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은 신앙선조들의 생활과 숨결이 그대로 배어 있는 곳입니다. 바라보기만해도 마음이 편하고 거룩함을 느낄 수 있지요. 순례객들이 순교자의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기회가 생기면 내 손으로 성지를 보살피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습니다』.
배움이 짧아 신학이 무엇이고 역사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초창기 한국교회의 가톨릭신앙을 지켜주고 보금자리가 됐던 「한국교회의 나자렛」배론성지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에 남은 일생을 걸고 있는 성지관리인 이태종(베드로ㆍ52세)씨.
피를 흘리며 가톨릭신앙을 지킨 무명순교자들의 굳센 믿음을 통해 한국교회가 이땅에 뿌리 내려졌던 것처럼 이제 그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한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가꾸고 키워서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현대의 보이지 않는 순교자이다.
마을이 위치한 계곡이 배밑창을 닮았다 해서 배론이라 불리게 된 이곳 성지는 1791년 신해박해를 피해온 교우들이 옹기구이와 농사를 지으며 신앙공동체를 이룬 교회사적지이며 유서깊은 교우촌이다.
배론은 또한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이곳의 옹기토굴에 숨어있으면서 「백서(白書) 」를 작성하기도 했으며 1855년에는 배론공소회장 장추기의 집에 한국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졌을뿐 아니라 1861년 문경에서 병사한 2대 방인사제 최양업 신부가 푸르티에 신부 일행에 의해 안장된 성지이다.
4대조 할아버지(代)부터 신앙을 알고 키워온 이대종씨는 배론에서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살다보니 부귀공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온 순교선조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생계를 잇기 위해 고향근처 탄광에서 광부노릇을 하느라 잠시 고향 배론을 떠난 적도 있지만 순교자들의 사심없는 신앙을 깨달은 이씨의 마음은 언제나 순교선조들과 함께했다.
순교자들의 신앙을 알게 된 이상 성지의 풀 한포기 돌하나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이씨는 드디어 84년 4월 당시 성지를 관리하고 있던 한국순교복자 수녀회의 주선으로 배론성지 산지기로 들어가 성지와 인연을 맺게 됐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기쁨 때문에 성지의 제초작업부터 순례객이 남기고 간 쓰레기처리까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힘든줄을 몰랐던 이씨는 90년 6월 과로가 겹쳐 풍을 맞고 쓰러졌다.
『한달간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후 집에서 다시 한달을 쉬었는데 성지가 궁금해서 도무지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군요』.
신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목숨을 잃어야 했던 어려운 시절에 자신의 삶의 터전인 초가삼간을 신학교로 선뜻 내놓았던 장주기 성인회 믿음을 생각하면 팔ㆍ다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편하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손길에 의해 성지가 다듬어 지고 단장되는 사실을 누구하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도 성지에 대한 애착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이씨의 몸놀림을 멈추지 못하게 했고 성지를 찾는 모든 순례객들이 편안하게 묵상이나 기도를 한번이라도 더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 때문에 마비된 팔을 안고 성지에 나올수 있도록 했다.
신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귀중함을 볼라서도 아닌, 오로비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세상의 돈과 권력을 버리고 신앙을 지켰던 무명순교선조들처럼 살고 싶다는 이씨는 그러한 결심이 들을 때 뿐이고 살다보니 자꾸만 잊어버리게 돼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이씨는 풀을 뽑으면서도 망치질을 하면서도 틈틈이 짬을 내 성체조배를 하고 회살기도를 바친다고 고백했다.
『최근들어 성지순례를 관광과 놀이삼아 오는 순례객이 부쩍늘었다』면서 불만을 털어놓은 이씨는 『그러나 애쓰는 신자들을 볼 때 성지관리인으로서 감사와 긍지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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