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에 우리는 성 아우구스띠노축일을 지낸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가톨릭교회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던 아우구스띠노 성인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울만한 것이 있는가를 알기위하여 성인을 바라보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 또한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축일을 맞으면서 성인의 가르침들중에 특히 자녀들의 교육에 관한 말씀을을 간추려 묵상해 보기로 한다.
몇몇 젊은 학생들은 성 아우구스띠노 자신도 그분께서 자라나신 북아프리카 타가스트(Thagaste) 지방에서 읽기, 쓰기, 산수 등을 배워야 하는 국민학교 과정을 싫어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음의 위안을 찾을 것이다.
기원후 397년경에 쓰여진 성인의 고백록(1, 9, 14)에서 성인께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배우게 하기 위하여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학교에 보냈으며 아이들이 어떻게 체벌에 시달렸으며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을 때 강압적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했는가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성인께서는 그당시 「부자가 되어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는 인생의 잘못된 철학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어른들을 맹렬히 비난 하셨다.
이와 같이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어른들의 주된 관심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은 사실에 반대한 나머지 성인께서는「그리스도인의 교육」이라는 유명한 강론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아주 다른 관점들을 제시 하셨다. 누구든지 진정한 행복은 무엇보다도 사랑안에서 발견되어진다는 것을 인생을 통해서 예수님께 배운다.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두가지 큰계명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이룬다고 분명히 가르치셨다. 모든것에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 한가지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젊은이들에게 사랑에 관해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공부를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공부하도록 하기 위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하며 자녀들은 왜 배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는 이와 같은 모든 고통의 유일한 원인은 대체적으로 돈을 벌고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자하는데 있다고 비평하셨다.
만약 사랑이 모든 참교육의 근본이 된다면 그때에는 모든 사물들이 아주 다른 차원에서 보여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에게 있어서도 하느님 공경, 이웃사랑,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 이세가지는 따로 따로 분리될수 없는 같은 사랑들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사랑에 관해 배우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갈망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 그리고 이웃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 이 세가지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돈과 재산에서 행복을 찾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며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교육에 관한 다음의 강론에서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과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이웃들과 가진바를 나누고 시기하고 자랑하는 것을 피하고 궁핍한 사람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고 제시해 주셨다. 또한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물질을 많이 갖고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 할지라도 우리는 소유욕망을 억제 할수 없고, 또한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 못할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 강론중에 하신 말씀들을 직접 들어봄으로써 성인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해보자. 『한없이 풍요로우신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그들에게 관대함을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친히 가난하게 되시길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형제들에게 무언가를 베푸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이웃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는 동반자에게도 또한 무언가를 베푸십시오.
이와 같은 삶을 살므로써 우리는 함께 인생의 여정을 여행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나는 부자야 그러나 그는 가난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행의 동반자가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이『나는 부자야 그러나 그는 가난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이 말하고 잇는 의미는 『나는 부자이기 때문에 부담을 갖고있고 반면에 그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을 갖고 있지 않아』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나는 부자야 그리고 그는 가난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젊어져야 하는 부담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리고 그 부담의 책임을 자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수 없기에 그 부담의 책임을 지기 위하여 바쁘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게 부담을 갖고 당신자신을 구속하면서 그것 때문에 자랑하는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처럼 여기십니까? 여러분은 속박의 상태에서 여러분 자신을 해방시키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여행 동반자에게 얼마간의 부담을 위임하므로써 여러분자신이 갖고 있는 부담을 경감 시키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그를 도울수 있고 여러분 자신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될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로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하여만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거기에서 도움을 호소 하시지만 아무것도 받으시질 못할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까?』하며 우리의 자녀들을 호화롭게 살게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궁핍함을 당하고 계십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사랑이란 단어앞에 경의를 표할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을 생각하십시오. 다만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생각할 때 하나더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
참으로 나는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참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신다고 믿는다.
성인께서는 사람의 됨됨이를 그사람이 소유한 것에 따라 평가를 내리려고 하는 그 당시의 보편화된 생각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보이셨다. 이에 대하여 그 당시 성인께서는 『만약 여러분이 달을 여러조각으로 부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부자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말하자면 여러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라는 유명한 속담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는 당신의 형제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접할수 있고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수 있는 그러한 뿌리깊은 생각들로부터 떼어 놓고 싶어 하셨다.
그러면 이제가지으 교육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정말로 그리스도인다운 생각이었는지 혹은 우리가 세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을 추구하는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시한번 점검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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