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교리를 산상교훈으로 그 성격을 비유로 설명하는 대목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하느님 나라의 능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것이 복음서의 기적의 참 뜻인데 그 기적들은 하느님나라를 증명하는 논증이 아니고 요한복음서에서 즐겨 쓰는「알아보는 표」로서 제시된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고 그 내용을 가르치신 다음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신념을 가지도록 기적을 보여주심으로써 당신 메시지와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굳건히 해 주셨다. 예수를 따라다니던 신자공동체는 물론이고 사도시대의 교회공동체는 주님의 산상교훈에서 하느님나라에 대한 사정을 신비롭게 받아들였고 비유의 설명에서 하느님나라의 생명력을 놀라운 마음으로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예수께서 간간히 보여주신 치유의 기적과 구마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전도활동에는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힘이 감추어져 있음을 감지하기도 하였다.
복음에서의 기적이야기는 예수께서 무엇인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표였고 그 무엇인가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능력은 그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종류의 악마적 세력을 평정시키는 힘이다. 그것은 앞으로 하느님 나라의 가시적인 모습인 교회가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장담이었다.
이러한 전망을 펼치며 복음서는 네가지 제악(制惡) 기적의 이야기를 전한다. 즉 폭풍노도의 제압(마르4,35~41), 게라사지방의 악령제압(5,1~20)、 하혈병환자 여자의 경우(5,25~34), 야이로의 딸의 소생(5,35~43)이 차례로 소개된다. 이 네가지 기적이야기는 각각 자연이 인간을 위협하는 악마적인 힘에서 인간을 구해내고, 세상을 광야처럼 떠돌아다니며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악령들의 제압, 괴질에서의 인간구제,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고 그 힘은 하느님의 구원의 힘임을 극명하게 드러내시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 네가지 기적을 알아듣고 거기서 하느님의 구원의 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믿음의 주제는 예수님의 실상을 알아보는데 그 어느 대목에서보다도 이 대목에서 더 절실하게 강조되어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예수를 알아보고 따라서 구원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갈릴레아 바다의 폭풍노도의 기적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역설하셨고 하혈병의 부인은 믿음하나로 주님의 치유의 능력을 얻어냈고、야이로는 믿음으로 딸의 죽음에 직면하여 생명의 은혜를 받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오직 믿어라』
그러나 믿지 않는 세상은 예수를 떠나라고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심지어 믿지 않는 예수의 고향사람들은 그를 배척하기까지 하였다.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세상에 살아가는 실상을 방불케한다.
자、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예수께서는 동족사람들에게 산상교훈과 수상교훈을 마치시고 바다 건너편 이방인들의 땅으로 가시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예수께서 배에 오르셨고 제자들도 그를 따랐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따른다는 표현은 상당히 자주 강조되어 있다. 마르꼬복음서는 다른 배들도 그 배를 따랐다고 했다. 마태오는 제자들도 따라 올랐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목격자였던 마태오는 다른 배에서 그 광경을 보았을 것이라고 한다.
배가 바다 한 가운데에 왔을 때 갑자기 폭풍이 불어닥치며 노도 같은 파도가 배를 덮쳤다. 배는 고기 배였고 탄 사람들은 어부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갈릴레아 바다에는 가을에 이런 폭풍이 불어닥친다고 한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태연하게 잠을 주무시고 계셨다고 한다.
소인들과는 달리 도에 통한 동앙의 도사를 방불케 하는 작태였을까. 아니다. 며칠동안 군중들에게 시달리신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곧 깊은 잠에 들었다. 마르꼬가 그 잠자는 모습을 자세하게 전하는 것으로 보아 그 잠은 자연스러운 잠이었다.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예수께서 주무셨다는 기사는 여기밖에 없다. 그것은 그 경황 속에서도 잘 수 밖에 없었다는 전교생활의 고달픔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어부였던 제자들은 그 풍랑이 절망적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주님을 믿고 따라다니던 제자들인지라 그들은 곧 주님을 깨웠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믿음부족을 탓하는 말씀은 아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무서워하느냐?」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사도교회에 믿음을 욕구하는 말씀을 복음사가들이 인용한 말씀이다.
모진 바람과 거센 바다는「잠잠하라」는 명령으로 평정되었다. 자연의 폭력도 가라앉히는 예수의 신적인 능력을 사도들은 교우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이었고 이 사실은 믿는 사람에게만 깨달음이 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이번에는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고 하느님 앞에 선 사람의 종교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제자들이 예수를 몰라서 새삼 물은 것이 아니다. 「예수는 누구이냐?」이 질문은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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