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이 여기 끼이게 된 것은 오늘 이야기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는 앞서에서 말했듯이(대목 113참조)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가나에 계셨던 이야기(4장끝) 후에 갈릴래아 바닷가에 계셨고(6장)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가(5장) 다시 갈릴래아로 돌아오신(7장)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7장 1절에 「그뒤에」라고 시작한 것은 요한이 다음 사건이야기를 계속할 때 쓰는 관용어이지만 예수께서 유대아인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친 다음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 이전에 유대아 지방에서 유대아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그 지방으로 가려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마도 예루살렘 베제따연못에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 해서 그들의 분노를 샀고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마음 먹었던 일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요한 5,18: 대목 114참조).
그래서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셨다. 이 편력은 지금까지 우리글에서 언급한 예수의 활동을 말한다. 갈릴래아 지방에서도 예수께서는 그들과 부딪쳤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했을 때 유대아인들은 몹시 못마땅해 했고(요한6, 41) 『내 몸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고 설파했을 때 그들은 논쟁을 벌였다(요한 6, 51).
그러나 이 충돌은 갈릴래아에서도 있었던 일이고 그들은 이 지방에서는 예수를 잡아 죽일 형편이 못되었다. 하여간 갈릴래아에서의 예수의 활동은 대단한 것이어서 전에는 예수를 미쳤다고 생각하던 집안 사람들(마르3장21)조차도 예수의 행적을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그들은 갈릴래아에서의 예수의 명성을 세속적으로 이용하여 자기들 가문을 높이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런 뜻으로 요한은 그들을 가리켜 「믿지않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께 와서 갈릴래아 촌구석에서 그 훌륭한 기적들을 행할 것이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인 유대아지방에 가서 사람에게 보이고 그곳에 처져 있던 제자들에게도 보여 주어 명성을 세상에 떨치라고 하였다. 그들은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사명의 진가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유대아에 있는 제자들이란 예수께서 성전을 허물면 사흘안에 다시 짓겠다고 장담하실 때 겉으로만 믿고 속으로는 미심쩍게 생각하며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과(요한2, 22이하) 세례와 관련하여 세례자 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들이 따른다는 그 제자들(요한 4,1) 그리고 영적인 생명의 빵을 주신다고 하실때에 터무니 없는 말씀이라고 하며 믿지 않고 떨어져 나간 제자들(요한6, 66)을 가리킨다.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그 기세를 예루살렘에서 보여 주어 세상에 명성을 떨치라고 한 것은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영적인 것과 속적인 것 사이에서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했는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악마의 시험을 받던 내용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유혹: 돌을 빵으로 만들라(마태4, 3) 하늘의 빵을 달라(요한6, 31)
●두번째 유혹: 뛰어내려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보이라(마태4, 6) 훌륭한 기적들을 유대아에 가서 보이라(요한 7, 3)
●세번째 유혹: 이 세상을 다주겠다(마태 4,9)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요한 6,15)
예수의 대답은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영광의 승리자의 말이었다. 『너희들이나 먼저 올라가라.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여기서 예수의 올라갈 때는 수난의 때, 십자가상 죽음의 때, 부활하여 아버지께서 올라갈 때를 가르킨다. 그때는 이번축제 장막절이 아니고 6개월 후에 있을 과월절이었다.
「올라간다」는 원문동사는 본래 시온산으로 상징된 예루살렘 순례길에 오른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는 말씀을 하실 때 사용했다(요한20,17). 사실 유대아인들은 예수를 장막절 축제 때에 죽일려고 했으며(요한 8, 59)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미움은 세기를 통하여 세상의 예수께 대한 미움으로 바뀐다.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완악한 유대아인들처럼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다. 결국 형제들은 장막절 축제에 올라갔고 예수께서는 가지 않겠다고 한 말과는 달리 나중에 남의 눈에 띠지않게 올라 가셨다.
그래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이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화려하게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로 알아 듣는다.
유대아인들이 이번 축제군중들 중에서 예수를 이리저리 찾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 기회에 예수를 해치우려고 벼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예수가 어디 있느냐」고 공동번역에 되어 있는 것은 원문의 뉘앙스는 「그 작자가 어디에…」이다. 예수에 대한 의견은 군중들 사이에서 찬반 양론으로 갈려져 있었다. 그것은 군중이 고의적으로 어느 쪽에도 편들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예수를 나쁘게 평하는 사람들은 그를 민중의 미혹자라고 했다. 당시 떠돌던 소문으로는 예수를 갈릴래아의 미혹자라 했고 그를 반대하는 극렬분자는 예수가 처형당하기 전 40일동안 예수가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으며 그를 감싸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토라문서에 쓰여져 있다. 예수를 좋게 보는 사람들은 그를 현인이라고 했다고 하며(성 유스티노의「트리포와의 대화」중에) 이 사람들은 유대아인들이 무서워서 예수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말하기를 꺼려하였다. 요한의 언어에서 예수의 적대자들을 유대아인들로 표현하는 것은 요한이 복음서를 쓸 당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반영하는 간접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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