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의미
노동에는 인간의 기본생활 유지에 필요한 재화를 얻기위한 최소한의 필요노동을 초과한 잉여노동이 있다. 이 잉여노동은 칼 맑스에 의하면 잉여가치라하여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에게 돌아간다는 이론을 전개하는 근거가 된다. 즉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박게되는 임금이상으로 생산한 나머지의 가치인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체제에서 잉여노동은 잉여가치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그 잉여 생산물은 자본가가 갖게 되어 자본의 축적과 생산의 확대를 가져오게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외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갖는듯이 보여도 잉여생산물을 자본가가 차지하는 한 노동은 불공평한 성격을 갖게 된다. 노동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수 없이 필요노동 이상의 잉여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잉여생산물은 임금이외의 잡다한 비용으로 지출되는 것이기에 노동자가 모두 가져야 한다거나 혹은 자본가가 부당하게 전부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기에 기업의 미래계획과 현실적인 시장구조, 그리고 국가의 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하여 노사협조아래 공평하게 분배해야 할것이다. 한편 개인의 노동은 사회가 생산한 총노동의 일부이기에 사회적인 성격도 갖는다. 즉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살기 좋은 곳으로, 세상을 안락한 삶의 현상으로 변화시키기에 결국 노동은 사회의 발전을 향상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구약성서는 하느님 자신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노동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본다(창세기1, 31). 노동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피곤한 것이기는 해도 선한 것이고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부과된 의무사항이다. 노동을 통해 인간의 행위가 완성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사랑의 새 계명은 노동하는 자들의 행위들은 땀과 함께 수고하는 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노동은 인간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요한10, 8~16:루까4, 23). 노동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나타난다. 그 분은 십자가상에 돌아가시기까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모든 고통을, 즉 노동을 승화시킨분이시기 때문이다 (마태오13, 55). 사도 바오로는 안정된 의식주의 해결을 위해 노동이 필요하다고 보며 영성적 측면에서도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그는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데살로니까후서3, 10)고 경고하면서 노동이 기본적 생활유지에 필요하나 각개인의 노동의 결산이 가난한 형제들 돕는 수단이 된다고 자선적 차원도 역설했다.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노동 이해는 노동이 우리 구원에 유익하며, 하느님안에서 완성되는 숭고한 행위라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노동을 고통이나 죄의 벌로 이해하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중세기 말엽에 기술문명은 육체적 노동을 지성적 노동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노동에 대한 신학적 관심은 1950년대에 고조되어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행위를 연장하는 인간의 행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게 하며, 동시에 이것으로 인간이 보다 가치있는 인간으로 성장되며, 인간들끼리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교류를 원만히 진행시키고, 마침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고 본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교황 레오 13세의「노동헌장」이래 오늘날까지 발표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잘 드러난다.
특별히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현실도피의 영성적 시각을 벗어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노동윤리의 새로운 차원을 강조하였다. 이런 사회에 대한 책임은 인간행위의 고귀한 가치와 그 의미들을 깨우치고,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촉구하고 있다(사목헌장30·67).
●노동자들의 상황과 노동의 우위성
사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노동의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는 물질주의의 여러 사상에 의해 도전받게 되었다. 경제 제일주의를 따르는 자유 자본주의는 노동을 상품으로, 곧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하나의 상품으로 매매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때 노동은 재화 생산을 위한 특별한 상품으로 취급될 수 밖에 없다. 노동의 주체는 인간이기에 노동력이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안에는 한 인간의 존엄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노동의 실질적인 주체이며 사물의 창조자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병폐가 계속되는 한 인간이 물질과 비슷하게 전락할 위험성을 갖게되는 오류가 반복된다. 인간은 생산된 상품의 주인이며, 모든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주인인 것이다 (노동하는 인간 7).
사용자들의 비인간적 불의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힘을 합칠 것을 결의하게된다. 사실 노동현장에서 비인간화되는 노동자들이 인격의 존귀함을 외치며 단체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타당하다.
바로 그것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기본권 요구였으며, 사용자에 의해 행해지는 임금착취와 극히 불량한 노동조건을 거부하고 사회보장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부당하고 악랄한 체제에 반발한 것은 적당하게 평가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은 단순한 생산의 도구이고, 자본은 생산의 효과적인 요소라는 주장에 아무도 동조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적절한 조직을 통해서 생산관리에 참여하거나 노동의 조건과 보수, 그리고 사회법 제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노동하는 인간 8).
현대사회는 전문인의 사회여서 해당분야에서 학위나 자격증을 얻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교육을 요구하는 노동의 수요가 육체노동의 수요보다 적거나 보수가 적으면 전문인력들의 실직이 증가한다. 최근 한국의 고급인력 수급의 불균형으로 실업자들이 생기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여간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소홀, 노동자들의 임금착취, 비곤상태에 있는 지역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시 노동자들의 단결된 모습에서 찾게된다고 교회는 외치고 있다.
인간노동에 대한 존엄성이 침해된 결과에 교회가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가난한이와 함께 하는 교회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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