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법 문제로 궁지에 몰렸던 예수의 적대자들은 『나는 그 분이 보내서 왔다』라는 예수의 말씀에 분개하여 그를 체포할 음모를 꾸미게 된다. 예수께서 계시는 현장은 예루살렘의 장막절축제장이며 이 축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든다. 그들중 어떤 계층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유대아인들이 죽이려고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예수께는 때가 아직 오직 않았다. 그렇지만 그 때가 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없다. 가르쳐야 할 중대한 일들이 많다. 그래서 군중앞에서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게 가르치셨다. 그런데도 그를 체포하려고 벼르던 자들은 말 한 마디 하지 못하였다. 이것을 본 몇몇 사람들은 지도자들이 혹시 저 사람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들의 의아심은 더욱 커졌다. 왜냐 하면 그들이 알기로는 메시아는 성도 이름도 없이 언제 어디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이 가려진 메시아관은 그 출현을 가르치던 라삐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런데 예수께 대한 의아심을 품는 유대아인들은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대아인들에게는 사람의 신원을 출신지로 표시하였고 누구냐고 묻는 질문도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예수께 대해서는 그 시원을 물어 볼 것도 없이 나자렛의 예수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예수가 메시아이냐라는 의아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그들의 논리가 순수 인간적이라는 것과 메시아에 관한 한 인간의 논리는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한다.
우선 그들이 가리워진 메시아관을 갖고 있었다면 메시아식별은 인간논리가 아니고 인간에게는 가리워진 신비에 속한다. 인간 예수는 그들이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로 나자렛 출신이다. 그러나 예수의 정체는 하늘출신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왔다. 그래서 조금 전에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예수는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왔을뿐 아니라 그분과 일치한다. 그러니 하늘의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분이다(요한1,18: 6, 46: 8, 25: 17, 25).
예수께서 한때 감사의 기도를 올렸듯이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마태11,27:루가10, 22).
예수께서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하느님의 지혜를 찾는 요한복음서의 주요 테마이며 지혜를 찾는 모색의 노력은 구약성서 욥서를 연상시키며(18, 12이하) 『지혜가 어디에서 오는지 너는 배워라… 누가 지혜가 있는 곳을 찾아 낼 수 있으랴』라고 한 바룩서(3, 14~15)와 비교 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 찾던 지혜, 어디에서 올지 모를 메시아가 바로 예수라는 중요교리를 예수께서는 단언적으로 군중에게 가르치셨다: 『나는 그 분을 알고 있으며 나는 그분으로 부터의 출신이다. 그 분이 나를 보내서 왔다』. 자기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의 출신이라는 대담한 주장은 예루살렘성도의 적대자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예수를 잡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여론을 의식해서가 아니고 예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을 예수의 수난이 하느님의 구세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려는 시도이다.
구약성서에서 읽어야 했던 참 메시아상은 모세나 엘리야 같은 대예언자였고 이 두사람은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유대아 민족에서 기적을 행하는자 보다도 민족의 지도자로 더 강하게 비추어졌었다. 이사야서에 그 때에는 (해방의 날에는) 소경이 보게 되고… 등등(35,5~6:본서 대목77참조)이 메시아를 알아보는 표로 예언되어 있지만 유대아인들은 이 글을 그저 상징적으로만 읽었고 메시아는 혜성처럼 나타나 조국을 세상에 떨치는 지상왕국 건설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당신을 알아 보는 표로 제시한 소경의 눈뜸, 절름발이의 걸음, 귀머거리의 들음, 병자의 치유, 죽은 자의 소생 등(루가7, 22) 온갖 기적을 많이 행하셨고 그 기적들은 명성을 떨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메시아를 알아보는 표로 주신 능력표시였다. 예수의 기적들을 메시아식별의 표징으로 부각시킨 것은 신약의 사도시대의 일이다. 사도들은 복음서를 쓰면서 이 기적의 효과가 유대아인들 사이에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한것으로 제시하였다. 유대아인들은 자기들 앞에 기적을 행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 나타났다고 놀라는 반응을 보였고 빵의 기적을 행했을 때에는 예수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달려 들기도 하였다.
하여튼 유대아인들 중에 보통사람들은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혹시라도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닐까하고 좀 믿어보자는 미심적은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미지근한 신앙은 기적이 목표로 한 목적달성에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당국자들이 예수를 체포하려는 음모를 굳히는데 구실을 제공하는 역효과를 냈을 뿐이다. 마음이 올바라야(그가 계시하려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마음) 옳은 일을 옳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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