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이미 19세기중반 마르크시즘이 점차 유럽 노동계급의 의식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할 즈음부터 이 이념체계가 지닌 오류와 문제점을 일관되게 비판하여 왔다. 비오 9세(1848) 이래 레오 13세(1878) 비오 11세(1937) 등의 교황들은 회칙 등을 통하여 마르크시즘과 그에게 비롯되는 사회주의를「재앙」으로, 혹은 모든「악의근원」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이 이 거짓 신화에 현혹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하여 공산주의정치체제가 권위적 국가형태로 지구상에 등장하면서, 또 특히 1930년대이후 스탈린체제가 점차 전대미문의 포악한 전체주의체제의 모습을 띠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가톨릭교회가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생산수단의 국가통제 등을 통하여 개인을 사회적 유기체의 한 분자로 환원시킴으로써 인격을 왜곡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하에서 인간은 도덕적 결단의 자율적주체로서의 인격개념을 상실하고 끝내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역대 교황의 회칙은 또한 사유재산권은 천부적 권리로서 자연권이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것임을 강조했다. 마르크시즘에 있어 사유재산제도는 인간소외의 주된 원인이며 따라서 모든 것에 앞서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교회의 입자는 인간이 이 제도를 통하여「자기의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자기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가능성을 획득함으로 그것은 인간자유의 원천인 것이다. 교회는 사유권에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할 사회적 의무가 담겨져 있음을 엄중히 교시함으로써 그것이 절대적 성격을 띠는 권리가 아님을 분명히한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는 마르크시즘의 무신론, 유물사관, 폭력론, 그리고 특히 그 정치이론의 기조인 계급투쟁론을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는 단순히 반종교적이라기 보다, 반그리스도적이며 따라서 가톨릭과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오랜 믿음이었다.
마르크시즘에 대한 교회의 태도변화에 극적인 계기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였다. 이 공의회를 계기로 정의사회구현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속한다는 사실이 널리 수용되었고, 이러한 진취적 분위기속에서 마르크시즘을 보는 교회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교황 요한 23세가 1963년 4월 발표한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가톨릭신자와 비신자와의 대화가 권장되고 있고, 「오류에 떨어지는 사람도-인간으로서의 자기존엄성을 잃은 것이 아님」을 밝힘으로써 무신론자와의 대화가능성을 폭넓게 열어 놓았다. 이 회칙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단죄는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 유럽에서는 정치신학이, 또 남미에서는 해방신학이 급격히 대두되어다. 이제 「해방자」로서 하느님이 부각되면서 반그리스도교적 구원은 사회적ㆍ정치적 해방을 포함한다는 입장이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한것이다. 해방신학의 성격을 결정짖는 데는 1968년 2차 중ㆍ남미 주교총회의 메델린 문헌이 큰 몫을 했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기 시작한 것은 흔히 저발전으로 집약되는 이지역 특유의 방대한 빈곤과 억압상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해방신학자들의 상황분석과 처방은 자못 급진적이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 지배적인 이른바 종속이론을 수용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세계는 공업화된 중심지와 1차 상품을 생산하는 변방으로 양분되며, 구조적으로 후자(예컨데 남미)는 전자(미국 등)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이때 변방국가의 저발전과 중심국가의 고도발전은 범세계적인 자본주의의 확장과정과 연결되며, 양자간의 구조적 유착을 통해 중심국이 발전하면 할수록 변방국의 저발전은 그만큼 심화된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자들은 무엇보다 남미상황에서 적대적 계급의 존재와 여기서 연유되는 계급투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을 주장하며, 은연중에 사회주의를 통한 계급투쟁의 극복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 해방신학자들은 원칙적으로 무신론과 유물사관을 거부하며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시즘을 전체로서 받아 들이는 입장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 미치 경제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 분석방법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수용해서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들은 신학과 실천문제를 깊이 연계시키고 있는데 이 또한 이론과 실천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마르크시즘의 기본 입장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등으로 해방신학은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노동헌장」반포 80주년을 맞아 교황 바오로 6세가 1971년 5월 반포한「행동지시」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다의성을 이정하는 대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교회는 현실분석방법으로서의 마르크시즘과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시즘이 준별될 수 있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를 표명한다. 왜냐하면 사회ㆍ경제현실 분석방법안에 이미 이데올로기의 원칙들이 전제되어 있어서 전자를 후자로부터 분리시켜 이용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이후 해방신학의 물결은 교회가 제3세계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직시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무엇보다 사회정의실현의 문제의식을 제고했고,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한다는 명제를 발전시키는 데도 큰 몫을 했다. 아울러 마르크시즘에 대한 교회의 면역성을 키우는데도 많이 기여했다.
이탈리아의 공산당 지도자 톨리아티는 이미 1960년대에 가톨릭과 공산주의자들간에 협력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제의했고, 이는 훗날 유로콤뮤니즘의 지적 전통으로 작응한다. 1965년 3월 「파울루스 협회」주최로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에서 열렸던 「오늘날의 그리스도교회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제하의 모임에서는 명망있는 신학자와 공산주의자간의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 이러한 작은 접촉은 양자간의 전통적인 적대의식과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마르크시즘을 한몫으로 단죄하지 않으며, 그것이 추구하는 긍정적 사회경제 목표를 얼마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주의 또한 가톨릭 교회와의 전통적 불화를 줄이기 위하여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레오 13세의 「노동헌장」반포 1백구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펴낸 회칙 「백주년」은 사회주의의 패배를 공인하고 아울러 자본주의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여기 요한 바오로 2세는 백년전 「노동헌장」에서 선보였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노동문제에 대한 교회의 개혁안이 실로 통찰력있는 논지였음을 밝히고 선진국과 제3세계에 상존하는 물질적, 도덕적 빈곤 등 비인간화 현상을 예로 들면서 자본주의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현존 사회주의 체제로서의 공산주의의 역사적 붕괴와 연관하여 세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그는 이 엄청난 변혁의 결정적 요인으로 노동자의 권리의 침해를 들고 있다.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공산주의사회가 실제로 그들에게 견딜수 없는 질곡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는 동구공산권이 비폭력적 방법에 의하여 붕괴되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폭력혁명을 추구하는 마르크시즘에 대한 진리ㆍ정의ㆍ그리고 평화의 승리라는 것이다. 세번째도 그는 사회주의체제의 경제적 비효율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주도권, 재산의 소유, 경제적 활동의 자유 등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제 적어도 당분간 새로운 사회주의 체제의 실험은 없으리라는 것이 많은 이의 견해이다. 물론 기득권을 지키려는 군부의 반혁명은 고려에서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제 사회주의가 남기고간 폐허에서 자족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적 해결책은 실패했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 인간소외가 남아 있는 한 가톨릭 교회의 곧고 매운 비판의 화살은 모든 기존 체제를 향할 것이다. 아마도 그 화살속에는 사회주의가 추구했던 설익은 이상과 열망, 그리고 적지 않은 시행작오들이 이제 보다 성숙한 꿈으로 또 세련되고 인간화된 방법으로 되살아나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가까이 이끄는데 한몫을 톡톡이 거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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