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을 주제로 한 비유는 예수께서 하느님나라의 현세성을 완곡하게 설명하는데 있어서나 사도들이 하느님나라가 교회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교우들에게 부각시키는데 적절한 소재였을 것이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하느님 나라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왕성한 성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스스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에서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리를 따라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진인사(盡人事) 후에 대천명(待天命)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오늘 가라지의 비유에서 지상에서 자라는 하느님나라 공동체안에는 인내로써 얻어야할 악의 씨앗이 뿌려져 있음을 상기시키고 하느님나라의 자녀들은 악마의 졸개들의 기세에 고생은 하지만 역시 하느님의 심판은 선인들의 편임을 확신케 한다.
이상으로 보아 예수님의 비유의 가르침은 하나하나가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한 시리즈를 이루며 전체적인 교훈을 단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유의 말씀은 간단명료하다. 이상한 점 하나 없이 이야기는 깨끗하다. 한 농부가 낮동안 밭에 씨를 심었다. 이것을 바라다 보던 심술꾼이 심통을 부리며 악의에 찬 해꾸지를 꾸미고 있다. 그는 그 계획을 어두운 밤에 실천에 옮길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잡초씨를 좋은 씨위에 덧뿌려 놓은 것이다.
잡초라고 하는 것은 성서원문에서 지자니아라고 하는 해초로서 식물로서는 밀과 비슷한 모양을 한 초본식물이다. 우리는 이것을 가라지라고 번역한다. 밀과 지자니아는 모두 커서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식별하기가 어렵다. 농장의 일꾼들이 이것을 발견했을 때는 가라지가 퍽이나 자랐을 때이다. 그 양도 일꾼들이 놀랄만큼 많았다. 그래서 주인농부에게 가서 물었다. 『좋은 씨를 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 잡초들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바람에 날려서 혹은 흙 속에 있던 잡초씨가 자랐다면 저렇게 많은 잡초가 자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농부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원수의 짓이다.』
일꾼들은 그 잡초를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사려깊은 주인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잡초는 곡식보다 성장력이 강하다. 그 뿌리는 곡식보다 더 탄탄하게 더 넓게 박혀있다. 그것을 뽑다가는 혹시 곡식까지 뽑혀나올 수도 있다. 주인은 그 밀이삭하나가 아깝고 귀중한 것이다. 차라리 추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밀과 가라지를 가려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곡식과 잡초는 어렸을 때는 비슷하지만 일단 이삭이 패고 낱알이 익으면 식별하기가 쉬워진다. 더군다나 추수할 때는 추수전문가들을 보낼 작정이다. 그때에 가서 곡식은 곳간에 넣어두고 잡초들은 따로 묶어 불에 태워버릴 것이다.
이 비유를 읽으면 누구나 씨를 뿌리는 농부는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고 밭은 하느님나라가 임재한 현세의 교회, 좋은 씨앗들은 하느님의 자녀를 즉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자라는 교우를, 원수는 악마, 원수가 뿌린 잡초는 악마의 졸개들을 생각하게 되고 마지막 날의 하느님의 심판을 연상하게 된다. 이렇듯 명백한 비유를 들고 제자들은 군중을 떠나 집으로 들어가 주님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을 때 무엇때문에 그 비유설명을 요청했을까. 그것은 교회를 맡은 사도들이 교회의 실상을 교우들에게 가르치려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좋은 씨와 나쁜 씨가 함께 뿌려져 있다는데 주의를 환기시킨다. 좋은 씨는 하느님나라의 자녀들이고 나쁜 씨는 악인의 자녀들이다. 교회 안에 선인과 악인이 섞여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좋은 씨를 뿌린다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며 가라지 씨를 뿌린 자는 악마이다. 교회 안에 악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자들은 자기만 잘났다고 하며 교묘한 허설로 순진한 교우들을 신앙을 일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다.
여기서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란 원문의 뜻대로 법을 무시하는 자들이란 뜻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자기에게 편리한 법칙을 고집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새 법을 무시하고 불화를 일삼는 자를, 방종의 자유를 주장하며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런 종류의 악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교회 안에서 목청을 독운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인자, 人子가 더 좋을 듯)이며 밭은 세상이라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신약용어이고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에 세워진 인자의 나라임을 명백하게 가르치는 대목이다. 그 나라는 교회이다. 이 나라에는 악인들이 언제나 같이 끼어 있게 마련이고 그 악인들은 끈기있게 기다리며 끝내는 심판을 하느님께 맡길 때까지 인내와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악인의 씨앗이 그 마각을 들어낼 때는 이미 때가 늦었고 사람들이 손대기에는 공동체의 소란이 너무 위험스럽기 때문이다.
성 예로니모는 이러한 자들을 이단자들로 규정하고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씨앗을 뿌리는 만큼 모두 깨어 이단의 씨앗을 뿌리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속에서 체치통곡(切齒痛哭)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반대자가 받을 형벌을 표현하는 신약성서의 용어이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는 말은 신앙을 견지한 사람들이 받는 보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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