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나움에서의 안식일 하루는 예수께 몹시 바쁘고 지치는 날이었다. 오전에는 회당에서 설교와 더러운 악령추방, 낮에는 모든 유대아인들이 안식일을 자기 집에서 지내는 관습대로 시몬 베드로의 집에, 저녁 후에는 베드로집 문전에 모인 병자를 치유, 그 이튿날은 아직 날이 새기도 전 일찍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신다음 이러한 바쁜 하루를 보내셨다.
이 활동은 모두 하느님 나라 선포에 집중된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일부터 순서적으로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설교로 시작하여 더러운 악령정복, 병자치유와 같은 기적의 순이다.
안식일에 회당에서의 예배가 끝나면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일 외에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몇몇 친지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동일은 물론 여행을 하거나 산책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아마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집에 초청을 받았다. 그의 동생 안드레아는 물론 그들의 친구 야고보와 요한도 동행하였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는 벳사이다 출신이다. 그런데 가파르나움 해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이 형제는 이 도시에 살림집 겸 상점이 될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벳사이다 보다 어물판로가 더 좋았고 그보다도 주님과 가까운데서 살고 싶기도 하였던 것이다. 생선냄새에 익숙해 있었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생선가게에서 편한 마음으로 쉬실 수가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가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집은 장모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베드로의 부인에 대하여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지만 전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가 없다. 하여간 베드로의 장모는 그날따라 심한 열로 앓아 누워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과 친구 두 사람까지 식사에 초청했을까?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그분을 믿고 잇던 베드로는 아마도 이 사정을 말씀드렸을 것이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무슨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의사였던 루가는 예수의 방문을 손님으로서가 아니고 의사로서 치료요청을 받고 가셨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그들은 그 부인을 돌봐주시라고 요청하였다』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모든 노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구법을 지키면서 새 법을 선포하시는 예수께서는 법을 어길 필요가 없었다. 오전에 악령을 쫓아내실 때에도 말 한마디로 그 세력을 꺾으신 예수님이시다.
이번에도 단 한 마디로 열병을 내쫓으셨다. 난폭한 바람을 명령하시고 바다를 명령하여 잔잔케 하시고 무화과나무에 명령하실 때에는 말 한마디로 하였다. 이 말 한마디는 중요하다. 그 옛날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생겨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창조한신 창조력이 있는 말씀이다. 이제는 새로운 창조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힘이 발휘될 때에는 말씀에 성령이 곁들여진다. 창세 때에는 하느님의 영이 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예수님의 치유의 말씀에는 안수가 곁들여진다. 예수님은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대셨던 것이다. 이 말씀과 안수는 인류를 치유하는 표가 될 것이다.
이 날은 귀엣말이 날개를 단 날이었다. 예수께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멀리멀리 퍼져 나아갔다. 안식일은 저녁시간으로 끝난다. 사람들은 평상시의 생활을 시작해도 된다.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종류의 병마에 시달리는 병자들을 혹은 들것에 혹은 등에 업고 베드로의 집 문 앞에 몰려들었다. 더러운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러운 악령과의 대결은 복음서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마태오복음서에 두 번, 루가복음서에 여섯 번, 마르꼬복음서에 열한 번 나온다.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마귀의 세력을 쳐 이기는 장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불행한 사람들을 일일이 안수로써 고쳐주셨다. 단 한 번 안수로써 병자들이 치유되는 것이 의사인 루가에게는 놀라운 일이었고 마르꼬에게는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 신기하였다.
그래서 마르꼬는 많은 마귀를 쫓아내시며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마귀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들은 여기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이 소리는 마귀의 세력이 예수 앞에 패배를 승복하는 소리였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예수의 비밀을 밝히는 소리였다. 이 소리는 사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입에서 나와야 할 신앙고백의 소리여야 할 것이다. 아직은 그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입을 봉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병자들을 고쳐달라고 예수께로 데리고 올 때에 구세주께 대한 참 믿음에서가 아니라 그저 능력있는 분으로만 믿고 있었다. 그래도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셨다. 단순한 자비심에서가 아니다.
이 뜻을 마태오는 이사야예언서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53장)를 인용하면서 밝혀주셨다:『그분은 몸소 우리의 병을 앓아주셨고 그 고통을 짊어지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마술사가 아니고 그 불행을 없애주시는 대가로 그 불행을 몸소 대신 짊어지시는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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