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에 관한 세번째 설명은 심어진 씨가 자라는 자연적인 힘을 곡식이 자라는 과정을 들어 설명하는 대목이다. 하느님나라는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려놓은 것에 비길 수 있다. 농부는 밤에는 자고 낮이 되면 일어나고 하는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난다. 농부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땅은 제 혼자서 줄기를 자라게 하고 이삭을 패게 하며 낟알을 맺게 한다. 결국 곡식이 익으면 농부는 지체없이 낫을 댄다. 추수할 것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다섯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일이 성사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는 달리 씨뿌리는 상황이 눈앞에 전개되지 않고 다만 아무의 간섭없이 씨가 스스로의 자연적 순리를 따라 자라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은 씨뿌림-싹틈-줄기-이삭-곡시-추수이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느님나라에 관한 첫번째 교설에서(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씨가 뿌려진 땅의 토양 즉 이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중요성을 두었고 두번째 설명(비밀은 드러난다 비유)에서 하느님 나라는 결국 인정을 받게 된다는 데 역점을 두었고、세번째 설명(씨가 자라는 비유)에서는 하느님나라는 단계를 거쳐 서서히 순리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역설한다고 볼수 있다.
이 비유에서 농부는 씨를 뿌려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곡식이 무르익었을때에 추수를 거둬들이는 것으로 되어있다.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을 당혹케 하는 대목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에 또 나오는 가라지의 비유에서 보듯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는 이후 비유들에 있어서는 농사를 가꾸는 사람에 초점이 두어진 것이 아니고 그 농사 즉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는 완세론에 초점이 두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비유에서 언급되는 씨를 뿌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이 아니고 일단 하느님나라는 이 세상에 세워진 것을 전제로、그 복음을 사방에 전파하는 복음전달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곡식이 무르익었을 때 낫을 대는 추구꾼은 구약성서 오엘서4장13절에서 인용한말로서 야훼 하느님을 뜻한다.
복음서를 읽으면 씨뿌린 사람과 씨가 자라는 동안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으로 읽히지만 이 비유에서의 교훈은 씨앗이 스스로 지나고 있는 성장력을 강조하려는 것이지 누가 씨를 심었으며 누가 추수하는가는 오히려 뒷전에 밀려있다.「설명용으로 사용하는 비유는 절름발이이다」라는 격언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느님나라의 성장에 관한한「씨 뿌리는 자 다르고 거두는 자 다르다」라는 말씀을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고 하느님나라는 서서히 순리를 따라 발전해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씨 뿌린 사람이 전연 무관심하게 내버려둬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씨앗이 성장하는 과정에도 비도 와야 하고、햇빛도 받아야 하고、농부는 김도 매주어야 하고、낟을 쪼아 먹는 새들도 쫓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조력들은 이 비유이야기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나라를 가꾸는데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되 무리를 무릅쓰며 순리를 거스르는 힘씀은 쓸데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늘의 새를 보라. 그들은 심지 않아도 제 먹을 것을 얻으며、들에 피는 백합화는 길쌈하지 않아도 솔로몬 왕보다 더 훌륭한 옷을 입고 있다고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의 비유의 말씀은 오직 마르꼬 복음서에만 나오는데 성 마르꼬는 전승에 따르면 주님이 무력하게도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는 광경을 목격하였고、후에 사도 바오로를 따라 제1차 전도여행에 동행하여 온갖 고초를 겪었다가 바오로와 헤어졌고 후에 로마에서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를 보좌하면서 그들의 사도직 수행이 난관에 부딪혀 있는 것을 체험하였다.
순수 유대아 혈통을 이어 받았던 마르꼬는 동족 중에서 메시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과격분자 열성당원의 성화를 체험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질시하며 방해하는 바리사이파들의 반대를 겪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사도들은 할 수 있는대로 노력은 하였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느님의 약속은 모든 인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믿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그 확신을 자연의 순리에서 얻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키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씀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물을 막 펴주고 햇빛만 쪼인다고 열매가 빨리 열리지는 않는다. 법석을 떨지 않고 맹렬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노력 무기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움직임에 인간의 노력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성 빈첸시오 아바울로는 말하였다.『하느님의 일은 서서히 서두름이 없이 진행되고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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