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아인들과는 전통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국적으로 보면 같은 나라 사람들이었지만 민족적으로 유대아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절반 이방인으로 인정하고 있었고 사마리아인들의 음식을 부정하다하여 먹지 않았다. 이 지방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객들은 각기 자기 먹을 것을 싸가지고 다녔다. 예수의 일행은 수가 많았던 것 같고 따라서 사마리아 지방에서 숙박할 작정이었던 것같다. 그래서 미리 사람을 보내어 예수 일행의 유숙을 준비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같은 동네인지는 모르지만 전에 예수께서는 이미 사마리아지방에서 그곳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이틀동안 머무신 적이 있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요한4,40~41) .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자기들 동네에 머무시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아인들에게서 절반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이스라엘민족이 남북조(南北朝)로 갈라질 때 북조에 속하게 되었고 이방인들과 피를 섞으면서 유대아인들과는 다른 종교중심지를 정하고 야훼 하는님을 섬기고 있었다.
유대아인들이 과월절을 지내는 곳이 시온산 즉 예루살렘이라면 사마리아인들은 과월절을 게리짐산에서 지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할때에 『이제 이 산이다. 예루살렘이다 하며 구별지어 하느님께 예배드리지 않아도 좋을때가 온다』(요한4, 21)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다.
그러한 관계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의 일행을 배척한 것은 예수께 대한적 개심에서가 아니라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가는 유대아인들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전례적인 이유에서 예수의 일행을 거절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의 일행은 초생교회의 주초를 이루는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들중에서 72인 제자를 선택하여 전교에 파견할 것이다(루가 10.1이하) .
그만큼 그들은 예수께 대한 신앙심과 존경심이 돈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신앙심의 레벨은 그것뿐이었다. 하느님이 보낸분, 그들의 참 스승께 대한 사람들의 홀대를 참아볼 수가 없없다.
그들중 12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함께 예수의 측근제자로 복음서에 늘 등장하는 야고보와 요한형제는 성질이 열화 같은 성격의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은 예수께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들만 따로 데리고가 예수의 비밀을 보여준 측근들이었다.
야이로의 딸을 되살릴 때 이들만이 그 광경을 목격하였고(마르5,37: 루가851) 변성용때 그들만이 주님과 함께 산에 올라 갔고(마태17, 1:마르, 2루가 9,28) 겟세마니에서 최후의 우민을 겪을 때 그들만이 동행하였다(마태 26,37: 마르 14,33) .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영광중에 오실 때 예수의 좌우 양쪽에 앉게 해달라고 청한 사람이기도 했다 (마태20, 20이하: 마르35, 이하).
이 제자들이 예수를 거절하는 사마리아인들을 보고 가만 있을리가 없다. 심부름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이 격분했음직 한데 성서 원문에 「이것을 보고」라는 한 것은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느님의 전갈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삼켜버리게 한 일을 생각하였다(열왕하1, 10~12). 그래서 예수께 여쭈었다:『주님,(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상당히 격분하여 못 참겠다는 표현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을 「천둥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셨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돌아다 보시고 꾸짖으셨다. 어떤 말씀으로 꾸짖으셨는지 독자들을 궁금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사본에는 그 내용이 있다. 『너희는 어떤 영에 속한 사람들인지 모르느냐? 인자는 사람을 구하러 왔지 멸하러 온 것이 아니야. 』
하여튼 예수의 메시야상은 「고통받는 종」이지 환영받는 제왕이 아니다. 제자들은 아직 이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지금 내딛고 있는 예루살렘 상경길은 십자가의 길을 향한 첫 발걸음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예수께서는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그 다른 마을이 어디인지는 알수 없으나 사마리아 마을이 아닌 다른 마을일 것이다. 조금후에 예수께서는 72제자를 파견하시면서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거든 묻은 먼지를 털어 놓고 거저 가 버려라』라는 선교사 정신을 일러주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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