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진리의 깊은 맛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신앙을 외면했던 20년세월을 보속이라도 하듯 치명순교터 남양성지 개발과 보존을 위해 온 정열을 쏟고 있는 조길환(요셉ㆍ60세)씨.
그는 뒤늦게 깨달은 신앙의 가르침에 흠뻑 빠져 매일매일의 삶을 성지에서 시작해 성지에서 마무리, 남양성지의 오늘이 있게 한숨은 공로자로 손꼽히고 있다.
결혼하기전 까지만 해도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조씨는 비록 결혼을 위해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가톨릭 신앙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신앙인의 자세와 순교의 의미를 전혀 몰랐던 조씨는 같은 신앙을 가졌던 이웃의 단점과 잘못만 눈에 띄었을뿐 사랑과 이해로 용서할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성당은 관심밖의 일이 됐고 신앙생활 역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서 형ㆍ아우관계로 지내던 신자가 찾아와 성령세미나에 함께 참석할 것을 제의, 자신도 모르게 약속을 해버렸다.
이상하게도 냉담할 때는 미사시간 1시간도 차분하게 앉아 있질 못하겠더니만 그날은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기쁘고 즐거웠다.
냉담생활에서 탈출, 회두한지 1년이 조금 넘은 83년, 가을 당시 남양본당 주임신부이던 고(故) 박지환 신부와의 친분은 조길환씨가 남양성지에 애착을 갖게 되는 고리 역할을 했다.
남양성지와 인연을 맺은 조길환씨는 자신의 고향에 「거룩한 땅」이 있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고 신기하기만 했다.
전문가들의 고증(考證)과 사료(史料)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잡초와 가시덩쿨로 뒤덮힌 성지의 정확한 위치를 밝혀 내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자 조씨는 성지를 닦고 배수로를 설치하는 기초공사부터 찾아가며 도맡았다.
『성지와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신자들의 지원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본당 전교회장과 오토바이를 타고 신자 가정을 방문하면서 전교는 물론 성지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지요. 집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1주일에 한번씩 밖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도 자신을 다시 받아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가족들의 격려로 인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남양은 수원지역의 샌골ㆍ갓등이(현재 왕림)ㆍ골배마실ㆍ은이ㆍ안양의 수리산 등 지리적으로 교우촌이었던 마을과 인접, 자연스레 신앙의 꽃을 피울수 있었던 신앙공동체의 요람이다.
이와같은 지리적인 영향으로 인해 일찍부터 신앙을 전해 받은 남양본당의 백학공소는 공소설정만 1백40여년이 됐고 병인박해시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필립보와 그의 아내 박마리아, 용인 덕골사람 정필립보와 수원걸매 사람 김홍서 토마가 현재의 남양성지에서 치명하는 등 굳은 신앙을 보였다.
이러한 순교자의 숨결이 그대로 스며있는 치명 순교터 남양성지를 후손에게 알리는 것은 반드시 어떤 특정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에 차있는 조길환씨는 순례객은 물론이고 성지에 약수를 뜨러 오는 마을의 외교인에게도 일일이 성지의 의미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설명해 주고있다.
더욱이 성지개발을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일부 신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라볼때면 가슴이 아프다는 조씨는 육체적인 노력봉사가 가능한 것이면 힘이 좀 들더라도 손수 시멘트를 만지고 빗자루를 들었다.
『교회일은 아무 불평없이 소리나지 않게 하는 것인 데도 성지에 와서 휴지를 버리거나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는 것을 보면 화가 나서 호통을 치게 됩니다』.
성지개발을 위해 자신을 불러 주셨다는 믿음으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신앙인으로서 부족한 모습이 발견돼 부끄럽다고 털어놓는 조씨는 순교선조들의 모습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신자들이 다함께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 그분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남은 여생을 바치고싶다는 소박한 꿈을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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