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목 요한 7장 14~24절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유대아인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서 그 논쟁의 내용은 예수가 군중에게 가르치는 자격문제와 안식일과 관계된 율법문제이다. 이 내용으로 볼 때 오늘의 대목은 5장에 언급한 베자타연못에서의 기적(대목113참조)과 율법을 준 모세논쟁(대목116참조)과 이어져야 된다(대목113참조).
요한복음서는 시간순에 구애받지 않고 내용위주로 책을 썼기 때문에 예수께서 유대아인들의 명절 중간에 예루살렘에 나타나신 것으로 보아 이번 상경은 그들의 장막절축제를 말한다. 「명절 중간쯤」이라고 한 것은 7일간 계속되는 장막절의 넷째날이다. 이 축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때였고 따라서 예수께서는 많은 청중을 상대로 가르칠 수가 있었다.
유대아인들의 반응은 그렇다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듯 아는 것이 많을까 하고 놀랐다』여기서「놀랐다」는 표현은 경탄하였다는 뜻이 아니고 의아해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사람」이란 대명사는 「저 작자」라는 다소 경멸적인 뜻이 있다.
유대아인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는 지식은 라삐들한테서 교육을 받고 라삐가 됨으로써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작자는 그런 경력이 없지 않는가라는 뜻이다. 비슷한 반응이 가파르나움(마르1, 22)과 나자렛(마르4, 44)에서도 있었다.
사도행전에는 유대아의 관리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를 듣고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4, 13). 유대아인들의 반응은「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한테 받은 지혜」라는 다음 주제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예수의 대답은 『내가 사람한테 배워서(=내것이 아니고)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분의 가르침을 전한다』라고 하였다. 보내신 분은 물로 하느님이지만 이 표현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의 자격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메시아 파견사실을 믿는 사람은(=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 하느님의 가르침과 인간의 가르침을 구별할수 있다. 이 말씀은 요한5장, 46절 『모세가 기록한 것은 바로 나를 두고 쓴 율법이다』라는 말씀을 상기시킨다.
라삐들은 모세의 율법을 글자로만 가르쳤지 그 예언적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라삐들은 자기 지식을 자랑했다. 「제생각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말씀은 이런뜻이다. 하늘에서 오신 분과 세상에서 나온 사람의 대조는 요한복음서의 라이트모티브를 이루며 하늘에서 오신 분의 증언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는 참되시라는 것을 확증하는 사람이다. (요한3, 31~33).
하느님의 가르침과 사람의 가르침을 구별하는 것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고(요한5, 41) 하느님의 영광을 도모하니 예수는 하늘에서 온 분이며 하느님의 진실성을 받아 그 분도 진실하시다. 그러니 그 마음속에 허위란 있을수 없다.
구약성서 사무엘 하권14장, 32절에서 압살롬이 왕에게 자기 진실성을 강조하면서 『만일 자기에게 허위가 있다면 죽여 주소서』라고 한 것과 비교한다면 진실한 예수를 죽이려고 한 유대아인들은 그들이 오히려 허위스럽다. 그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하였고(요한 5, 18) 이를 감지한 예수께서는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던 일이있다(요한7, 1). 사실 허위에 찬 사람들은 예수의 적대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뜻은 모세의 율벙에 담겨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시편 40, 9). 그런데 그 당시 율법을 소유했던 유대아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가 명예를 위하여 다루고만 있었지 실제로 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중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정체가 허위에 가득차 있음을 고발하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수난의 예고에서 시작하여 당신의 죽음을 상기시키면서 죽음의 주제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허위성은 더욱 가중된다. 『우리가 언제 당신을 죽이려고 했소. 당신 미쳤소?』여기서 미쳤소라는 말의 원어는 『마귀에 들렸소』라는 그들의 관용어이다. 예수께서는 베자타연못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면서(요한 5, 1~9)안식일에 사람을 고친 일로 해서 유태아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율법준수에 역점을 주는 그들이 스스로 속고 있다고 이치를 지적한다. 그들은 모세가 할례법을 명한 줄로 알고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한다. 그러나 사실은 할례는 모세보다 훨씬전인 아브라함때부터 실시해 온것이다.(창세 17, 10)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느님과 성약에서 이루어진 할례법은 4백30년후에 생긴율법보다 우위에 있다. (갈라3, 17)할례는 인간의 2백48개 지체중 한 지체에 행하는 일이며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사람 하나를 온전히 고쳐주신 것이 안식일법에 어긋날리가 없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정해진 제도이라는(마르2, 27)것을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본말을 전도하여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그 근본 정신을 파악하고 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모세가 법을 내린 것은 그 백성이 구원의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 사람을 묶어놓아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공정하게 판단하라』는 말씀은 이런 뜻에서 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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