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정직히 말해서 성령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이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하고 우리가 기도 할때도 그는 작은 구실을 할 뿐이다.
왜 그런가? 성탄, 성금요일, 부활축일에는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사람들, 사실들 그리고 사건들, 이런 것들은 일년동안 우리에게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해준다. 그러나 성령강림은 이와반대로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는 성령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분이 사도들 한테 활동하신 것중에 어떤 것을 듣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용기있는 증인이 되었다』
성령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상징적인 표현들은 있다: 비둘기의 모습안의 성령、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오늘날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또 성령이 불혀 모양으로 제자들위에 머물렀다는 묘사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일일 뿐이다. 가장 잘 맞는 상징은 그래도 그분은 자기가 불고 싶은대로 불며(요한 3, 8), 그날 폭풍처럼 온집을 가득 메웠다고(사도 2, 2)하는 바람의 상징이다. 바람도 눈으로 볼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효과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즉 생명·활동·정화·쇄신 같은 것이다.
어떻게 성령께 가까이 갈 수 있는가?
먼저 우리 자신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육체와 영혼으로 된 인간이다. 영혼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볼 수 없는 영혼이 삶의 즉 육신생명의 근거요 원천인 것이다. 우리의 육체적인 것 안에 우리 영혼이 거울처럼 비추어진다. 영혼이 없는 인간은 시체의 모습과 같은 죽은 사람이다. 생명의 근원인 영혼은 동시에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의지, 생각, 마음, 우리의 온 내면성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면성은 우리의 삶에 어떤 힘이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또 이웃사람에, 사회에 대해 매일 우리의 태도를 결정지으며 과제나 목표를 알게하며 우리의 삶에 목표와 방향을 준다. 이 내면성은 예술과 과학, 기술에 창조적인 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며 사람에게 세상의 실제를 형성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이를 사용할 능력을 준다. 볼 수 없는 영혼은 삶에 가장 강한 실체이며 외형적 사실보다도 더 강한 것이다. 역사는 곧 정신의 역사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정신의 아들들이 되어있는지, 이 정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예수의 생애에서 드러난 성령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우리 정신에서부터 나온다면 또한 성령께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성령은 하느님 자신의 내면성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즉 하느님의 마음이며 살아있는 또 모든 효과를 내는 하느님의 영이다. 만일 우리인간의 정신이 이미 세계와 역사를 움직일만큼 그렇게 힘이 있다면 하느님의 영은 얼마나 더 힘있고 창조적이겠는가 상상할 수 있다. 이 하느님의 영은 우주를 창조할 때 있었고, 예수가 인간이 될 때 활동했으며(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잉태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또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할 때 활약했다. 예수의 부활은 영의 힘으로 되었으며 새로운 우주창 조인 것이다.
예수의 온 생애와 활동이 모두 하느님의 영안에 몰입되었고 이것이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었다. 그래서 성령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우리가 알고 싶으면 예수의 생애와 활동과 말씀을 바라보아야 하며 또 그분의 죽음과 부활도 보아야 한다. 여기서 성령은 하느님이 마음으로써 또 생명의 힘으로써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여기세 하느님의 영이 어떤분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성령강림의 기적은 예수가 이 자신의 영을, 성령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또 사람들안에 활동하게 하는데 있다. 성령은 먼저 사도들에게 그리고 신앙과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동한다. 그들 모두에게 『성령을 받아라』(요한 2ㆍ22)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영, 예수의 영으로 채워지고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사람들이 서로가 정신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하느님의 영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옳고 참된것을 생각하게 되고, 좋은 것을 원하게 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되고, 정신들을 구별하는것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안에 준 풍부한 선물과 행복을 알아보게되고, 신앙을 용기있게 전하는 증인들이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이 이끄는대로 자신을 맡기고, 국가적 이기주의 정신에서 벗어나 압제와 폭력과 작별을 고하게 되면, 또 만일 전쟁으로가 아니라 성령안에서 갈등의 해결책을 찾게 된다면 사람들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걸어 잠그지 않고 이 성령에 자신을 열고, 성령께서 오시도록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하느님의 성령은 강제로 하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의 자유에 호소하신다. 우리가 자유롭게 『오소서, 성신이여,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고, 활발하게 해 주소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빛과 희망이신 당신의 생명안에 머물게 하소서』하고 청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은총과 열매들은 신약에 의하면 사랑과 기쁨、평화와 인내、친절과 선、 진실과 온유 그리고 절제(갈라 5)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성령이 계신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Ⅱ코린토3、17)하고 더욱 절박하게 말씀하신다. 이 에서의 자유이며 하느님의 영에서 나오는 생명을 위한 자유를 뜻한다. 이 자유가 참다운 인간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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