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처음 선혜를 보았을 때 많이 아픈 아이라는 인상이 크게 왔다. 푸른빛이 감도는 핏기 없는 낯빛이 우선 그랬다. 무표정한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을 통 하지 않았다.
『…저는요, 왜 있잖아요 미용사 같은 그런 일을 할거예요』
학기초 학급 번호 순서대로 면담을 어떤 아이들보다 적극적으로 말했다. 두서없는 얘기들을 많이 했다. 정신병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는 얘기와 장래하고 싶은 일이 미용사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 후로는 침묵생활이었다.
하루는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곤 그냥 말없이 서 있었다. 나도 말없이 기다려 보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배가 아파서 약을 사기위해 외출증을 받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왜 배가 아프냐? 무슨 약이 필요한 것이냐? 자주 먹느냐? 등의 많은 질문에 대해 뚜렷한 답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늘 그렇게 앉아만 있던 선혜가 결석을 했다. 전화를 했더니 부모님이 일하시는 세탁소 번호였다. 두분은 배달을 나가고 살림집은 따로 있다는 세탁소 주인(?)의 설명이었다. 어렵게 집으로 전화가 연결되고 보니 선혜였다. 마주 얘기할 때보다 더 답답했다. 겨우 내일은 등교하겠다는 대답을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선혜는 열심히 말을 할 때 아주 예쁘구나. 몸이 좀 아파도 아침에 일단은 학교에 나온다는 약속만은 지켜주기 바란다. 많이 아플 땐 말해라 언제라도 조퇴를 허락해 줄께. 우리서로 약속을 지키도록 하자.』
청소용 손걸레를 준비하지 않았다든가 잡다한 숙제를 아예 생략해서 학과 선생님들의 지적을 받아야만 되는 선혜는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심한 내성적 성격 때문에 친구도 사귀지를 못한다. 학교를 오고 갈 때도 혼자다. 60여명의 급우들과 한방에 앉아 온종일 수업을 받지만 혼자일 수 밖에 없다.
지각한 딸과 함께 학교에 온 선혜의 어머니는 살림에 지친 모습이었다.
『우리 선혜는 학교에 다니기를 싫어해요. 집안에 그럴 사정도 있고요. 선혜가 살림을 해야 해요』
『선혜 말로는 배가 아프기 때문에 약을 먹고 있다고 하던데요. 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다는 말도 했는데요…』
선혜의 어머니는 시간을 쪼개써야 하는 처지인 것 같았다. 고작 20~30분 동안 선혜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선혜에 대해 더 많이 파악된 것이 없었다.
소풍을 갔다. 선혜가 같이 찍고 싶어해서 나란히 섰다.
『웃자. 크게』했었는데 정말 우리 둘이는 눈이 감기도록 웃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미처 몰랐는데 웃는 선혜의 얼굴은 예뻤다.
『사진 뒷면에 네 이름을 크게 써서 줘. 그래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기억을 하게 돼』
말없이 제 이름을 써주면서 미소를 띠었다.
국어시간이면 한두번 눈길이 마주치는데、최근 선혜는 분명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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