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구치소 화단에는 노란 개나리 꽃망울이 반쯤 부풀어 있었다. 사람들은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다니지만 개나리가 봄 편지 같다. 오늘은 둥실둥실 순한 인상의 소년이 수줍은듯 약간 몸을 비틀며 앞에 와 앉는다.
『이름이 뭐니?』『영숩니다』『네 얼굴을 보니 너 처음 들어 왔구나?』『네』『누가 면회 오니』『형이요』『부모님은?』『다 안계십니다』『학교는?』『중2중퇴입니다』『왜 그랬니?』수그렸던 머리를 차차 들면서 엄마를 대하듯 자연스레 말을 잘 이어 간다. 『2남1녀중 막내인데 아빠는 제가 한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 기억도 없구요. 엄마는 작년에 고혈압으로 돌아 가셨어요. 』하고 한숨을 푹 쉬면서 다시 머리가 숙여진다. 잠시후 작은 목소리로 『저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문밖에서부터 엄마를 부르며 뛰어들어가거들랑요. 그날은 앞 마당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신발짝들이 어지럽게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는 것이 가슴섬짓하게 놀랄만큼 이상했어요.
엄마는 보통 그 시간이면 대문앞에 모습이 보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꼭 기다리고 가까이 계셨다가 따끈 따끈한 밥상을 차려 주셨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많이와 계셨고, 분위기로 보아 겁이나서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막 울었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눈물을 닦아주며 차근차근 말해 주었어요. 『네 엄마가 아침에 목욕탕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는데 뇌진탕으로 돌아 가셨단다』.
나는 하늘이 노랗게 되어 내 위로 마구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와 형은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고 엄마와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가 돌아가신뒤 나는 아침에 형집에서 책가방 들고 나오면 하루종일 공원이나 산과 들,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녔어요. 아무도 세상 그 무엇도 내 마음을 달랠길 없었어요.
한참 방황하던 나는 거리의 친구들과 하나, 둘 차차 어울리기 시작했고 주로 오락실과 만화가게를 즐겨 드나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돈이 필요하게 됐지요. 친구 하나가「우리 돈을 만들자」하며 기술을 가르쳐 주었어요. 낮에는 국민학생들의 책가방을 들치기 했고, 밤에는 아베크족을 털었어요. 처음엔 들킬까봐 조금 무서워 떨었는데 나중엔 신이 났고 정신이 팔렸어요』그애는 죄의식이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영수는 소년심판에 의해 징역5년을 선고 받았다. 엄마품에서 곱게만 자라온 그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모든 어려움을 혼자 극복하기엔 너무도 무능했다.
한동안 탈선을 길을 걷느라 정시없었던 그에게 엄마에 대한 그림움이 못견디게 그를 다시 괴롭혔다. 그러던중 그는 천주교 교리집회에 나와 열심히 공부했고, 성모님을 알게 되면서 차차 삶의 용기를 되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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