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시、홍콩국제공항에는 바람이 분다. 출발하면서 바로 집어넣었던 점퍼를 주섬주섬 꺼내 입는다. 몇시간 새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온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마카오로 떠날 예정이어서 오후에 빠듯한 대로 홍콩 관광을 나섰다. 아바딘 근처에 있는 해양공원과 홍콩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라는 리펄스만을 찾았다.
새장처럼 생긴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해양공원 안에는 수족관과 해양극장、인공연못、산책로 등이 있었다. 특히 공원의 일정한 구간 안에 온갖 조류를 방류해 놓고 있었는데、사람들의 발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원에서 리펄스만으로 가는 도중 내내 홍콩의 독특한 모습이 보였다. 대개의 호화 아파트 앞으로 우리나라의 달동네를 연상케 하는 판자집들이 나란히 군집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월남난민이거나 중국대륙의 난민들이라고 한다. 호화 아파트촌에서는 그들을 파출부로 데려와 쓰고있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바다에는 수많은 배들이 떠있었다. 단민족、이른바 정크족들이 살고 있는 배다. 배에서 나서 배에서 자라고 뱃사람들끼리 사랑하고、결혼한다고 한다. 그러나 죽으면 그냥 바다에 던져진다고.
홍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무국적자들인 이들은 육지에서 세시간 이상을 머물 수 없다고 한다. 홍콩정부에서는 이들을 교육 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아파트를 지어주고 육지에 나와 살기를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달도 채 되기 전에 아파트 입주권을 팔아치우고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땅이 흔들려서 못 살겠다고 했다나.
어쩌면 홍콩의 금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라고도 하는데.
아이들 교육도 마다하고 바다에서 살다가 죽어 바다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그들의 삶. 기이하다기에 앞서 바다에 대한 그들의 의구심 없는 믿음이 경이로왔다.
한편 평지가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이곳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하나라고 한다.
운동장이 있고 체력이 좋아지면 자연히 데모를 하게 될 터이니 아예 그 가능성을 없애 버리자는 것이 그들의 의도라고.
그러나 이곳도 몇년 지나지 않아서 중국으로 다시 넘어가게 된다. 대륙에서 물과 양식을 사다 먹는곳、중국도 영국도 쉽사리 제 땅이라고 주장할수 없는 미묘한 땅이다.
리펄스만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저녁 때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국 관광객으로부터 신문을 한장 얻어봤다. 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신문이었지만、반갑기 그지없다. 벌써 사흘이 지난 신문이었다. 신문에는 온통 5공비리에 관한 것과 일해 청문회에 관한 것들로 가득했다. 청문회라니? 쉽게 믿기지 않는다. 그것도 전과정을 TㆍV와 라디오로 생방송을 해주었다니.
물론 그 질의 응답의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한 것은 뒤로 하더라도 말이다.
이국 땅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비행기로 세 시간、전화를 걸면 바로 이웃집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이곳이지만 청문회를 직접 지켜 보지못한 것이 안타까왔다.
저녁 어스름 속에 가라앉은 횐 모래와 바다가 여리고 섬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에는 청문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